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히는 코로나 사태가 예상 밖으로 길어지면서 요즘 부쩍 층간소음의 피해를 호소하는 민원이 급증하고 있단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이란 모름지기 서로 만나고 어울려 살아가는 존재이거늘 벌써 이태째 꼼짝달싹하지 못한 채 방콕하는 신세들이 되다 보니 공사장 분진처럼 여기저기서 층간소음의 잔해들이 흩날리는 중이다. 그 본질을 들여다보면 역지사지의 실종이 주요인. 게다가 애초에 바닥 시공이 잘못된 탓을 해야지 왜 자꾸 남의 사생활에 시비를 거느냐는 식의 딴청이 문제를 키우는 양상이다. 심지어는 내 집에서 맘 편히 걷지도 못하냐는 볼멘소리로 인해 걷잡을 수 없는 싸움으로 번지는 사례마저 드물지 않다. 사안의 심각성이 이렇다면 어떻게든 사라진 공동체 정신을 살려내는 일에 다들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솔직히 층간소음의 피해를 나만큼 입고 사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바로 위층으로부터 지금도 크고 작은 소음에 시달리고 있거니와 수시로 귓속을 파고드는 택배 차량과 배달 오토바이 소리를 감내하는 일도 내게는 현안이다. 아닌 게 아니라 공동주택에 거주하면서 좋은 이웃을 만나는 일이야말로 운명이라는 말이 우스개는 아닌 터. 어디서건 소음공해를 일으키는 까닭은 뻔하다. 남을 배려하지 않은 채 제멋대로 꾸리는 생활 습관들 탓이다. 웃프게도 적잖은 이들은 좀 저러다가 말겠지라는 막연함으로 마냥 참든가, 정 힘들면 개인 주택으로 가라고들 염장을 지르곤 한다.
사라진 공동체 정신을 살려내는 일에
다들 발 벗고 나서야 한다
내가 층간소음을 폐부로 느끼기 시작한 건 한 연립주택에서였다. 조무래기들이 실내에서 뛰어노는 걸 말리기는커녕 덩달아 엄마의 발걸음마저 동선을 알아차릴 만치 가는 족족 바닥을 울렸다. 참다못해 점잖은 어투로 손편지를 넣었더니 막무가내 삿대질을 해대는 꼴이라니! 더는 안 되겠다 싶어 허리띠를 졸라맨 끝에 서재가 딸린 아파트로 이사했고, 한동안은 단꿈처럼 행복했다. 그러나 나중에 입주한 세대가 거실을 넓히면서 문제가 생겼다. 큰 덩치의 남자는 발을 구르며 운동을 하고, 아담한 여자는 연신 발뒤꿈치를 찍으며 걷기 훈련에 돌입했다. 급기야 아내가 시정을 요구하니 되레 큰소릴 쳤으렷다. 곧장 내가 수습에 나서 가까스로 사정은 좀 나아졌으나 하던 버릇이 자꾸만 나오는 통에 애써 스트레스를 삭이고 있다.
더 큰 사달이 난 건 퇴임 이후였다. 얼마 전부터 거실에서 골프 연습을 감행하는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졌다.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하다가 소란이 도를 지나쳐 관리소장을 부르니 없는 척 문을 열지 않았고, 경비실에서 연락하면 갑자기 불을 끄고 빈집 흉내를 내기 일쑤였다. 차분히 알아보니 환경부에 ‘층간소음사이센터’라는 신고센터가 있었다. 2014년 ‘공동주택 층간소음의 범위와 기준에 관한 규칙’과 함께 ‘주택법’에 콘크리트 슬래브 두께를 210mm 이상으로 정했다가 얼마 전 240mm로 높였다는 설명이 눈에 들어왔다. 문제는 층고(層高) 제한으로 발생하는 공사비 상승분. 어쨌거나 소장(訴狀)을 접수하는 일도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오죽하면 어느 변호사는 날로 심해지는 층간소음에 살기를 느낀 나머지 결국 거주지를 옮겼을까.
나 역시 이대로 가다가는 어떤 일을 궁리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전제는 그래도 이웃이기에 상생에 초점을 맞춘 터. 일단 출입문 옆에 쪽지를 남겼다. “거실에서 골프 연습을 하는 바람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여럿입니다” -상식을 지키는 주민 일동– 그 뒤 다행히 골프공 굴리는 소리는 잦아들었지만 격한 움직임을 멈추다 보니 딴 데로 풍선효과가 나타났다. 며칠을 고민하다 두 번째 쪽지를 붙였더니 그가 경비실에서 만남을 청했다. 황당하게 그는 작정한 듯 전면 부인으로 일관했으나 상대 인격을 최대한 존중하면서 반전을 도모한 건 잘한 일이었다. 시방 나는 여건이 허락하는 대로 전원주택으로의 이주를 계획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