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유품 기증 운동 활발히 펼쳐지기 바라며 선양 사업 앞장서 온 평택시에 감사

[평택시민신문] 평택시는 평택을 대표하는 국악 명인 고 지영희 선생이 1972년 미국 카네기 홀에서 최초로 국악 공연을 했을 당시 사용한 국악기 ‘양금’을 하와이에 거주하는 명인의 장남 지재현 씨에게 기증받았다고 6월 16일 밝혔다. 이 악기는 46년 동안 지재현씨가 소장해 오던 것이다. 지씨는 오는 7월 평택호 한국소리터에 개관하는 ‘한국근현대음악관’ 개관에 맞춰 평택시에 기증하며 심경을 담은 글을 본지에 보내왔다.

 

지영희 명인의 장남 지재현씨

지난 2017년 가을 나의 지인은 나에게 이런 말 한마디를 들려주었다. “한 가정의 가장이 아니라 아버지의 아들 그리고 그분의 장손으로 와서 훈장 추서식에 아버지 대신 훈장을 받고 다녀가라”. 그 당시 나의 주변 환경은 잠시라도 한국을 다녀올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심사숙고한 끝에 아내의 동의로 한국에 다녀오기로 결정했다.

2017년 12월 8일 정부가 수여하는 ‘은관 문화 훈장’을 아버지를 대신하여 받았다. 그동안 많은 한을 가지고 계셨을 아버지의 마음을 되새기며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버님께서는 항상 고국의 품을 그리며 7년 동안의 힘들고 한 많은 미국에서의 삶을 사셨다. 37년이라는 긴 침묵의 시간이 흐른 후 고국의 부름으로 아버님께서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실 수 있게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감사의 눈물이 마음속으로 흘렀다.

다음날 나는 경기도청과 평택시에서 헌신적으로 만들어주어 평택시 한국소리터에 위치한 지영희 국악관과 지영희 홀 그리고 내기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특히 지영희국악관을 방문했을 때 느꼈던 벅찬 감정이 지금도 새록새록하다. 그곳에 전시돼있는 한 점 한 점의 소장품들은 나를 한 걸음 더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게 만들어 주었다. 눈에 익혀 들어오는 유품도 있었지만 생소한 소장품도 보면서 옛일과 그 물건들 속에 간직된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며 아버지를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 부터 전국을 타고 돌아다니시며 많은 자료들을 수집하던 ‘자전거’에 대하여는 잘 모르지만(후에 들어서 앎), 아버지께서 어머니 몰래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시며 차마 집에까지 가지고 오지 못하고 대신 집 앞에 있던 철물점에 오토바이를 두고 집에 걸어오시다가 어머니에게 꽤 많이 혼나시던 모습이 얼핏 떠올랐다. 더구나 사고로 다친 후에는 어머니에게 들켜서 혼날까 혼자서 몰래 빨간약을 바르시던 모습 등 너무나 힘든 것도 잊으신 채 오로지 국악 발전에만 전념하셨던 모습들이 다시 눈에 떠올랐다.

아버지의 혼이 담겨져 있는 지영희 국악관을 관람하면서 그곳에 있던 모든 유품들이 만약에 개인 소장으로 개개인들이 가지고 있었다면 별 큰 의미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여행을 하다 보면 유명한 곳들을 많이 만난다. 캘리포니아주의 허스트캐슬(Hurst Castle)은 당대에 신문사를 운영하며 많은 부를 모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건축한 성이다. 지금은 세계에서 이 아름다운 곳을 관람하기 위해 매년 75만 명의 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캘리포니아의 또 다른 명소인 헌팅턴 도서관(Huntington Library)은 연 80만 명의 사람들이 찾아오며, LA근처에 위치한 게리센터(Gary Center)에는 연 150만 명의 관람객들이 찾아오고 있다. 그런데 이 세 곳에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이 세 곳 모두 자기들의 소유였던 것들을 무상으로 기증을 한 것이다. 이들의 순수한 기증으로 인하여 지금은 우리 모두가 그곳을 방문하여 그들의 귀한 소장품들을 관람할 수가 있다. 우리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소유를 다른 이들과 나누기 위해 무상으로 기증을 한다.

이곳 미국에서는 작은 도시에 가더라도 반드시 있는 것이 그 지역에 살았던 원주민 즉 인디언들의 생활 모습을 만들어낸 지역 박물관들이다. 어느 인디언 부족은 북쪽 즉 알래스카에서 내려온 부족들도 있는데 더 자세히 올라가보니 몽골리안에서 파생이 되어 이곳까지 내려온 원주민도 있다는 걸 알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 한민족과 같은 혈통을 갖는 민족이란 걸 알게 되었고 자세히 그들의 모습을 보니 우리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 수가 있었다.

