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들과 길 위에서 시를 읽고 싶어요

20년간 남의 시 가르치다
마흔 넘겨 시를 쓰기 시작


내가 사는 평택 더 사랑하고 
‘시 읽는 도시’만들고 싶어

 

[평택시민신문] ‘하루라도 시를 읊지 않고 못 견디는’ 소녀가 있었다. 권희수 시인의 학창 시절 모습이다. 구비구비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당시를 한 자락 베어낸 모습이 여전히 그에게 남아 있다. 통통 뛰는 목소리, 홍조가 도는 볼과 반짝이는 눈빛… 아직도 시가 좋아 못 견디는 문학소녀 그 자체다.

그러다 권희수 시인은 자신이 사는 평택이 회색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를 행복하게 순수하게 만들어줬던 시를 널리 퍼뜨려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준비한 질문을 채 꺼내기도 전, 그가 학창 시절 읖었던 시를 하나하나 풀어내며 이야기가 시작했다.

 

시가 정말 좋은가 보다

섬진강이 흐르는 순창군 괴정리에서 나고 자랐다. 아침 저녁으로 2km를 걸어 학교에 다녔다. 아침에는 김소월 ‘진달래꽃’, 저녁에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외우며 다녔다. 들판을 건너 섬진강변을 따라 윤슬(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보며 걷다 보면 저절로 가슴이 두근두근해졌다. 돌아보면 자연 속에서 시를 읽는 게 학창시절 정말 큰 기쁨이었다.

 

그러다 자연스레 시를 쓰게 된 건가

시를 쓰지 않고 20년간 남의 시를 내가 쓴 시처럼 가르쳤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본 담임선생님이 너무 멋졌다. 그때부터 교사가 되길 줄곧 바랐고 노력했다.

1984년 고창여고에서 처음 교편을 잡았다. 국어교사로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과 교감하며 시를 가르쳤다. 일방적 교육보다는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교육을 하고 싶어 봄이면 학생들과 진달래를 따러 가고, 가을이면 낙엽을 주워 복도를 장식했다. 사람 사는 곳엔 어디든 시가 있어야 한다고 믿었기에 가능하면 학창시절에 시를 많이 접하는 게 해주고 싶었다. 시는 마음 속 깊은 곳 순수를 일깨워주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마음가짐도 알려준다.

 

1989년 전북은 전교조 활동이 매우 활발했다고 들었다

교사는 선구자요, 선각자다. 기존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 기존의 틀에 머물며 학생들 앞에서 앵무새처럼 얘기하면 바로잡을 수 없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교사를 계속하고 싶은데 해직될까 두렵고 무서웠다. 그러다 광주민주항쟁을 접하고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는 비민주적 교육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다. 교장·교감 신경 쓰지 않고 제자들 앞에서 당당한 교사가 되어 잘못된 교육환경을 바로잡고 교육민주화를 위해 힘썼다.

 

여성운동에도 관심이 높았다던데

어린시절 엄마가 남동생과 나를 차별했다. 그럴 때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가서 그 길을 닦아야겠다, 그래서 뒤에 오는 사람이 편하게 갈 수 있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있다. 그 길이 바로 여성운동이다.

낮에는 학생을 가르치고 밤에는 여성학을 공부하고 여성운동을 펼쳤다. 현수막을 걸고 선언문을 배포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1999년 남녀차별금지법이 제정되는 데 작은 힘을 보탰다고 자부했다.

 

전북에서 평택으로 어찌 왔는지

2000년 교직생활을 마무리하며 경희대 대학원에서 유아교육학을 공부했다. 평택을 지나다가 당시 새로 지은 뉴코아 아울렛을 보며 ‘여기 좋네’ 하고 생각해 평택에서 살게 됐다.

 

평택에 와 본격적으로 시를 쓰게 된 건가

마흔을 넘겨 사랑의 아픔을 겪으며 내 세계가 해체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 힘든 시기에 시가 삶의 버팀목이 되어줬다. 그러다 고통을 인정하고 당시의 분노, 울부짖음을 담아 쓴 시를 모아 2016년 첫 번째 시집 <너를 기다리는 동안에>를 펴냈다.

영국 시인 하우스만(Houseman)은 시를 쓰는 작업을 “상처받은 진주조개가 지독한 고통 속에서 분비 작업을 하여 진주를 만드는 일”에 비유했다. 시인이든 소설가든 글 쓰는 사람은 극심한 내적 고통을 겪으면 영혼의 깊은 상처를 승화해 작품을 쓰게 되는 거 같다.

 

20년간 살아보니 평택은 어떤 도시인가

첫 인상이 메마르고 척박했다. 지금도 산업화, 개발, 군사문화에 치우쳐 한없이 삭막하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도 평택의 문제가 뭐든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자연과 어우러져 평생 살고 싶은 도시가 아니라 다른 도시에 더 좋은 아파트가 있으며 언제든 떠날 도시가 된다. 그래서 시가 필요하다. 시민에게 한 줄의 시를 줘서 내재된 정서를 깨우치고 정서를 촉촉하게 만들어줘야 한다. 함께 시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아낼 수 있다.

지난 10월 두 번째 시집 <당신과 나는 같은 자리입니다>를 펴내고 11월 7일 배다리도서관에서 ‘시민참여 시낭송과 북콘서트’를 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삶이 영원할 거 같지만 어느 순간 죽음이 우리 곁에 와 있다. 그러하기에 내가 사는 평택을 더 사랑하고 ‘시를 읽는 도시’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시를 읽는 도시가 선뜻 다가오질 않는다

문학의 주제를 한마디로 말한다면 ‘어떻게 사랑하며 사는가’에 귀착한다. 동서고금의 모든 작가들은 결국 이 한 가지 주제를 전하기 위해 글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민이 평택을 어떻게 사랑하며 살게 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문학 중에서 시에서 발견할 수 있다. 오성강변 창내리 뜰을 걷다 보면 보면 평택은 정말 아름다운 곳임을 느낀다. 이 아름다움을 시로 써 알리는 게 시인이다. 그 시에 곡을 붙여 시민과 함께 부르다 보면 평택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을 나누는 것도 가능하다. 버스킹 공연과 비슷할 수 있겠다. 길 위에서 시인이 시민과 함께 시를 읽을 수도 있다.

이런 문학적 토대를 탄탄히 하려면 평택시의 창작 지원이 필요하다. 가난한 작가들에게 창작 지원금도 주고 창작할 공간도 만들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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