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5주년·대한체육회 창립 100주년 기념 특별 기획 취재

[평택시민신문] 

한국 근현대 체육발전에 크게 기여한 민족지도자 민세 안재홍 (1948. 10)

한국 근현대 체육발전에 크게 기여한 민세 안재홍 
올해는 대한체육회가 창립된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1920년 7월 조선체육인들의 염원을 담아 조선체육회가 창립되었고 1938년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한국 체육 100주년을 맞아 평택 출신 민족운동가 안재홍이 한국 체육발전에 기여한 몇가지 공적을 정리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 언론, 역사연구와 해방후 정치활동에 가려져 민세가 한국 체육발전에 끼친 업적은 상대적으로 조명이 미흡했다. 
안재홍의 한국 근현대 체육관련 주요 업적은 1929년 10월 1회 축구 경평전 개최, 1931년 2월 제1회 조선체력(역도)선수권 대회 개최, 4월 초대조선 농구협회 회장 취임, 해방 후인 1948년 6월 대한올림픽 후원회 회장으로 첫 올림픽 후원권 발행과 런던 올림픽 지원 등이다.

평택 소사벌 레포츠타운 외벽에 그려진 안재홍 그래피티 (레오다브 작품. 2020년 7월)

1929년 10월 제1회 경(서울)-평(평양) 축구전 개최
안재홍은 조선일보 부사장 시절인 1929년 10월 제1회 경성-평양 축구대회를 개최했다. 당시 조선일보의 경평전 추진은 같은해 4월 민세가 주도적으로 참여해 전국적으로 추진했던 생활개신운동의 하나인 건강증진 실천과 맥을 같이 한다. 이후 수회 지속된 경평전은 한국 축구발전에 크게 기여하며 일제 강점기에 스포츠를 통해 민족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본사(조선일보) 주최 조선체육회 후원의 제1회 경평 축구대항전은 예정과 같이 8일 오후 4 시부터 시내 휘문고보 넓은 운동장에서 본사 부사장 안재홍씨의 “금번 경기는 다만 경기회로써만 축복할 것이 아니라 조선의 양대 도시인 평양과 경성 두 도시의 친목을 위하여 서로 마음으로 축복한다” 라는 의미의 간단한 식사로써 그 경기를 열게 되었는데 넓은 운동장의 주위에는 벌써 정각 전부터 각 방면을 망라한 7,000 여명 관중이 운집하기 시작하여 예상 이상의 성황을 이루었다(조선일보 1929년 10월 10일자 7면).

1931년 2월 한국 최초로 제1회 전조선역기(역도)대회도 열어 
안재홍은 1931년 2월 한국근대역도의 선구자 서상천과 함께 한국에서 처음으로 역도대회도 열었다. 서상천이 이끈 중앙체육연구소 회원으로 역기를 취미로 하기도 했던 안재홍은 이후 꾸준하게 역도 경기에 관심을 갖는다. 후에 역기라는 단어를 역도로 바꾸고 관련 역도 개발에도 힘쓴 체육지도자가 서상천이다.

손을 꼽아 가면서 기다리던 본사와 중앙체육연구소공동 주최의 제1회 전조선 체력(역기)선수권대회는 14일 오후 7시부터 경성공회당에서 개최하였다. 그 날 밤은 일기가 사온 절후에 들어가 봄날  부럽지 않게 따뜻하므로 일반 관중들은 정각 전부터 물밀듯이 모여들어서 넓으나 넓은 공회당 홀은 문자 그대로 입추의 여지가 없을 만큼 대성황을 이루었다. 정각 7 시가 되자 늠름한 출장 선수들의 보무당당한 모습으로써 장쾌한 입장식이 있은 후 본사 부사장 안재홍씨의 의미심장한 개회사와 중양체육연구소 사범 서상천씨의 격려가 있은 다음에 쾌활한 경기의 막은 경량급과 개인 경기로부터 시작하였다.(조선일보 1931년 2월 16일자 2면).

