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의 달 유월을 노래하는 시인

[평택시민신문] 지난해 현역 육군 장성이 쓴 <지금, 당신이 행복해야 할 이유>가 베스트셀러에 올라 화제를 모은 적이 있다. 이 책을 쓴 주인공은 수도군단사령부 부군단장으로 재직 중인 김인수(55) 준장이다.

안성 죽산에서 태어난 문학소년은 평택고등학교에 입학하며 평택과 인연을 맺었고 육군사관학교 44기 졸업생으로 육군의 주요한 보직을 역임했다. 이사를 24번 다닐 정도록 녹록치 않았던 군생활이었지만 그의 손에서 책이 떠난 적은 없었다. 강력한 정병 육성을 위해서는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는 신념으로 병영 독서운동을 펼쳤으며 인문학 강좌와 문화예술 특강을 유치하며 인문학적 소양을 군인의 덕목으로 승화시켰다.

36년간 군인, 시인, 수필가, 독서운동가라는 독특한 이력을 쌓아온 김인수 준장은 “군인은 인간을 깊이 사랑하고 그 존엄을 성찰해야 한다”며 독서를 통한 군대의 변화를 꿈꾼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고 들었다

안성시 죽산면에서 태어나 자랐다. 평택고등학교에 입학하며 평택에서 하숙하는 유학생활을 했다. 어렸지만 미래를 위해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기에 힘들지 않았고, 오히려 좋은 친구와 선후배를 얻게 돼 살아가는 데 큰 자산이 됐다.

어렸을 때부터 책읽기를 참 좋아했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공부하라’는 말을 한 번도 하신 적 없다. 오로지 책을 사셨다. 아버지는 평생 땅 한 평 사시지 않고 그 돈으로 책을 사서 제게 주셨다. 자녀에게 돈이 아닌 지식과 지혜를 남겨주신 것이다.

올해 83세가 되신 아버지는 죽산면장을 지내고 퇴직하신 후에도 끊임없이 공부하시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계시다. 퇴임 후 전업작가를 꿈꾸는 제게 아버지는 존경하는 어른이자 본받고 싶은 롤모델이다.

 

사관학교 시절은 어떠했는가.

고3이 되자 진로를 결정해야 했는데 한 선배가 사관학교를 권했다. 규율과 질서를 중시하는 군인이 적성에 맞다고 판단해 지원하게 됐다.

독서습관은 고등학교와 사관학교 시절에도 이어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육군사관학교 우당도서관과 생도회관 내에 있던 화랑서점이다. 화랑서점 주인이 “김인수 생도가 육사에서 책을 가장 많이 샀다”며 국군의 날 시가행진에서 조카를 보내어 꽃목걸이를 걸어주기도 했다.

4년간 공부한 것을 토대로 지(知)·인(仁)·용(勇) 군사학술문예상에 논문 ‘월남전 전쟁문학에 나타난 전쟁관과 주제’으로 인(仁) 부문 우수상을 받은 것도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고 책만 읽은 것은 아니다. 사관학교 시절 동기회장을 맡는 등 책임감있는 생도로 인정받았다.

 

감정을 절제해야 하는 군인, 감성을 표현하는 시인이라는 두 직업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추는가

처음부터 작가를 꿈꾼 것은 아니고 평생 책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글을 쓰게 돼 등단으로 이어졌다. 2014년 수필가로, 2015년에 시인으로 각각 등단했다.

1988년 경기도 벽제에 있는 1군단 특공연대 소대장으로 임관한 이후 복무를 마치고 귀가하면 하루도 빠짐없이 책을 읽었다. 7년 전부터는 밤 10시부터 새벽 1시까지 책을 읽고 시를 썼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과 사를 구분하고 업무시간에 어떠한 다른 감정이 개입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련해왔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작업은 일과 후 개인시간이나 주말에 매진했다.

두 직업이 서로 얽히지 않도록 경계를 분명히 하고 생활해야 군인으로서의 자신과 시인으로서가 자신이 함께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군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직업’
어떤 직업보다 인문학적 소양 필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지 못한 군인에게 쥐어진 총칼은
폭도의 흉기보다 더 위험하다”

본인의 아호인 인산(仁山)을 딴 ‘인산편지’를 7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SNS에 올리고 있다

군 생활부터 일상에서 느낀 것까지, 좋은 책을 읽고 사유하고 성찰한 것을 꾸밈없이 적어 올린다. 가끔은 제가 쓴 시를 올리고 해설을 달기도 한다. 자연·세상·사랑 등 주제는 다양하다. 아름다운 세상,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 싶은 마음을 담아 전달하다 보니 구독자가 3000여 명으로 늘었다.

