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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도였던 검사, 평택에 둥지를 틀다박종호 변호사
김윤영 기자 | 승인 2020.07.29 11:15

평택에 변호사사무소 연 지 3개월
검사로 10년 쌓아온 경험이 장점 

변호사 윤리의식·자부심 지키며 
정확한 법률서비스 제공하겠다 

[평택시민신문] 박종호(47) 변호사는 직업적 경력으로는 평택에 아무런 연고가 없다. 강원도 원주가 고향이고 사법고시 45회에 합격한 후 10년 간 서울남부지검, 울산지검 등에서 검사로 근무했다. 그래서 평택에서의 변호사 개업은 정말 의외롭다. 하지만 그가 살아온 궤적으로 아는 사람은 박 변호사의 결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컴퓨터공학도였다가 사법고시에 도전했고, 검사로 일할 때에는 윗사람에 잘 보이려 하지 않고 함께 일하는 동료와 어울리길 즐겼다. 본인이 근무했었던 울산에 변호사사무소를 냈지만 4살 된 딸이 자라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싶어 주저없이 평택으로 변호사사무소를 옮겼다. 

동삭동 법원 앞에서 변호사사무소를 낸 지 3개월째라는 박 변호사를 만나 짧은 평택살이와 앞으로의 계획을 들어보았다. 

공대생이 사법고시를 보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 공대가 적성에 맞지 않았나
고등학교 시절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고 이과가 적성에 맞았다.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지망해 대학도 재미있게 다녔다. 그런데 방위산업체에 근무하며 병역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평생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다. 
한 벤처업체에서 프로그래밍 업무를 했다. 종일 가만히 앉아서 컴퓨터 화면만 보고 있자니 정말 재미가 없고, 함께 일하는 다른 분들을 보니 생기가 없어 보였다. 이런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지 말고 뭔가 새로운 것을 해야겠다고 자각했다. 그래서 방위산업체에서 나와 무작정 현역으로 군대를 갔다. 

주위에서 많이 말렸을 것 같다
친구들이 3년만 참았다가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렸다. 그런데 3년 동안 그곳에서 일하면 다시 도전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군대에 갔다. 바로 현역으로 안 와도 되는데 굳이 왜 왔을까 하며 후회하기도 했다. 
2001년 1월에 제대하고 보니 어느새 28살이 됐다. 군대 안에서 계속 생각했지만 구체적인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 그러다 변리사를 하는 선배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 변리사가 어떤 직업인지 전망이 어떤지 물어 보니 선배가 “변리사를 하다 보면 변호사와 협업할 기회가 많은데 변호사가 업무 영역이 넓고 대우가 좋다”며 “열심히 하면 변리사나 변호사를 준비하는 기간이 비슷하니 본인이라면 변호사를 도전하겠다”고 넌지시 권했다. 진지하게 고민해 보고 바로 사법고시를 준비했다. 

법에 관해서 백지 상태였을 텐데 사법고시 공부가 어렵지 않았나
서울대를 다녔어도 신림동 고시촌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 뒤늦게 고시촌에 있는 독서실에 들어갔는데 막막했다. 고시촌에 있는 서점에 들어가 고시공부를 처음할 때 볼 책을 추천해달라고 해서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 민법책을 보는데 한 달이 걸렸다. 내용도 낯설고 한자도 많아 쉽지 않았다. 형법도 있고 공법도 있는데 8개월 동안 언제 다 하나 싶었다. 책을 추천해준 서점을 다시 찾아갔다. 
서점 아저씨가 고시학원에서 강의한 것을 녹음한 테이프를 알려줬다. 한 상자에 2만원인가 3만원 했다. 음질은 좋지 않았지만 강의 들으며 책을 보니 효과가 좋았다. 

고시공부가 쉽지 않은데 자신감이 있었나
아무것도 몰라서 겁이 없었다. 사법고시에 도전한다고 하니 부모님도 반대하셨다. 법 공부를 한 적도 없고 군대 다녀와서 머리도 굳지 않았냐고 비관적으로 보시더라. 무엇보다 기약 없이 계속할 수도 있다고 걱정하셨다. 그래서 8개월 후에 있을 1차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바로 접겠다고 약속드리고 고시공부를 시작했다. 
법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텅 빈 상태에서 열심히 우겨넣어가며 최선을 다했다. 부모님과의 약속대로 1차 시험에 바로 합격했다. 3개월 뒤 2차 시험을 보려고 하니 추가하는 과목이 4개가 되더라. 내년에 2차 볼 생각을 하고 감을 익힐 겸 도전했다. 마지막 날 치른 형사소송법에서 과락해 떨어졌다. 
다음해에 2차 시험에 통과해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사법연수원 35기인데 다른 연수생들이 처음에는 신기해 했다. 연수생 중에 공대생은 찾을 수 없었고, 나이도 꽤 젊은 축에 속했다. 