외형적 크기의 크고 작음으로 결코 그 지역 박물관, 음악관, 또는 홍보관들의 가치를 판단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먼저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준비한 모든 이들의 마음을 느끼고 감사해야 하며 수고한 그들의 손길에 고마움을 느껴야 한다.

고 지영희 국악명인이 생전에 소중히 아끼며 연주회에 직접 갖고 다니던 국악기 양금

내가 지난번 훈장 추서를 통해 느낀 점은 이제는 나의 아버지 ‘지영희’는 이제 나 혼자만의 아버지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제 그분은 명실공히 평택시를 빛내며 대한민국 국악계의 아버지로 자리매김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 ‘지영희’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악계의 아버지이기에 나 혼자만이 간직하는 아버지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을 넘어 우리 음악을 세계에 알리는 세계의 아버지로 거듭나야 한다는 마음이 더욱 절실해졌다.

물론 받은 훈장은 지영희국악관에 기증하고 돌아왔다. 분명 우리 집안에 큰 경사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훈장을 보이며 자랑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잠시뿐 돌아오는 장시간의 비행기 안에서 국악관에 기증을 하고 온 것에 대하여 마음이 흐뭇해졌다. 왜냐하면 그 훈장의 참 주인은 평택시의 주민들이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 국민들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평택호 한국소리터에 ‘한국근현대음악관’이 개관한다는 소식을 듣고 무언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소중히 간직해 오던 아버지 유품 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오래된 ‘양금’이었다. 아버지와 오랜 시간 함께 했던 악기이다.

2017년 12월 아버님 대신해 정부의
​‘은관문화훈장’ 받을 때의 감격 잊을 수 없어

‘지영희국악관’의 아버님 유품 보며
‘지영희’는 평택시 빛내는 국악의 아버지라 생각

전부터 그리하리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보내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기에 그랬던 것 같다. 아무래도 예민한 악기이다 보니 직접 가지고 가는 것이외에 다른 방법을 찾지 못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문득 방법이 떠오르며 보내는 방법에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 방법대로 하면 아버지가 잘 지켜주셔서 안전하게 한국으로 보내질 것 같은 믿음이 생겼다. 나는 우선 커다란 상자와 물품들을 준비하며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양금’은 아버지께서 생전에도 소중히 아끼시며 연주회 때 마다 직접 가지고 다니시던 유품이다. 생각컨대 아버지께선 7월에 개관을 앞둔 ‘한국근현대음악관’이 당신의 유품이 있어야 할 곳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번에 평택시로 이 유품을 기증하게 하셨나 보다. 당연히 아버지의 유품은 우리 모두에게 돌려드려야 한다는 나의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취해야 할 최소한의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아직도 아버지의 많은 유품들이 여기저기 개개인들이 소장하며 흩어져 있다. 바라기는 이번 기회를 통해서 진정으로 그 분을 존경하고 또 우리 후손에게 좋은 결실들을 남겨주기 위한다면 개인의 이득보다는 후세의 참 역사 인식을 위해 아버님의 유품 기증 문화가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 혼자 가지고 있는 유물들은 언젠가는 아무도 모르는 어두운 곳에 그대로 묻혀 버리지만 모두에게 공유를 하게 되면 좋은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기쁨과 자부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다만 염려스러운 점도 있다. 아버님이 ‘은관문화훈장’을 받았지만, 아직도 확실하게 대한민국에서 복권되지 않은 현실 속에서 나의 이번 기증에 대해 주변에서 비방적인 말들이나 쓸데없는 행동으로 비판을 하는 이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비판의 말을 나에게 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바라기는 제발 그런 생각들은 하지 말고 우리의 것들을 소중히 아끼며 이런 기증 문화에 모두가 함께함으로써 우리의 것들을 잘 보관해서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마음이 꽃피기를 바란다.

이번에 기증하는 유품은 비록 한 점(실제는 두 점)이지만 아버님께서 생전에 직접 연주를 하신, 고인의 손때가 묻어있는 악기(양금)다. 이 악기를 실제적인 주인인 모든 국민들에게 돌려드리며 평택시와 지영희국악관에서는 책임 있는 행동으로 이 모든 귀한 유품들을 잘 관리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 아울러 어떤 경우에도 매매나 양도는 허용하지 않음을 알려드린다. 그동안 지영희 선양 사업에 적극 노력해 주신 평택시 당국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선양사업을 통해 우리의 소리와 소중한 문화자산이 후세에까지 잘 알려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노력을 당부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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