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오피니언 김남균교수의 글로컬 프리즘
6.25 전쟁과 미군의 흑백통합
평택시민신문 | 승인 2020.06.11 11:30
김남균
평택대 미국학 교수

오랜 차별과 분리정책 전환의 첫 계기는 6‧25전쟁
백인군인 희생 커지자 흑백부대 통합 운영 최초 시행

우려하던 갈등 없어 휴전 후에도 미군 흑백통합 지속
미국 국경 넘어 미래지향적 차별철폐 정책 절실
  

[평택시민신문] 올해는 6.25 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되는 해이다. 6.25 전쟁은 남한과 북한의 전쟁을 넘어선 국제전쟁이었다. 참전국 숫자를 모두 합치면 수십 국에 이른다. 그 중 미군은 1950년 7월 5일 오산 죽미령 전투를 시작으로 1953년 휴전될 때까지 3만 명 이상의 병력을 잃었다. 민주진영을 위하여 미국이 치른 희생이었다. 그 후 미국은 냉전의 질서 속에서 민주진영의 지도적 지위를 누렸다.

최근 미국에서 인종차별에 반발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미네소타 주 미니아폴리스 시에서 백인 경찰관에 의하여 체포되던 흑인이 사망한 사건이 시위의 직접적 발단이었다. 경찰관 한 명의 불법적 공권력 행사로 볼 수도 있겠지만, 시위자들은 백인 경찰관의 행동은 인종차별적 불법행위였다며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인종차별문제는 미국 역사만큼이나 뿌리가 깊다. 1607년 신대륙에 영국인들이 식민지를 개척하기 시작한 지 10 여년 만에 흑인노예제도가 정착되었다. 노예제는 1865년 헌법 수정조항 13조가 추가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노예제도가 폐지된 후에도 사회적 흑백차별은 그대로 남았다.

1950년 6.25 전쟁 때도 미국은 흑백차별사회였다. 흑인들과 백인은 학교와 교회를 비롯하여 모든 공공시설에서 공간적으로 분리되었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6.25전쟁 초기까지 미군은 백인부대와 흑인부대가 따로 편성되어 있었다. 흑인들은 훈련 때부터 백인들과 분리되었다. 일시에 많은 흑인들이 입대하여 흑백의 균형이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미군은 흑인 입대자의 숫자를 백인 입대자의 10퍼센트로 한정지었다. 훈련 후 흑인병사는 흑인부대에 배속되었다. 흑인부대의 군대 내 역할도 백인부대와 달랐다. 흑인부대는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대신 병참과 같은 백인부대를 지원하는 업무를 주로 맡았다.

그런데 6.25 전쟁이 미군 내 흑백분리 정책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이유는 6‧25 전쟁이 미군의 예상과 다르게 전개된 탓이었다. 6.25 전쟁 참전 초기 미군 지휘부는 전쟁의 조기 승리를 예상했다. 7월 5일 오산 죽미령에서 북한군과 처음 교전한 스미스 부대 (Task Force Smith)의 총병력은 500여 명이 전부였다. 예상외의 압도적인 북한군의 전력에 밀린 미군은 오산에서 패배하였을 뿐 아니라 낙동강까지 후퇴했다. 필사적으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키던 미군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는 병력 부족이었다.

병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미군은 흑백 입영 비율제를 폐지했다. 그에 따라 신병훈련도 흑백 통합방식으로 운영되었다. 거기다 6.25 전쟁 초기 백인부대만 전투에 참여한 결과 전사자가 백인부대에 주로 발생하며 병력 부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반대로 후방 업무를 맡은 흑인부대의 병력에는 여유가 있었다. 결국 미군은 흑인부대를 따로 편성하는 것을 포기하고 전투지의 모든 흑인부대를 백인부대와 통합했다. 6.25 전쟁 덕분에 흑인이 군대에서 백인과 동등한 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미국 사회에서 흑백통합이 법적으로 인정된 것은 1954년 연방 대법원의 브라운 판결 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까지도 남부의 일부지역에서는 흑백통합이 현실화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6.25 전쟁 중 미군의 흑백통합은 시대를 앞선 조치였던 것이다. 흑백통합에 대하여 미군 지휘부 내부에 우려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그러나 통합 후 우려하던 갈등이 발생하지 않자 미군은 6.25 전쟁의 휴전 이후에도 흑백분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미군의 흑백통합은 6.25 전쟁이 미국에 가져다 준 예기치 않았던 선물이었던 셈이다.

6.25 전쟁 중 군대의 흑백통합을 단행하였던 미국이 70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인종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속히 미래지향적인 차별철폐의 해결책이 나오길 기대한다. 인종문제는 이제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점차 다문화사회로 바뀌는 우리 사회도 깊이 생각할 문제이다. 비록 전투 상황이 가져 온 변화였지만 6.25 전쟁 중 미군 부대의 흑백통합은 인류의 보편적 미래 가치의 실천이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외부필자의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평택시민신문  webmaster@pttimes.com

▶디지털 뉴스콘텐츠 이용규칙 보기
<저작권자 © 평택시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페이스북

icon카카오톡

icon카카오스토리

icon밴드

icon구글

평택시민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우)450-020 경기도 평택시 중앙2로 145  |  등록번호 경기 아 51244  |  등록연월일 : 2015년12월17일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기수  |  발행·편집인 : 김기수  |  제보 및 각종문의 031-657-0550  |  팩스 031-657-0551
Copyright © 2020 평택시민신문. All rights reserved. webmaster@pttimes.com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