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환천을 따라 걷는 천변에서 만난 버드내 별칭 흥미로워

조하식
수필가 · 시조시인

[평택시민신문] 교직의 정년을 앞두고 눈을 사로잡은 기사문이 있었다. ‘오백리 평택섶길 걷기’ 대장정. 아내에게 고하니 흔쾌히 동반을 약속했다. 그 첫날 삼삼오오 모여든 숫자는 줄잡아 마흔 명가량.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도 보였다. 가이드는 한도숙 전 농민회총연맹 회장님. 가볍게 몸을 풀고 1코스 대추리길을 향해 첫발을 내디뎠다.

섶길 기점(시청)에서 얼마 안 가서 배미에 얽힌 얘기를 들었다. 굳이 공사 중인 진흙탕 농로를 고집하는 바람에 애를 먹다가 문득 배다리생태공원과의 연관성이 궁금했다. 결론적으로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뱃길이 논배미로 바뀐 곳에서 꽤나 떨어진 데까지 고깃배가 들어갔을 리 만무할뿐더러 뜬금없이 설치한 구조물조차 배다리를 재현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배달민족과 관련되었다고 보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다. 농사를 지으며 사회활동을 겸한 열정에다 치열하게 쌓은 재야 학자의 면모가 부러웠다. 부지런한 발길들은 어느새 경기와 충남의 경계선에 이르렀다. 다만 둔한 발에 자꾸 늦어지는 걸 배려하지 않은 채 서둘러 진도를 빼는 모습은 그리 살가워 뵈지는 않았다.

성환천을 따라 걷는 천변에서 버드내라는 별칭을 되짚은 건 흥미로웠다. 강둑을 따라 늘어진 버드나무로 인해 붙여진 한 향토사학자의 견해보다는 큰길이 아닌 버금가는 물길의 구전(口傳) 쪽에 무게를 싣고 싶었다. 듣던 대로 서탄면의 위아래 버드내는 물론 유천동을 비롯한 ‘버들 유(柳)’ 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전국에 산재한 터에 판에 박힌 뜻풀이를 넘어선 신선감이 느껴져서였다. 지금은 이전했지만 국립 종축장 자리에 리승만 전 대통령의 별장이 있었다는 건 뉴스였다. 무슨 경개가 있을까 싶었는데 대초원을 낀 멋진 풍광이 장난이 아니라는 말로 이어진 설왕설래에 그만 심장이 멎을 뻔했다. 그래도 일자리 생길 삼성이 오면 모를까 수원 비행장을 이전한다면 대추리 새 터전은 또 어찌 살까 조바심이 났다.

길가에 핀 꽃들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건 농심일까, 시심일까? 알고 보니 안내자는 시집을 여러 권 낸 중견 시인이었다. 냉이와 엇비슷해 아내에게 묻곤 하던 풀이 간 기능 회복제라니 놀라웠다. 아무렴 그렇지 삼라만상 가운데 어느 것 하나인들 쓸모가 없으랴마는 조물주는 이 세상에 불필요한 걸 절대 만들 리 없다는 말에 선뜻 맞장구를 치는 이가 있어 좋았다. 그나저나 시집 제목이 <고구마꽃이 피었습니다>라기에 무슨 뜻인가 했더니 나라가 망할 때쯤 고구마는 꽃을 피운다는 것. 대뜸 그 엄혹한 시절 고초를 당하지 않았느냐 물으니 다행히 힘없는 농사꾼은 손대지 않더라는 수더분한 대응이었다. 그는 민주주의의 훼손, 남북관계의 후퇴, 농민생계의 피폐를 퍽 아파했다. 씁쓸한 시국 정담은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하렷다.

간간이 앉은 섶길의 표지석들. 일일이 돌판에 새겨 날랐을 과정도 과정이려니와 자리를 잡기까지 공들인 정성 또한 지극했으리라. 편안한 걸음을 방해하는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의 연속극. 짝꿍과 나눈 푸념은 중국은커녕 동남아만도 못하다는 혹평이었다. 이왕지사 혈세를 들여 시공하는 마당에 장인정신은커녕 대충 해치우는 습성을 두고 짐짓 민족성까지 들추고 싶지는 않지만 선진과 후진을 가르는 잣대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요소가 매끄러운 노면이요 거리 질서인 건 틀림없다. 그 상한 맘을 달래주는 이들이 계셨다. 찻길을 건널 때마다 안전을 위해 힘쓰는 손길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수고하시는 분들이 건재하기에 우리 사회는 그나마 굴러간다고 본다. 숨어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이 더없이 귀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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