검사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사법연수원 시절에 검사로 실무 수습을 나가 보니 서로 협의하고 의견을 나누는 분위기가 참 좋아 보였다. 검사로 임용되고 보니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는 것도 좋고 서로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적성에 맞았다. 
맡은 분야도 처음에는 사기·절도 등 형사사건이 중심이었다 금융·세제·특수 등 전문 분야로 넓어지다 보니 보람도 느꼈다. 
다만 10년 간 검사 생활을 하다 보니 검사 조직 특유의 권위적 분위기는 맞지 않았다. 윗사람에게 잘 보이고 좋은 말로 비위 맞추는 것은 잘 하지 못했다. 다소 불합리하게 생각되는 지시가 내려와도 조직에 필요하다 생각해서 열심히 했다. 스스로를 자유로운 영혼이라 생각한다. 검사로 복무하며 동료 검사,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으쌰으쌰 힘을 모아 일하고, 맛있는 것을 함께 먹으러 가는 그런 일상이 좋았고 즐거웠다. 

요청이나 청탁이 들어올 때도 있었나
검사로 일할 때에는 아무래도 사람 만나는 것이 조심스럽다. 친척이나 친구를 통해 연락이 오면 “이런 연락은 받지 않습니다”라고 딱 자르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잘 검토해 보겠다’고 답변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지인이 요청한다고 해서 법 적용이 달라지진 않는다. 

검사에 따라 법 적용이 달라질 수 있는지 궁금하다
검사가 임의로 판단해 법을 적용할 영역은 많지 않다. 유죄가 무죄가 되거나 무죄가 유죄가 되지 않는다. 법을 적용할 때의 지침도 세분화돼 있고, 참고할 만한 판례도 해방 이후 방대하게 쌓여 있다. 검사들이 자의로 법 적용을 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결제 시스템도 있다. 
다만 성향에 따라 구속 여부나 형량 등에서 다소 미세하게 차이는 날 수 있다. 

변호사 개업을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
10년 넘게 검사 생활을 하면서 꽉 짜인 공직 생활에 많이 지쳤다. 
무엇보다 43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결혼하면서 일상이 크게 바뀌었다. 소개팅이나 선을 볼 기회가 많았는데 결혼을 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방을 돌며 근무하다 보니 연애를 할 여건이 안 됐다.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이 후딱후딱 지나가 마흔을 넘겼다. 
앞서 말했듯이 자유로운 영혼이다 보니 가족과 함께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변호사 개업을 고향이 아닌 평택에서 하게 된 이유가 있나
평택에 온 가장 큰 이유는 가족이다. 평택에 사무실을 내기 전에 검사로 근무했던 울산에서 변호사사무소를 냈다. 아내가 친정이 있는 평택에서 딸을 키우다 보니 3년간 주말부부로 지냈다. 딸아이가 자라는 모습을 주말에밖에 보지 못하다 요새 매일 보니 정말 행복하다. 
장인 어른과 장모님의 적극적인 지원도 영향을 미쳤다. 두 분 모두 평택에 오래 사셨고 사회활동을 활발하게 하셔선지 평택에 자리 잡는 데 도움을 많이 주셨다. (인터뷰에 언급하지 않았지만 박 변호사의 장인은 평택시청 국장을 역임한 한철원씨다)
사람 만나는 것을 어려워하는 편이 아니다 보니 평택에서 사람 만나 사귀는 것도 편안해서 좋다. 

변호사로서 본인의 장점은 무엇인가
검사로 일해온 경험이 아닐까 한다. 검사로 일할 때 한 달에 200~300건의 사건을 처리했다. 사건 서류를 보고 요점을 파악하는 속도는 정말 빠르다. 10년간 처리한 사건이 수만 건이 넘고 그 과정에서 축적한 노하우는 무시할 수 없다. 
현재에는 형사 사건을 주로 다루고 있으며 민사·금융 등의 분야로 영역을 넓힐 계획이다. 

법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며 어떤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려 하는가
법이란 진실과 공평으로 정의할 수 있다. 당사자 간 생각과 말이 다를 경우 법조인은 무엇이 진실인지를 찾아야 하고, 그 진실에 의지해 공평하게 조치해야 한다. 이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 벌 받을 사람은 벌을 받고, 권리가 있는 사람은 당연히 권리를 누리게 해야 한다. 
변호사로서 넓은 시야로 사건을 들여다보고 종합적이고 공정하게 판단해 최상의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고 싶다. 장점을 꼽자면 정확하고 냉정한 판단이라 하고 싶다. 사건을 해결하는 데 필요한 법적 조치가 무엇이 있고, 조치를 취했을 때 성공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를 솔직하게 알리겠다. 
최근 변호사 간 경쟁이 치열해져 무리하게 수임을 시도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돼 우려스럽다. 변호사로서의 자부심과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의뢰인에게 필요하고 정확한 법률 정보를 제공하겠다. 

평택의 첫인상은 어떠했나
역동적이고 빠르게 성장하는 도시라고 느꼈다. 평택이 성장하는 만큼 저도 함께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다. 풍부한 사건 처리 경험을 토대로 한 고품질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할 자신이 있다. 

지역사회를 위해 법률적 재능을 기부할 생각이 있나
앞서 말했듯 변호사는 자부심과 윤리의식을 가져야 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무료 법률 상담, 지역사회에 필요한 공익적 자문 등 법률 봉사를 적극적으로 나설 생각이다. 특히 어려운 상황에 처한 청소년을 도울 일이 있다면 기꺼이 나서겠다. 

김윤영 기자  webmaster@pt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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