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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후퇴와 핵폭탄의 한계
평택시민신문 | 승인 2020.01.08 12:05
김남균
평택대학교 미국학 교수

[평택시민신문] 1951년 1월 4일, 국군과 유엔군은 서울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후퇴했다. 1950년 11월 말 중국군의 기습공격이 있기 전 국군과 유엔군은 압록강 가까이 진격하고 있었다. 미 10군단은 장진호까지 올라갔다. 통일이 눈앞에 보였다. 그러나 중국군의 기습에 전세를 역전 당한 유엔군과 국군은 38선 이남으로 내려왔다. 결국 1.4후퇴로 서울을 뺏기는 수모도 다시 겪은 것이다. 그런데 후퇴하던 미군에게는 전세를 뒤집을 핵폭탄이 있었으나 사용하지 않았다. 무슨 이유였을까?

1950년 크리스마스 전까지 전쟁을 끝낼 계획이었던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Douglas McArthur)는 중국군의 기습에 당황했다. 그는 중국군의 참전으로 6.25전쟁은 ‘새로운 전쟁(a new war)’으로 성격이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전쟁’에 대한 해결책은 핵폭탄이라고 판단하고 핵폭탄의 투하를 트루먼(Harry Truman)대통령에게 요청했다. 중국과 북한의 국경 지역에 핵폭탄을 투하하여 중국군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자는 주장이었다. 핵폭탄 투하 결정권은 트루먼에게 있었다.

트루먼 대통령은 2차 대전 말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 투하를 결정한 경험이 있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는 핵폭탄 1발씩으로 10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고,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했다. 전쟁을 시작한 전범국 일본이 히로시마에 원폭 기념물을 조성하고 오히려 전쟁 피해자와 같은 행동을 하는 배경이다. 핵폭탄 투하에 비판적인 의견도 많이 있다. 이에 대해 트루먼은 회고록에서 핵폭탄 투하는 전쟁 수행을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맥아더가 핵폭탄의 투하를 요청하자 트루먼은 주저했다.

트루먼에게는 핵폭탄을 사용할 수 없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북한을 지원하고 있던 러시아(당시 소련)도 이미 1949년에 핵실험에 성공했다. 미국이 중국에 핵폭탄을 투하한다면 러시아가 보고만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만약 미국이 핵폭탄을 투하하고 그에 대항하여 러시아가 핵을 중국에 건네준다면 한반도는 참혹한 핵전쟁의 격전지가 될 수 있었다. 핵폭탄이 투하된다면 6.25전쟁은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매우 높았다.

미국 정부 내에서 핵폭탄 투하문제가 거론되자 동맹국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영국 수상 애틀리(Clement Attlee)는 워싱턴을 방문하여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트루먼이 핵폭탄 투하를 주저하자 맥아더가 비난하고 나섰다. 맥아더는 전쟁을 결정지을 수 있는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트루먼은 맥아더를 해임하고 핵폭탄을 투하하는 대신 제한전쟁(limited war)을 선택했다. 6.25전쟁 이후에도 미국은 많은 전쟁에 개입하였으나 핵폭탄은 사용하지 않았다. 1.4후퇴는 핵폭탄의 한계가 드러난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러나 핵폭탄에 대한 각국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1953년 1월 시작된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정부는 핵무기 개발에 적극 나섰다. 소위 ‘대량보복(massive retaliation)’전략을 국방정책으로 표방함으로써 각국의 핵무기 경쟁을 가속화시켰다. 유럽 강대국들이 앞다투어 핵실험을 실시했고, 6.25전쟁 중 미국의 핵위협에 속수무책이었던 중국도 핵폭탄을 개발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댄 인도와 파키스탄도 핵무기 보유국이 되었다. 최근에는 북한이 핵폭탄의 보유를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핵폭탄을 실험함으로써 남한과의 군비경쟁에서 승리하였다고 자부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국제사회로부터 강력한 제재조치를 당하고 있다. 거기다 남한은 미국의 핵우산으로 북한의 핵위협을 상쇄하고 있다. 핵폭탄의 위력은 두말이 필요 없다. 그러나 상대방도 핵폭탄을 가질 때 핵폭탄은 자타공멸의 무기가 되어 사용이 불가능해진다. 1.4후퇴가 이것을 증명하고 있다. 이제 북한은 핵폭탄의 미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핵폭탄은 공포의 도구이지 번영의 이기는 아니다. 2020년은 한반도에서 핵폭탄의 공포가 사라지는 시대적 전환점이 만들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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