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젓한 산길, 물길, 마을길에서 마음 쉬는 길 4.1km

심복사 입구에 우보살 공덕찬
일꾼으로 살다 죽은 소의 넋 기려

[평택시민신문] 순차적 일정에서 빠진 ‘명상길’을 아내와 거닌 날은 엷은 구름이 낀 날씨. 노익장을 증명하듯 일흔 후반대 안효태 어르신의 고마운 안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안중읍사무소에서 만나 출발지로 가던 길목인지라 심복사를 먼저 들렀다. 입구에 세운 우보살 공덕찬. 광덕산 심복사(深福寺) 사부대중들이 우직한 일꾼으로 살다 죽어간 검은 소들의 넋을 기리는 송가였다. 사찰건립 당시 목재를 운반했던 소들을 깍듯이 보살처럼 묻어주고 심우총(尋牛塚) 앞에서 해마다 성묘를 지낸다니 줄곧 절터를 지켰을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565호)은 뭐라 염불할지 자못 궁금증을 자아냈다. 물론 한번 웃자고 지어낸 얘기로되 나름 짚고 넘어갈 구석은 있어 뵌다. 필자의 요지인즉슨 개고기는 안 되고 쇠고기는 잘 먹는 행태를 따갑게 꼬집으려는 말이다. 불쌍하기로 따지자면 살점을 부위별로 발라낸 뒤 뼈다귀까지 고아 먹는 것도 모자라 발톱에 터럭마저 장식품이나 붓으로 쓰는 걸 보노라면 저리 떠받들 까닭은 갖춘 셈이다.

신왕리 마을회관에 차를 대고 명상길로 접어들었다. 바로 앞길 곁 돌우물을 지나니 줄줄이 논마지기의 행렬. 저마다 포기를 잔뜩 불린 벼꽃의 암술과 수술 비율이 1:6이란 말에 놀라며 항아리로 담장을 친 어느 농가에서 발길들을 멈췄다. 자연 분재를 매만지는 두 여인의 손놀림에는 부지런함이 배었다. 길도우미가 말을 붙이는 동안 식물 생장 분야엔 문외한인 우리 부부는 풀섶에 가린 표지석의 글씨를 풀어헤쳤다. 옆구리에 정성껏 꾸며놓은 예쁜 꽃밭을 카메라에 담고 돌아서니 얼마 전 폭우에 일그러진 도라지꽃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보다 안쓰러운 건 전봇대에 대롱대롱 매달린 명상길 이정표. 사시사철 비바람을 견딘 애처로운 모습에 쉬이 걸음을 떼기 어려웠다. 게다가 밭뙈기 한가운데 심은 복숭아 열매는 한눈에 흉작. 극심한 일교차 때문에 절반은 말라비틀어졌다. 미처 틔우지도 못한 채 시들어버린 달맞이 꽃망울처럼.
 

휴게소 지나 금세 끊긴 자전거도로
앞으로는 이런데 행정력 쏟아야

시부모 극진히 모신 공로 칭송한
경주이씨 효열비로 십리길 끝나

 

얼마쯤 가다가 만난 길잡이 화살표. 재밌게도 명상길은 오른쪽으로 가라 하고, 비단길은 왼쪽으로 가라는 표지였다. 저만치에는 가마골이 있었다는데 지금은 기왓장 굽는 터마저 지워진 지 오래란다. 빗물 고인 흙길을 건너뛰니 시원한 자전거도로. 탁 트인 평택호를 끼고 씽씽 달리는 젊은이들이 있었다. 저 건너편은 백석포. 아닌 게 아니라 흰빛을 띤 건물들이 몇 채 보였다. 누군가 그렸을 그림은 고사하고 이른바 왕터는 어디며 가난한 시절 신왕 나루터에 드나들던 뱃사공들은 죄다 뭍으로 사라졌단 말이냐? 잡풀에 자취를 숨긴 주막을 벗어나니 숨을 고르라는 휴게소. 자전거 팀들을 위한 중간 지점에서 우리는 쉬고 있던 아줌마 한 분과 담소를 나눴다. 그런데 세상이 좁다더니 그분은 전장웅 씨를 잘 알고 있었다. 같은 산악회원이라는 말에 화들짝 놀라며 건강을 화제로 얘기꽃을 피우다 섶길을 소개한 뒤 자리를 떴다.

금세 끊긴 자전거도로. 앞으로 펼칠 시정은 이런 데 행정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이제부터는 호젓한 숲길. 멀리서 해군부대에 갇힌 봉수대가 손짓했다. 안 선생님은 몇 차례 경양포구를 들먹였으나 나는 연신 여러 폭의 산수화를 감상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흐드러지게 핀 개망초 군락과 금계국들 사이를 비집고 뻗어온 칡넝쿨은 으스스한 상엿집을 송두리째 뒤덮어버렸다. 거기서 셋이 건넨 말은 비록 다른 나무는 칭칭 감아 죽일망정 칡 또한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다는 것. 도중에 잠시 돌아본 원신왕마을효공원은 주한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주민 편익시설. 반갑게도 동네에 서당이 있어 대문간에 불쑥 들어섰으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쥔장이 자릴 비워 퍽 아쉬웠다. 짐작건대 한때는 온 마을을 깨운 배움터였으리라. 십리 순환길의 끝은 경주 이씨 효열비. 방수고리(方數古里)의 처로서 시부모를 극진히 모신 공로를 칭송한 기림비였다.

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고등학교에서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 시조집, 기행집 등을 펴냈다. 
퇴임 이후 기고 활동과 더불어 
교육철학 박사과정을 이어가고 있다. 
이충동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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