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미군기지확장반대팽성읍대책위원회 김 지 태 위원장

“팽성읍 대추리 김지태 이장.”

대추리앞 논 24만평이 미군기지로 수용된다는 발표를 접하고, 지난해 6월 말 ‘미군기지확장반대팽성읍대책위’가 꾸려지기 이전까지 주민들은 이렇게 불렀다.

인터뷰가 있던 날에도 그는 주민들에게 주민세고지서와 농약을 나눠주기위해 바빴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는 평범한 동네 이장이었다.

하지만 그는 미군기지이전문제에 대한 대화가 시작되자 동네이장에서 ‘미군기지확장반대투사’로 돌변(?)했다. 주민들은 이제 그를 부를때 ‘000이장’보다는 ‘000위원장’이라고 부르는 주민들이 더 많다.

국방부는 당초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따라 대추리 일대 토지 24만평을 올 6월까지 수용완료하겠다고 계획을 세웠으나 지금까지 1만7000여평을 수용한데 그쳤다.

이렇듯 당초 계획한 일정이 늦어진 것은 한미간 한편으로는 진행되온 각종 회의 때문일 수 있겠으나, ‘미군기지확장반대팽성읍대책위(이하 팽성대책위)’가 출범한 후 1년여 동안 싸워온 결과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주민들은 없었다.

그 싸움의 중심에 김지태(44) 팽성대책위원장이 있었다.

팽성대책위가 출범한지 1년이 조금 넘은 8월 15일(광복절)저녁, 대추리 황새울 영농단지 옆 망루에서 김지태 위원장을 만났다.

인터뷰 자리에는 다음날 예정된 이장단 기자회견문제로 인근마을 이장을 비롯한 청년 몇 명이 회의차 방문해 있었다.

그에게 미군기지이전에 대한 인식과 그간의 있어왔던 일, 앞으로 진행해 갈 계획을 들어보았다.



포타회의 결정후 주민결속 움직임 뚜렷


-최근에 있었던 이야기부터 시작하자. 지난 11일 평택시장과 미군기지이전기획단 부단장, 황구지리 신용조이장, 김덕일 농민회장 등 5명과 면담이 있었다고 하던데, 어떤자리 였는가?

=그 전부터 자리를 한번 갖자고 했었다. 평택시에서도 ‘일단 만나서 주민들의 입장을 기획단에 전달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말해 만났다. 그 자리에서 나는 ‘자꾸 똑같은 이야기(수용반대입장) 하게 만들지 말고, 정부는 정부계획대로 우리는 우리방식대로 하면되지 않겠느냐’는 말만하고 나왔다.


-미군에 349만평을 제공하겠다는 발표 이후 현재 주민들의 분위기는 어떤가?

=대추리 주민들은 변함없다. 확장발표와 함께 수용지역 도면이 나도니까 이제는 인근주민들도 자기문제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함정리와 신대리 도두리 등 10개 마을이 영향권에 들어있는데 급속히 반대운동쪽으로 결집되고있다.


-며칠전 언론보도를 보니 정부관계자가 내년말까지 토지 매입을 종료할 예정이며, 협의매수가 실패할 경우 강제수용 절차를 밟겠다고 하던데, 이에대한 대비책이 있나?

=정부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정상일 수 있다. 새삼스러운것도 아니다.(웃음) 농담이 아니라 조만간 큰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동안에는 대책위가 위축될까봐 조심해 왔는데 이제는 누가 다치던 또는 구속되던 거침없다. 그로 인해서 미군이 안온다는 이야기가 나오게 될것이다.

이 답변은 지난달 22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10차 미래한미동맹정책구성회의에서 용산미군기지와 미2사단 이전 예정부지로 349만평을 내주기로 했다는 발표 직후 한 이야기와 상통했다. 김지태 위원장은 당시 “향후 투쟁계획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알려줄 수 없으며, 기존 투쟁은 연습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대다수 국민 이전계획 잘잘못은 뒷전


-서울지역을 비롯한 타 지역에서는 정부의 이번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눈치던데, 자칫 수용반대운동이 정당성에서 밀려 지역주의로 몰릴 염려도 있지 않겠나?

=실제 많은 국민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국민들에게는 ‘그 계획이 잘된 것이냐 잘못된 것이냐’는 관심밖이다. 다시 말하면 ‘정부가 해온 일인데 얼마나 알아서 잘 했겠는가’ 하고 생각해 버린 결과라는 것이다. 또 평택으로 간다고 발표하면 ‘타당성이 있으니까 정부가 결정했겠지’라고 생각한다. 반대측의 입장을 국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할수 있는 장이 있어야한다. 그런 다음에 다시 논의하는 것이 옳다.


-일부에서는 주민들이 토지보상가를 더 받기위해 투쟁을 하고있는 측면과 정부가 보상가를 넉넉하게 줘서 마무리 지어야한다는 의견도 있다.
=일반적으로 쉽게 판단할 때 하는 말에 불과하다. 보상가를 높일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정부가 많이 주고싶어도 법이 없어 줄수가 없다. 현행법상 감정가의 130% 이상을 줄수 없게되어있다. 우리는 보상가를 더 많이 받기위해 이 짓(반대운동)하고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이 문제를 주민투표에 붙이자라는 의견도 있던데.