1931년 대한농구협회 전신인 조선농구협회 초대 회장에 취임
 안재홍은 대한농구협회의 전신인 조선농구협회 초대회장으로 한국 농구발전에 기초를 세운 인물이다. 회장 추대 이전 민세는 1929년 6월 제1회 조선여자농구대회 개최를 지원하는 등 남녀 농구의 저변 확대에도 크게 힘썼다. 

수일 전에 창립한 조선농구협회에서는 그동안 회장 추천의 건을 이사회에 일임하여 각 방면으로 교섭중이던바 15일에 이르러 본사 부사장 안재홍씨의 흔쾌한 승낙을 얻어 정식으로 취임하기로 결정하였다(조선일보 1931년 4월 17일자 7면).

1948년 6월 대한올림픽후원회 회장으로 한국 최초 복권(올림픽 후원권) 발행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힘쓴 민세는 1948년 6월 20일 신생 대한민국이 처음 출전하는 런던올림픽을 지원하기 위해 조직된 대한올림픽 후원회 회장을 맡아 왕성하게 활동했다. 당시 런던으로 떠나는 선수단의 여비 모금을 위해 회장 명의로 올림픽 후원권을 발행하는 데 이것이 한국 최초의 복권이다. 배를 몇차례 갈아타며 1개월 이상 여정으로 고생 끝에 런던에 도착한 한국 선수단은 역도의 김성집 선수(후에 태릉선수촌장 역임)가 대한민국 최초 메달이자 올림픽 동메달을 따서 신생 대한민국 스포츠의 위상을 전세계에 알렸다.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제 14회 국제올림픽대회에 체육 조선의 명예를 걸고 세계 58 개국에서 파견해 온 최우수 선수들과 어깨를 가지런히 하며 승패를 결정할 우리 대표 선수와 임원 등 일행 70 명의 올림픽 파견단 결단식과 환송회는 예정과 같이 18일 오후 4시부터 녹음에 우거진 성동원 구장에서 국회의장 이승만 박사를 위시하여 안재홍 올림픽 후원회장, 김 서울시장 ,구 경기도지사, 김훈 민정장관 보좌관,  헬믹 대장 등 내외국 명사가 다수 참석한 가운데 엄숙,성대히 거행되었다. 식장에는 태극기와 오륜기가 하늘 높이 휘날리고 이 날의 모임을 경축하는 시내 남녀 중등 학생과 일반 관중은 수만에 달하여 자못 장관을 이루었다(조선일보 1948년 6월 20일자 2면).

YMCA 출신 안재홍의 민족체육정신 기리는 기념 행사 기획 추진도 필요  
이 밖에도 자료를 보면 민세는 일제 강점기정구대회, 야구대회, 권투, 축구연맹전, 전경기소년축구대회, 보건체조강습회 등 다양한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고 지원했다. 이런 공적 때문에 해방 후 대한체육회 회장에 피선되기도 했던 안재홍은 청년기부터 스포츠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 민세는 현 서울YMCA의 전신인 황성기독교청년학관을 졸업했고, 일본 유학 후 돌아와 잠시 중앙YMCA 간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안재홍의 청년기 YMCA 경험은 다양한 분야의 체육 활동과 인맥 형성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 향후 안재홍의 스포츠 애호 정신이 평택 지역사회와 특히 체육인들에게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6월 평택시와 평택시 체육회가 소사벌 레포츠 타운에 그래피티 작가 레오다브와 함께  안재홍 등 독립운동가들의 캘리그래피를 그려 넣은 것은 장소성에 비추어 아주 적절한 작업이었다. 앞으로로 민세가 많은 애정을 기울인 축구, 농구, 역도 등에서 기념 체육행사 기획을 통해 민세의 정신이 평택 지역사회에 널리 알려지면 좋겠다.

황우갑 본지 시민 전문기자·민세기념사업회 사무국장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키워드

#N
저작권자 © 평택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