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균평택대 미국학 교수

[평택시민신문] 2020년 올해는 우리가 해방된 지 75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75년 이전 문제에 대한 사회적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얼마 전에는 6.25전쟁의 용장으로 평가되는 한 장군의 죽음을 놓고 이견이 노출되기도 했다. 그의 장지를 놓고 다툼이 벌어졌던 것이다.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 어떤 부분을 평가의 핵심 기준으로 삼아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사례였다. 평범한 시대가 아닌 굴곡진 어려운 시대를 산 인물일 때 그에 대한 평가는 더욱 힘들다.

며칠 전 미국 버지니아 주에서는 로버트 리(Robert Lee) 장군의 동상을 철거하는 일로 재판이 있었다. 남북전쟁 중 남부군의 영웅으로 추앙받아온 리 장군의 동상을 주 정부가 나서서 제거하려고 하자 해당 지역 주민들이 반대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이에 법원이 주민들의 손을 들어 주어 일단 주 정부의 동상 제거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지난 5월 미국 미네소타 주에서 한 흑인 남성이 경찰의 과잉 행동으로 사망하는 일이 발생한 후 미국 전역에서는 흑백 차별에 대한 거센 항의가 이어졌다. 많은 주민들이 거리로 나와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항의 데모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 사회에 내재 되어있던 인종차별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상황이다. 특히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고, 인종문제를 대하는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와 민주당 후보 조 바이든의 정치적 계산도 달라 이번 항의 시위는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미국 남북전쟁 남부군 영웅 로버트리 
동상 철거 주민 반대로 무산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 
역사 인물도 시대에 따라 재평가
광복 75주년, 일제 강점기 역사인물 
균형 잡힌 평가 가능한 나이 아닐까

인종차별에 대한 항의 시위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 여러 곳에서도 벌어지며 역사적 위인들로 평가되던 인물들의 동상을 훼손하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벨기에에서는 과거 식민지 콩고에 대한 학정을 이유로 19세기 후반 벨기에의 국왕이었던 레오폴트 2세의 동상에 페인트가 칠해졌고, 영국 브리스톨에서는 자선가로 명성이 높았던 에드워드 콜스톤의 동상이 강물에 던져졌다. 콜스톤은 노예무역으로 재산을 축적하여 자선가로 이름을 얻은 인물이었다. 영국의 국가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윈스턴 처칠의 동상에도 ‘인종주의자’라는 모욕적인 글이 쓰여 졌다. 미국 보스턴에서는 콜럼부스 동상의 목이 잘려나갔고 남부 여러 주에서는 남북전쟁 이후 세워진 남부 지도자들의 동상들이 대거 철거되었다.

그런데 리치몬드 시의 로버트 리 장군의 동상은 예외가 된 것이다. 리 장군은 버지니아에서 태어나 미국 웨스트포인트에 있는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서 평생을 보낸 존경받는 군인이었다. 1861년 봄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대통령이던 아브라함 링컨이 그를 연방군(북군)의 최고사령관으로 임명하였으나 버지니아 주가 남부에 가담하자 남부를 선택하여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는 연방에 대한 충성 이전에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버지니아 주에 대한 충성이 더 우선한다며 연방군의 총사령관직을 사임했다, 남부군 총사령관이 된 리 장군은 1863년 여름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패배할 때까지 연전연승을 기록하며 북부 연방군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1865년 4월 리 장군은 북군의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 워싱턴 대학(Washington College) 총장이 되어 후진 양성에 몰두했다. 1870년 리 장군이 사망하던 해 워싱턴대학은 워싱턴-리 대학교(Washington & Lee University)로 명칭이 바뀌어 지금까지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리 장군의 동상이 앞으로 어떤 운명을 맞을지는 더 두고 보아야 알 수 있겠으나, 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리 장군은 남부의 우상으로 당분간 더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시각에서 본다면 리 장군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역사학자 카(E.H. Carr)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선대의 역사적 인물들의 일부 허물을 근거로 후속 세대들이 가혹하게 단죄하는 것이 ‘과거와 현재의 대화’일까? 고난의 시대를 살며 후속 세대가 누릴 삶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기여한 역사적 인물을 평가할 때 그 허물만 볼 것인가? 그렇다고 허물을 덮을 것인가? 쉬운 문제는 아니다. 역사적 인물은 시대에 따라 재평가되고 그에 대한 역사 역시 다시 쓰여 지게 되어 있다. 광복 75주년, 일제 강점기를 살았던 역사적 인물들에 대해서도 균형 잡힌 평가가 가능한 나이가 아닐까?

2016년 11월 미국 대선 직후부터 월 1회 연재된 <김남균 교수의 글로컬 프리즘>은 이번 호를 끝으로 마감합니다. 2020년 8월 미국 대선이 한창인 지금까지 지난 4년간 미국 역사와 현재에 대한 깊이 있는 시각과 통찰력 있는 조명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교훈과 생각 거리를 제공해 주신 평택대학교 김남균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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