=더 나아가 국민투표하자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주민투표를 하겠다라고 한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그러나 의미는 없다.


-그동안 대책위원장을 해 오면서 지역 정치인들과 미군기지이전과 관련해 많은 대화를 가졌을텐데 느낌을 정리한다면?

=정치인들이 민의에 의해서 선출되었으면 주민의 의견에 따라서 해야하는데 지금까지 이렇다 할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정치인이 가만히 있기 때문에 결국 주민들은 ‘그것이(정부의 결정이) 정당한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되는것이다. 며칠전 배연서 시의회부의장(팽성읍)에게 ‘이제는 발표도 되고 했으니 반대운동에 동참할 시기도 되지 않았느냐’라고 했더니 배의원이 ‘찬·반으로 갈라져있는데 어느편을 들겠냐’면서 펄쩍 뛰었다. 그러니 누굴 믿겠나.


-송명호 시장과 몇차례 대화를 가진 것으로 알고있다. 어떤 대화를 나눴나?

=명확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요구했었다. 송시장이 취임하기전 시의 입장은 ‘용산미군기지는 조건부로 받아들이돼 미2사단은 절대불가’라고 분명히 했었다. 그것은 송 시장의 의견이 아니더라도 시장으로 취임한 이상 그 입장은 유효한 것이다. 그래서 그간 언론에 기록된 모든 자료를 정리해 시에 전달하면서 최종의견을 밝혀달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명확한 입장발표가 없다. 앞으로 송시장이 전향적으로 나오지 않는 한 대화를 하지 않을 생각이다.

지난 6월 송명호 시장이 취임하자 김지태 위원장은 미군기지이전 문제로 지역시민단체 대표들과 함께 송시장을 면담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송시장이 대추리에 오면 마음을 터놓고 대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이날 참석한 시민단체도 “최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파트너는 된다”고 논평했다.

하지만 두 달이 지난 지금, 김위원장은 송시장이 이전에 했던 발언에 부합하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있다는 이유로 대화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흥분된 기분을 가라 앉히기 위해 가벼운 대화로 전환했다. 어쩌면 이 대화가 김지태 위원장을 인터뷰 해야겠다는 진짜 이유라고 해야할 것이다. 이때는 순박한 동네 이장이었고, 한 가족을 책임지는 가장 이었다.



농사가 천직이라는 생각 지금도 변함없다


-젊은 청년들도 있던데, 이장이라는 책임 때문에 대책위원장을 한것인가?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다른지역도 그렇겠지만 특히 대추리는 과거부터 이장 중심으로 되어있어 자연스럽게 내가 대책위원장을 하게된것이지 특별한 계기는 없다. 이장은 1994년~1995년에 한번, 2002년부터 올해까지해서 두 번째다. 농사는 벼 농사만 2만여평을 짓고있다. 이 논은 내 생명줄이고 삶의 전부이기 때문에 투쟁하는 것이다.


-가족이 궁금하다. 반대운동을 하면서 가족들의 반응은 어떤가?

=부모님과 처, 두 아들, 이렇게 여섯식구 살고있다. 위로 형님이 있는데 5년전 미국으로 이민갔다. 형님에게는 대추리 상황을 일부러 말하지 않고있는데 아마 알고있을 것이다. 가끔 전화를 하는데 ‘알아서 잘 해라’라고 말한다. 아버지는 내가하는 일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아무런 말씀없이 일만 하신다.


-농사꾼이 되겠다는 생각을 언제부터 하게되었나?

=나는 초등학교 다닐때부터 생활기록부를 보면 장래 희망이 농업이었다. 아버지에 의해서 두 번 바뀌기는 했지만. 아버지는 법조인이 되길 원했었다. 대학에 진학할 당시 농업관련 학과는 중앙대와 충남대가 있었는데 등록금이 싼 충남대 농학과를 택했다. 농사가 천직이라 생각하고 있으며, 지금도 변함없다. 그것을 지키려고 한다.

16일 평택시청앞에서 예정된 팽성읍과 서탄지역 이장단 기자회견장에는 어김없이 김지태 위원장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지난 1년동안 미군기지이전반대 집회현장에 빠짐없이 참석했다.

때로는 집회현장에서 마이크를 잡고 “우리는 한평의 땅도 내줄수 없다”고 외치기도 했고, 때로는 침묵으로 항의했다.

1년여동안 반대운동을 해오면서 무엇이 달라졌느냐고 마지막 질문을 던지자 김위원장은 “전에는 미국을 이렇게까지 싫어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너무 싫다.

그 이유는 내가 처음부터 미국을 싫어한 것이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짓만 골라서 하기 때문에 싫어졌다. 반미주의자는 우리가 아닌 그들이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김 위원장은 평범한 ‘마을이장’에서 ‘기지반대 대책위원장’으로, 타의에 의한 ‘반미주의자’로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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