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법사 회주 화정 스님을 만나다
화정 스님을 만난 건 5월의 어느 늦은 밤. 코로나19로 지친 우리네 일상이, 10여 년 만에 다시 회생 절차를 밟는 쌍용자동차의 현재가 투영된 듯 밤하늘이 유난히 새카맣다. 명법사에 당도해 보니 대웅전 앞으로 연꽃과 반야용선이 유독 환하게 빛나고 있다. 어둠을 뚫고 성큼성큼 다가오는 이가 있으니 바로 화정 스님으로 지역사회가 어두운 고난의 늪에 빠졌을 때 팔 걷어부치고 발벗고 나서 한결같은 자비와 보시를 실천해온 평택의 큰스님이다.
“배고픈 사람에겐 라면이라도 줘야…
입으로만 도와준다 하면 뭔 힘이 될까”
2009년 쌍용차 사태 때 4056만원 기부
다시 노동자 자녀 장학금 3000만원 지급
화정 스님은 최근 쌍용차가 또 한 차례 기업회생 절차에 들어가 노동자들의 월급이 깎이고 해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그들을 돕기 위해 나섰다. 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 날인 19일 오전 11시에 쌍용차 노동자를 위한 특별법회를 봉행하고 노동자의 중·고생 자녀 60명에게 1명당 50만원씩 장학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2009년 쌍용차 대량해고 사태 당시 명법사는 신도들이 보시한 성금 4056만원을 노동자들을 위해 내놓았고 해고 노동자들에게 성금 1000만원을 전달하기도 했다. 그리고 12년이 흘러 다시 쌍용차 노동자를 돕고자 나섰다.
“쌍용차 상황이 12년 전보다 더 가슴 아프고 분노가 끓어오릅니다. 쌍용차가 어렵다고 도와줘야 한다면서 다들 말뿐입니다. 입으로만 쌍용차 살려야 한다고 하니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배고픈 사람에게 라면이라도 줘야 힘이 날 거 아닙니까. 한참 공부해야 할 청소년들이 가장 마음에 걸리니 그 애들부터 껴안고 보살피려 합니다.”
화정 스님은 “2009년엔 회갑이었는데 올해 일흔 두 살이 됐다”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무거운 인생, 자기 허물은 모르고 남 탓만 하는 사람들을 보면 바로잡아야 할 일도 많고 어렵고 힘든 이들을 보면 해야 할 일도 많다”고 말했다.
반백년 넘게 실천해온 베푸는 불교
“나를 버리고 어려운 이 위해 살면
어느 순간 부처님 지혜를 얻을 수 있어”
화정 스님은 “세상을 뒤집어 바로 잡겠다”는 뜻을 품고 1966년 명법사에서 출가한 후 반백년 넘게 수행과 포교 그리고 복지에 전념해왔다. 그의 눈길은 늘 우리 사회의 어렵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머물렀다. 1995년 여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 구호에 나선 것을 시작으로 양양 낙산사 화재, 태안 기름유출 사고 때도 가장 먼저 현장에 달려갔다. 1980년대부터 쉬지 않고 이어온 ‘평택역 무료급식’도 빼놀을 수 없다. 이제 스님의 오랜 원력과 신도들의 정성어린 보시를 모아 ‘명법사 사회복지재단’을 주축으로 ‘베푸는 불교’를 다양한 분야에서 구현하고 있다.
2014년에는 한국불교의 현대화·대중화에 앞장선 용성 스님의 뜻을 기린 용성장학회를 설립해 2015년부터 매년 승가대학생과 평택의 고등학생들의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다. 용성 스님은 1919년 3·1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서 한국불교 지성화와 대중화에 크게 키여했으며 수백 년 동안 승려 출입이 금지됐던 서울 사대문 안에 ‘대각교당’이란 도심사찰을 세웠다. 화정 스님은 “학생들은 앞으로 이 땅을 지켜나갈 이 시대의 주인”이라며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용성 스님의 정신을 이어받아 모든 사람이 유익한 삶을 살도록 베풀고 노력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스님은 새벽 4~5시에 잠들어 오전 9시에 일어났다. 그렇게 분 단위로 쪼개가며 시대가 필요로 하는 포교, 베푸는 불교를 위해 쉬지 않고 달려왔다. “목탁치고 경전만 외우면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부처님 말씀을 전하려면 잠시도 쉴틈이 없지요. 마음을 비우고 자비와 보시를 실천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생의 기쁨을 깨닫을 수 있을 겁니다. 말만 내세우는 이들이 그 기쁨을 어찌 알겠습니까.”
스님은 지금까지 세 번 죽고 세 번 살아났다고 한다. “처음 심장마비로 쓰러졌을 때 이것이 죽는 거구나 했지요. 순간 나를 세우니 상대가 있었던 것이고, 이것이 모든 고통의 원인이었던 거였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순간 나를 놓으니 끊어졌던 숨이 쉬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졌지요.”
그러면서 화정 스님은 “나 혼자만의 행복이 아니라 모든 이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라며 “힘 없고 가진 것 없어도 나를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자비와 보시를 실천하다 보면 부처님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