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나에게 무한한 위로 해주고 싶었어요”

[평택시민신문] 한국사진작가협회 평택시 지부장이자 섶길추진위원으로 활동 중인 박경순 씨가 7번째 시집을 들고 찾아왔다.

“마치 물 위에 뜬 기름 같은 내가 마음 둘 곳이 없었어요. 날이 갈수록 마음에 빈자리가 커져갔고, 자구책이 필요했죠. 현실의 무게를 벗어나기 위한 방편으로 책을 접하게 됐습니다” 평택으로 시집와 시누이 둘에 시부모님까지 여섯 식구의 살림을 떠맡게 된 박경순(60) 시인은 한 집안의 며느리이자 아내, 어머니로 평생을 살아왔다. 연고도 없는 낯선 곳에서의 생활은 그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스스로를 구제하기 위해 그가 집어든 것은 바로 책이었다. 600여권이 넘는 독서기록장을 작성하고, 회의와 좌절을 거듭하며 일곱 권의 시집을 출간한 박경순 시인. 시를 통해 상처받은 자신에게 무한한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는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책 읽고 글쓰기를 좋아했던 문학소녀

안성시 대덕면이 고향인 박경순 시인은 어린 시절부터 문학에 관심이 많던 소녀였다.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했던 박 시인은 초등학교 6학년이 되던 무렵 고향을 떠나 서울로 상경했다. 1985년 결혼과 동시에 남편을 따라 평택에 정착하면서 그의 본격적인 문학 활동이 시작됐다.

“남편과 결혼하면서 평택으로 내려와 시부모님과 함께 살게 됐어요. 서울에서 오랜 시간 살다보니 시골 생활이 익숙하지 않았어요. 의지할 데가 없어 책을 많이 읽게 됐죠. 읽다보면 내 마음을 훔쳐다 놓은 것 같은 구절들을 만나게 되요. 그러면서 나도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그냥 무조건 쓰기 시작했습니다”

주부백일장 대회 장원…되찾은 활력소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박 시인은 사회활동에 제약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시에 대한 열정을 끝까지 놓지 않았고, 우연한 계기로 참가한 백일장 대회에서 수필부문 장원으로 뽑혔다. 이후 그는 1991년부터 3년간 전국주부교실중앙회 평택시지부장으로 활동하게 됐고, 우연한 계기로 다시 시작하게 된 사회활동은 무기력했던 그녀의 삶에 활력소로 작용했다.

“당시에는 시부모님도 모시고 살았고, 여건상 혼자 독학하다시피 공부해서 시를 썼죠. 우연히 평택시 주부백일장에서 수필부문 장원으로 뽑히게 된 것이 다시 사회 활동을 시작한 계기가 됐습니다. 바깥 활동을 하다 보니 집안일을 하며 쌓인 스트레스가 해소되더라고요. 처음엔 힘들었어요. 당시만 해도 평택에 연고도 없었고 지역 분들과 유대관계가 적었으니까요. 그래도 당시 시‧군 통합으로 공석이었던 전국주부교실 중앙회 평택시 초대 지회장으로서 회원들과 화합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전달사항이 있으면 항상 손편지를 써 드리며 소통하고 유대감을 쌓으려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성들의 마음을 울리는 서정시

박 시인의 시적 자원은 친정어머니다. 그에게 시는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을 일군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이자 보상이다. 때문에 어머니만을 위해 만든 <꽃 가운데 김 여사님>라는 시집을 가장 의미 있는 작품으로 꼽는다.

“저의 시적 자원은 우리 엄마에요.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을 일구려고 많이 고생하셨죠. 성함이 꽃다울 방 자, 가운데 중 자를 써서 풀이하면 ‘꽃 가운데 김여사’입니다. 어머니만을 위한 시집 <꽃 가운데 김 여사님>를 출간했는데, 그동안 고생하며 살아온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 고마움 등등 쌓여있던 부채가 사라진 느낌이랄까. 저에게 굉장히 의미있는 시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시집 <물푸레나무의 신화 속에서>라는 작품으로 활동을 시작한 박경순 시인은 <밥상 차리는 노라>, <꽃 가운데 김 여사님>등 총 7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여성성이 강한 그녀의 작품은 한 집안의 아내이자, 며느리, 어머니로써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여성들의 마음을 울리는 서정시로 자리 잡아 올해 8월 시선사의 한국대표서정시 100인선 <디테일이 살아나는 여자>라는 시집을 출간하기도 했다.

“98년도에 <물푸레나무의 신화 속에서>라는 시집을 처음으로 출간했어요. 서른아홉에서 마흔으로 넘어가는 해에 여자로서 마흔이 된다는 것에 대한 강박과 두려움이 있었나 봅니다. 뭐라도 하나 이뤄야한다는 생각에 겁도 없이 저질렀던 거죠. 모르는 게 약이라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아직까지 한 권도 출간하지 못했을 거에요. 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다 보니 이제는 시를 쓴다는 것 자체가 두려울 때도 있어요. 이번에 출간한 <디테일이 살아나는 여자>라는 시집에는 제가 구축하는 시세계가 잘 드러난 작품들을 신중하게 선별해 수록했습니다.

시인 박경순의 작품관

박경순 시인은 시도 때도 없이 치밀어 오르는 슬픔, 아픔, 상실, 분노, 좌절 등을 어떻게 달래야 할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시를 찾았다고 한다. 수없이 많은 내 안의 나를 어떻게 만나고 이해해야 할지 막막할 때, 문득문득 느껴지는 울림을 시로 받아 적으며 치유해 나갔다는 그는 작품을 통해 독자들이 쌓아왔던 수많은 감정들을 어르고 달래고자 한다.

“어느 동화에서 읽었던 게 기억나네요. 다른 동물들이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며 겨우살이 준비를 하는데, 한 동물은 햇살을 쬐며 앉아 있었어요. 그 이유를 물으니, 햇살을 많이 간직했다가 겨울에 따스함이 필요한 곳에 나눠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으로 말하면 감정 노동자를 의미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시가 감정에 기댄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발화점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나를 위로하고 보듬고 치유하는 과정에 시가 있었고, 저 역시 내 안에 햇살을 많이 모아 두었다가 꼭 필요한 곳에 쓰고 싶습니다. 저의 작품에 햇살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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