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진 규 본지 고문

얼마 전 안중에서 평택항 활성화에 관한 토론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는 평소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있지만 중요한 사실이 하나 밝혀졌다.

평택항의 출입항로가 두 개 이상의 선박들이 동시에 교차 운항할 수 없는 외길(One-way) 항로로 설계 시공되었다는 것이다. 이 항로는 길이 30.4km, 폭 400m로 항로로서는 폭이 최소한의 규모인 것으로 드러났다. 육상 도로로 말하자면 서로 반대쪽으로 운행하는 차량이 교차할 수 없는 3-4 미터 안팎의 시골길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 날 토론자로 참석했던 모 상선회사 간부의 주장에 따르면 원웨이 항로를 통해 입항과 출항을 교대로 해야 하기 때문에 체선하는데 보통 2 시간 이상 소요된다고 한다. 그는 또 이런 항로를 가진 항은 평택항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지금까지 우리는 평택항이 규모 면에서 부산항보다 더 크고 또 지리적으로 21세기 서해안 시대의 최적의 무역항이 될 것으로 기대해 왔다. 그런데 진출입 항로가 이렇게 협소하다는 사실은 정말 뜻밖이다.

어떤 땅을 개발하려면 진입도로부터 제대로 닦아 놓는 것이 기본이다. 육지에서 건축을 할 때도 건평이 600평을 넘으면 6m 이상 도로에 접해야 하고 아파트를 지으려면 세대 규모에 따라 8 내지 12 미터 폭의 도로를 확보해야 사업허가가 난다. 교통문제 해결을 미리 확보해 두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물며 총 62개 선석수의 대규모 마스터 플랜를 수립하면서 항로를 외길로 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마치 아파트 일천 세대를 짓겠다면서 진입로를 외길로 한 것과 다름없다. 우리가 좁은 시골길을 운행하다 반대편에서 마주 오는 차량을 만나 당황할 때가 있다. 평택항 진출입 항로는 육지로 말하면 바로 이런 시골길과 같은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계획행정을 보면 도시기본계획은 어디까지나 구상에 불과하다. 법적 구속력이 없으며 도시계획재정비를 할 때 그 계획이 축소, 변경되기도 하고 아예 백지화 되기도 한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평택항만기본계획이 거창하지만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한 낱 구상에 불과할 수도 있다. 정부에서 별도로 항만개발을 검토하고 있는 인근 시화지구 해안선에 항만개발이 추진되면 평택항 개발은 대폭 축소될 가능성이 짙다고 할 수 있다.

평택항 건설 사업이 추진되어온 과정을 보면 계획과는 달리 정부의 의지가 분명치 않았다. 계획대로라면 지난 98년 14개, 올해 26개 모두 40개의 선석이 완공됐어야 하는데 이제 겨우 4개를 완공했으며 서부두 2개가 가까스로 내년에 완공될 예정이고 더 추진하기로 한 서부두 5개, 동부두 3개 선석은 언제 그 모습을 드러낼지 미지수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봐서 평택항 건설은 항상 확고부동한 것은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평택항에 대해 너무 큰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좀 냉철해져야 한다. 그 날 토론회에서 해양수산부 관계공무원은 선박이 늘어나야 항로 폭을 확장할 수 있다고 답했다. 항로 공사를 하려면 준설을 하고 또 암초가 있으면 폭파를 해야 하는데 좀 한가한 이 때 안하고 나중에 항로가 붐빌 때 확장공사를 하겠다고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발상이다. 안 하겠다는 얘기로 해석해야 한다. 기본이 안 되어 있는 항만은 언젠가는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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