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든 터전을 강탈당한 울분을 녹여낼 수는 없으되 잘 정비된 예쁜 동네, 대추리 평화마을

조하식 수필가·시조시인

이충동에 살면서
고등학교에서 국어와 문학을 가르치며
수필집, 시조집, 기행집 등을 펴냈고,
퇴임 이후 기고 활동과 더불어
교육철학 박사과정을 이어가고 있다.

[평택시민신문] 이윽고 당도한 대추리(大秋里) 평화마을. 한눈에 유럽 어느 마을에 온 듯한 인상을 받았다. 겉으로 보기에 번듯하다고 하여 정든 터전을 강탈당한 울분을 녹여낼 수는 없으되 잘 정비된 마흔네 가구의 예쁜 동네를 보니 그간 매스컴을 통해 듣던 심란함이 얼마큼은 진정되었다. 노화리 대추안길 어귀 마을보존기록관을 지나친 아쉬움을 기념관의 전시자료를 보며 애써 달래기는 했으나 사전준비 소홀이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저염식으로 준비한 점심을 맛있게 들고 마을회관에서 진행하는 각종 평화의식 및 향토체험 프로그램 등에 대해 짤막한 설명을 들었다. 떡 만들기, 고구마 캐기, 땅콩 캐기, 두부 만들기, 목화솜 빼기를 비롯해 풍물과 난타 배우기, 전래놀이와 목공체험, 친환경 생활체험 등 다양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었다. 담당자의 순수한 열정을 더해 생계에 보탬이 되는 건전한 운영이 돋보였다. 조만간 다시금 들르리라 맘먹은 데는 거저 제공하는 책자를 물색없이 챙긴 게 못내 큰 빚처럼 남아서였다. 아쉽게 걸음을 돌리니 덩치 큰 빌라 임대촌이 나타났다. 듣자니 서슬 퍼런 당국자와 타협해 얻어낸 산물이라고 했다.

방금 전 지나친 곳은 기다란 담장의 군부대. 총을 든 초병의 눈길을 뒤로한 채 용화사에 들어섰다. 평지에 가정집 같은 절간을 짓고 나름 스토리가 쌓인 양 꾸민 데를 구석구석 뒤졌으나 끝내 화장실은 찾지 못한 채 이끌리듯 지하 벙커 입구에 서야 했다. 솔숲이 우거진 강당산 일대를 미군이 사격장으로 쓰면서 주위를 송두리째 망가뜨린 지 오래였다. 그와 엇비슷한 벙커를 또다시 보고 숲길을 거닐다 보니 감탄 반, 한탄 반이 교차한다. 우후죽순 군대 막사를 여러 채 지어놓고 제멋대로 사용 중이다. 단순한 피해의식을 넘어 다분히 주권침해로 느낄 만했다. 주한미군을 한군데로 모으며 반환을 약속하고도 한사코 미루는 통에 사격훈련을 감행할 때면 매번 긴장할 수밖에 없단다. 우리는 언제쯤 자주국방을 실현할 수 있을까?

임계점에 다다른 소피를 보느라 일행과 떨어지는 바람에 급히 따라붙으니 상수리나무에 얽힌 과거사를 풀어놓고 있었다. 졸참나무의 잔 잎새를 쥔 손에 해거리의 섭리가 깃들이고 굶주림을 겪어낸 세대의 애환이 고스란히 다가왔다. 서글프게도 풍년과 흉년을 용케 알아본 건 위정자가 아닌 굴참나무였다. 말 못 하는 수목도 하물며 이러하거늘 예나 이제나 기득권층은 제 배 불리기에 혈안이 들려있으니 웬 말이더냐. 이 나라 역사를 꿋꿋이 지켜온 민초들의 삶을 뒤돌아보면 눈물로 얼룩져있다. 남은 육송군락을 살려야 한다는 주문을 되뇌며 돌아서자마자 싹둑 잘려나갈 산허리가 일행을 기다렸다. 도로 설계를 이따위로 하니 이방인마저 주인장을 능멸하는 터다. 한 치 앞조차 못 보는 근시안적인 행정은 바로잡아야 마땅하다.

컨테이너를 쌓아 올린 다세대 주택이 눈에 띄었다. 천편일률적인 외관을 마다하고 독특하게 꾸민 건 특허를 출원해도 될성싶었다. 움푹 꺼진 맨홀이며 비뚤어진 도로 경계석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길마재를 넘어가니 어느새 캠프 험프리스(Camp Humphreys)로 불리는 안정리 미군부대 정문이었다. 1인 시위 현장. 외국군대 주둔의 부당성을 알리고 군사주권을 회복하자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었다. 허구한 날 평화로운 투쟁을 멈추지 않는 이에게 위로를 보내니 한껏 허리를 굽혀 화답한다. 대한민국에 똬리를 튼 미군은 과연 필요악인가에 대한 논의는 좀 더 시차를 두고 정리할 사안이로되 장사꾼 트럼프의 노름에 마냥 놀아날 수도 없기에 드리는 고언이다. 역시 낯선 땅을 알아가는 데 몸소 걷기만치 유용한 방안도 없다는 걸 새삼 다진 시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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