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훈 팀장평택시 박물관시설팀
정용훈 팀장
평택시 박물관시설팀

저는 색맹입니다. 색맹은 유전입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사춘기 시절 부모님을 원망했습니다. 인문계와 자연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고등학교 1학년 시기에 저는 희망을 잃어버린 듯 방황했습니다. ‘나’라는 존재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것인가? 나는 누구에 의해 어디에서부터 왔는가?

제 아버지는 고아입니다. 아버지가 3살 때 역병으로 인해, 할아버지, 할머니를 잃으셨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친구들의 집에 설과 추석 명절에 온갖 친척들로 북적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부러웠습니다. 그리고 창피했습니다. 우리집은 친척도 없고 제사도 지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의 뿌리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궁금하고 답답하고 세상이 미웠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저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원망했습니다.

박물관은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기억을 보존하고
이야기 나누며 미래를 꿈꾸는 곳

며칠 후면 아버님의 80세 생신입니다. 어제는 온 가족이 모여 빛바랜 사진들을 정리하며 웃고 웃으며 과거를 회상했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의 방 한켠에 조그마한 액자를 마련하여 벽에 걸어두며 우리 가족의 미래를 그려 보았습니다. 그것이 박물관이 아닐까요?

국어사전에 박물관은 ‘자료, 유물, 예술품을 전시하고, 연구하고 교육하는 시설’이라고 되어있습니다. 박물관은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기억을 보존하고 이야기 나누며 미래를 꿈꾸는 곳입니다.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담아내어 미래를 이야기하는 공간. 평택에는 박물관이 없습니다. 그것이 평택박물관 건립의 가장 큰 이유입니다.

평택에는 훌륭한 분들이 많습니다. 특히 10여 년 전부터 평택박물관의 필요성을 말씀하시며 꾸준히 연구하며 공부해 오신 분들입니다. 감사드립니다.

어떤 박물관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고 이야기 나누어 주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또 있습니다. 평택박물관 건립 준비 소식을 듣고 집안 대대로 소중하게 간직해 오신 자료와 유물을 아무 조건 없이 기증, 기탁해 주신 분들도 계십니다. 감사드립니다.

어떤 분들은 말씀하십니다. 미천한 역사에 특출난 유물이 없는 평택에 박물관이 필요한가를 되물으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하지만, 유물이 없기 때문에 박물관이 필요 없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이 없기 때문에 유물이 없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습니다. 그동안 이 땅에서 출토된 수많은 유물이 평택이 아닌 다른 도시에 있기 때문입니다.

평택에 박물관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설립 타당성 사전평가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평택은 작년 상반기에 사전평가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올해 2021년 하반기에 다시 도전장을 내밉니다.

고덕국제신도시 중앙공원에 위치하게 되며 대규모 공연장인 (가칭)평화예술의전당, 중앙도서관과 어린이 창의체험관이 함께 들어서게 됩니다. 이 땅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의 삶을 기억하며 현재를 통해 미래를 바라보는 문화공간으로의 박물관을 그려봅니다.

특히 박물관과 이들 시설은 지식과 문화, 휴식이 있는 복합 문화공간인 ‘라키비움(Larchiveum)’으로 구현될 예정에 있습니다. 라키비움은 도서관(Library)과 기록관(Archives)과 박물관(Museum)의 합성어로서 도서관과 기록관 그리고 박물관의 세 가지 기능을 가진 복합문화공간을 뜻합니다.

평택 최초로 건립되는 박물관은 하품나오는 고리타분한 박물관이 아닌, 다양한 IT 기술을 활용하는 공간, 세대구분없이 어린이부터 모든 세대가 모여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어린이들과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 품격 높은 공연을 보고, 도서관을 옆에 두고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는 공간. 전시뿐만이 아닌 연구와 교육이 함께 이루어지는 환한 미소가 있는 공간. 바로 평택박물관입니다.

저는 부모님이 자랑스럽습니다. 저를 낳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제 부모님은 위대한 삶을 살아오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들이 둘 있습니다. 제가 부모님을 원망했던 이유와는 다른 이유로 저를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우리 집의 조그만 위대한 역사가 되겠지요.

평택이라는 땅에 살아온 사람들의 삶은 위대합니다. 이 땅에서 살아왔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택에 박물관이 필요합니다.

저는 꿈을 꿉니다. 저의 손주들과 손을 잡고 이 땅에 살아온 사람들의 위대하며 조그만 이야기를 들으며 이 땅의 미래를 그려보는 상상을 해봅니다. 여러분도 함께하시겠습니까?

저작권자 © 평택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