혹자는 군 생활하면서 가능하냐고 묻기도 한다. 군인과 작가라는 두 직업을 가졌으니 각자의 영역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이어서 힘들지 않다.

 

군대 내에서 독서문화운동, 인문학강좌 등을 추진해왔는데 군인과 인문학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는가

군인은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많은 직업과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직업’이라는 점이다. 전쟁이 나고 전투가 벌어지면 군인은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적의 생명을 빼앗아야 한다. 교전 시 양측의 전투원으로 한정되긴 하지만 어찌됐든 살인이 허용되고, 많은 사람을 죽일수록 영웅이 되는 유일한 직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의 손에 죽어갈 적군은 누군가의 아들이고 남편이고 아버지이며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이 모순을 극복하려면 군인은 어떤 직업보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춰야 한다. 더 많이 생각하고 인간을 깊이 이해하고 그 밑바닥까지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지 못한 군인에게 쥐어진 총칼은 폭도의 흉기보다 더 위험하다. 장병들이 누구보다도 배우고 알아야만 그들의 손에 쥔 무기가 평화를 위해 쓰일 수 있고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선한 일에 쓰일 수 있다.

 

최근에는 ‘세미책(세상의 미래를 바꿀 책읽기)’의 공동대표로 활동을 시작했다

사실 청년들은 입대 전에 책을 별로 읽지 않는다. 스마트폰 안에 모든 것이 들어있는 시대다 보니 독서는 점점 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훈련소에서부터 책을 읽히자’고 생각하게 됐다. 신병교육기관에서부터 책을 읽게 한다면 책과 친해져 자대에서 군생활을 하면서도 책을 가까이 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독서를 통해 생각의 깊이를 더해 사회에 나간다면 그 장병이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책을 읽힌다고 훈련에 소홀하면 오히려 그 의미가 퇴색될 수 있어 훈련 또한 더욱 철저히 진행했다. 대신 일과 후나 주말에 허비하던 시간들을 독서의 시간으로 바꿔주기 위해 노력했다.

‘세미책’은 ‘세상의 미래를 바꿀 책읽기’인 동시에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책읽기’를 의미한다. 육군훈련소에 있을 때부터 21개 교육대에 세미책 운동을 활발하게 전파했고, 군사연구소에 부임한 후로는 전후방 신병교육대대에 책을 기증하고 강연을 하면서 세미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젊은 장병들을 대상으로 인문학강좌를 145회나 진행했다. 소통에 어려움은 없는지 궁금하다.

군생활을 돌이켜 보면 논산육군훈련소와 인연이 깊다. 1993년 논산육군훈련소 중대장으로 처음 근무한 이후 2012년 김유신 연대 연대장을 지냈고 2018년 논산육군훈련소 참모장으로 재직했다.

이 과정에서 젊은 장병들과 소통하는 법을 익힐 수 있었다. 젊은 장병들은 이른바 꼰대가 하는 ‘라떼는 말이야’ 식의 강의를 원하지 않는다. 제가 쌓아온 경험을 들려주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들의 생각을 듣고,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뭘 가르치려 들기보다 긍정적인 면은 칭찬해주고, 어려운 일이 닥치면 스스로 풀어갈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중령 시절부터 군대 내 스마트폰 허용을 주장해왔는데 최근 이뤄졌다. 보안문제, 군 기강 해이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젊은 장병들에게 스마트폰은 그들의 분신이나 다름없다. 이들이 자신의 분신을 자유롭게 쓰면서 능동적·자발적으로 군생활을 하도록 돕는 건이 우리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인으로서 장병들과 조국에 관한 시를 여러 편 선보였다.

등단작품이 ‘유월의 땅이 전하는 말’이라는 시였다. 2015년 6월 1일 헬기를 타고 전방에 갈 일이 있어 헬기 위에서 발아래 펼쳐진 조국의 산하를 내려다보며 지었다.

이후에도 6월이면 늘 호국을 주제로 한 시를 발표하면서 ‘6월의 시인’이란 별칭을 얻었다. 지난해에는 평택시민신문에 시 ‘유월의 어머니’를 기고했다.

 

장병을 비롯한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이 있다. 연암 박지원 선생이 ‘옛것을 배우되 응용할 줄 알고, 새것을 만들되 근본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한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온고지신을 넘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창출해내는 의미를 담고 있어 4차 산업시대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덧붙여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이 순간을 행복하게 보내길 바란다. 그 행복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타인을 나처럼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면서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고 행복을 찾아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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