임혜은<br />평택오산아이쿱생협 이사<br />죽백동 거주
임혜은
평택오산아이쿱생협 이사
죽백동 거주

지난해 가을, 배다리생태공원 인근으로 이사를 오면서 생긴 취미가 있다. 가만히 앉아 소리에 귀 기울이기다. 도심 아파트에 살면서 온갖 차들과 배달 오토바이의 소음 대신, 올빼미와 개구리 울음소리를 듣는 곳이 몇 군데나 될까? 아파트 상가에는 아직 편의점밖에 없고, 버스 타기도 불편하지만 자연친화적인 생활 만족도는 이러한 불편함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아침마다 등교하는 아이와 함께 봄엔 꽃, 여름엔 신록, 가을엔 단풍, 겨울엔 설경을 즐기다 보면 친정 마을의 뒷산을 오르는 듯 절로 흥겹다. 하루가 다르게 아파트단지가 새로 들어서는 이곳 평택에서 배다리공원은 주변 지역의 ‘허파’ 역할을 하는 쉼터이자 힐링 공간인 셈이다.

배다리생태공원의 현재 모습은 한국토지주택공사가 2013년부터 3년간 진행해온 ‘소사벌 MAB 만들기’ 사업을 추진한 결과라고 한다. 이 사업은 택지개발로 훼손될 수 있는 자연자원의 보전과 순환을 통해 생태적으로 건전한 생물권 환경을 조성하기 위함이었다. 공원 내 하수처리장 물을 이용해 물순환 시스템을 만들고, 생물의 서식환경을 개선해 지속가능한 생태 환경을 조성했다는 점 등이 좋은 평가를 받아 2018년 (사)한국생태복원협회로부터 자연환경대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올봄, 공원을 지나다 지독한 악취에 깜짝 놀랐다. 근린공원 내 인공하천의 정화 시스템이 고장 났는지 엄청난 양의 하수 찌꺼기가 하천 둑을 타고 검게 흐르고 있었다. 그날 이후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생태공원을 잇는 야산을 깎아 주차장이 들어섰고, 속이 휑하니 들여다보이는 초라한 숲 입구에는 ‘야생동물 출몰지역’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무색하게 서 있다.

‘소사벌 MAB 만들기’ 사업에는 도시 내 기후변화 저감을 목적으로 원형보전림 바람길을 이용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지난해에는 배다리공원 인근 평택 스마트도시통합센터의 주차장 증설을 위해 주변 숲의 나무를 베어냈는데, 지금도 빈 땅으로 남아있어 용도가 궁금하다. 그리 넓지 않은 원형림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계속 훼손되고, 나무들은 밤이고 낮이고 빛공해에 시달린다면 동물 서식지 파괴는 말할 것도 없고, 남아 있는 숲마저도 몇 년 지나지 않아 고사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생태공원에는 각양각색의 화초가 모종판 같은 사각틀 속에서 수천 송이씩 피었다 진다. 계절이 지나면 또 다른 꽃으로 교체되고는 한다. 철재 구조물에 화초 화분을 놓아 장식한 곳도 있다. 가족과 산책 나온 아이들이 그 철재 구조물에 부딪혀 다치진 않을까 우려된다. 이러한 인위적인 ‘예쁨’보다는 주변 산책길을 따라 여러해살이 꽃나무를 심는 건 어떨까.

작년 한 해 코로나 사태로 ‘집콕’만 하다가 올해는 뭔가 해봐야겠다 싶어, 올봄 아이쿱생활협동조합 조합원들과 ‘배다리 마을모임’을 만들었다. 나와 우리 가족이 건강하려면 우리 마을의 자연과 생태가 건강해야 하고, 나아가 온 지구가 함께 건강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러한 작은 출발이 모여 분명 살기 좋은 평택을 만들고, 우리 아이들이 좀 더 쾌적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곳 배다리 마을이 좋다. 그 옛날 배꽃이 만발하던 마을이 다시금 아름다운 생태공간으로 거듭나길 바란다.

저작권자 © 평택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