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희
평택시립도서관 사서

[평택시민신문] 살다보면 ‘당신은 어느 쪽인가’ 하는 물음에 답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 사회문제에 대한 의견은 다양하게 나뉘기 때문에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지 헷갈릴 때도 있죠. 그럴 때면 『불편해도 괜찮아』에 나오는 ‘의심스러울 때는 약자의 이익으로’라는 말을 잣대로 삼곤 합니다. 편 나누기, 진영논리라는 단어가 정치적인 어감이라면 좀 더 인간적인 표현으로 ‘곁’이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 사회 약자의 곁에 서고 싶다는 게 최은영 작가의 바램입니다.

“자기 자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멸시와 혐오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 쪽에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 길에서 나 또한 두려움 없이, 온전한 나 자신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이의 시선을 따라가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 바로 우리 시대의 문제와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비정규직, 베트남 전쟁, 세월호, 사법살인 등. 그래서 읽는 동안 마음이 무겁고, 때론 울컥합니다. 그래도 여운이 오래 남는 것은 기막힌 고통의 서사가 생생한 이야기로, 인간에 대한 따스함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겁니다.

최은영 소설 <쇼코의 미소>
문학동네 2016

책에는 7개의 단편이 있습니다. 마음이 아픈 일본 친구 쇼코와 어떻게 마음을 나누고 성장해 가는지 보여주는 <쇼코의 미소>, 베트남전쟁에서 가족을 잃은 응웬 아줌마와 한국인 가족 <씬짜오, 씬짜오>, 세월호로 손녀를 잃은 할머니이야기 <미카엘라>, 정교사가 되지 못한 절망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한 손녀와 그 가족이야기 <비밀>, 사법살인 피해가족의 참담한 삶을 그린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케냐 청년 한지와 마음을 터놓는 관계였지만 어쩐 일인지 이별하게 되는 <한지와 영주>, 비민주적이고 고압적인 태도의 대학문화를 겪으며 소은이가 가장 휘청거렸을 때 자신을 잡아준 미진 선배와의 이야기 <먼 곳에서 온 노래> 등.

작중 화자는 모두 여자. 그만큼 여성의 시선에서 타인과의 온전한 소통을 갈구하는 감정의 변화도 세밀하게 전해집니다.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는 표현처럼 애매모호한 마음의 결들을 짚어냅니다. 죄책감, 부끄러움, 민망함, 미움 등 다양한 감정에 대한 표현은 마치 제 속내를 작가가 대신 써 준 것만 같습니다.

정혜신은 『당신은 옳다』에서 타인과의 공감을 위해서는 ‘먼저 물어보라’고 권합니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전제를 갖고 왜 힘든지, 어떤 마음인건지 들으라고요. 그럼 이해할 수 있고, 이해하는 만큼 공감할 수 있다구요. 그 곁에서, 그 쪽에서 상상해봐야 정말 아는 거죠.

큰 고통을 겪은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당신은 항상 이런 식이야. 죽어도 미안하다는 말을 못해, 안 해.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씬짜오, 씬짜오>

한국군에게 가족이 학살당한 응웬 씨에게 엄마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그래도 죄송하다고 사과합니다. 엄청난 고통을 당한 사람 앞에서는 그게 먼저 인간이 할 태도라고 본 것이죠. ‘미안해’ 라는 말은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풀어줍니다. 그건 관계를 새롭게 시작할 좋은 사인이 되지 않을까요.

타인과 온전한 소통을 위해 곁을 내어주는 데는 작가가 강조하듯 역지사지로 상상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박완서도 『호미』에서 ‘상상력은 남에 대한 배려, 존중, 친절, 겸손 등 우리가 남에게 바라는 심성의 원천이다. 좋은 상상력은 길바닥의 걸인도 함부로 능멸할 수 없게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상상력을 키우는 이야기의 힘이 계속되는 것이겠죠. 약자 곁에 선 작가의 시선이 이야기의 힘으로 거듭나기를, 그래서 우리의 상상력 결핍을 채워주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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