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아버지가 솔가리를 잔뜩 지고
산언저리를 내려오던 날이었다
허공중에 하얀 눈송이들을 풀어놓기 시작한 하늘이
야속스럽기만 했다
아버지의 솔가리와 정수리에 쌓이는 눈을 보며
감히 눈꽃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아랫목 이불 밑에는
스텐 밥그릇 하나가 주인을 기다리며
제 몸의 온기를 꼭 끌어안던 풍경들이
가슴에 차곡차곡 쌓이던 날들이었다
지금 창 밖에는 시공을 초월한
그 때의 그 눈송이들이
백색 공포를 휘날리며 돌아오고 있다
흰 것들만의 폭력 같은 고집이 망설임도 없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마흔 고개를 넘으며
해마다 첫눈이 내릴 때는
흔들리는 마음 하나를 걷잡지 못했다
원망과 떨림이 교대로 들락거리는 내 마음의 빈방
그 방에서 아버지의 검은머리가 백발이 되고
첫 사랑은 전설처럼 식어 가는데
하얗게 바래진 기억을 소환하며 첫눈이 오고 있다
해마다 첫눈은 기어이 오고 만다
개발
시골길 들어서는데
포크레인 소리 탕탕 울리고 놀란 땅이 자빠진다
길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있는 왜가리 한 마리
딱히 갈 곳을 찾지 못한 모양새다
어떠한 변화에도 무심한 사람들의 표정을 훔쳐보며
다시 좁은 길로 들어서는데
철탑꼭대기 한 칸의 방에서 들려오는 농성소리, 악착이다
집을 잃었다고, 삶터를 잃었다고
제 말 좀 들어보라는 소리 피 토하듯 게워내는데
한발 물러서는 노을의 붉은빛이 오히려 무색하다
마을에 들어설 무렵
동네사람들의 화재는 당연히 개발이다
수용된 땅값이 적다는 늙은 농부의 푸념소리
밤의 적막을 산산조각 낸다
졸부(猝富)들이 속출했다는 건너편의 소식들이
더욱 애간장을 부추기는 밤
길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있던 왜가리의 행방만
자꾸 궁금해지는 것이다
한경대학교 미디어문예창작학과 졸업
월간『문학공간 등단』
평택문인협회 회원
문예학습지도사
입시학원 국어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