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과 자치, 함께 사는 사회를 이루고자 달려온 40년

“사회적 가치 기금, 협동사회 실현을 위한 마중물로 쓰이길”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서로 소통하고 갈등 치유해야

[평택시민신문] 1940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나 1961년 안중으로 이주한 황재순(80세) 이사장. 그는 청년시절 고리채와 일수로 가정이 무너지고 고통 받는 지역주민들을 보면서 낮은 이율로 돈을 빌려 쓸 수 있도록 서민금융기관인 신용협동조합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황 이사장은 성당과 교회 신자 등 조합원 31명의 출자금 58만 7100원으로 안중제일신협은행을 설립했다. 금융업이 아닌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신협을 설립하게 됐다는 그는 이후에도 실천적인 신앙을 바탕으로 사회의 약자들을 살리기 위해 꾸준히 앞장서고 있다. 최근에는 평택지역의 뜻있는 단체들을 모아 평택협동사회네트를 출범시키며 협동사회를 열어 가는데 이바지함은 물론 시중 은행으로부터 융자‧투자를 받기 어려운 사회적 경제기업과 시민사회단체 등을 위해 ‘평택사회가치기금’을 조성해 팔순잔치 축의금 전액과 성금 1000만원을 쾌척하기도 했다. 훗날 이 기금이 협동 지역사회 실현을 위한 마중물로 쓰이길 바란다는 그를 만나 평택협동사회네트워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사회적 가치 기금을 조성하게 된 계기

평택협동사회네트워크 황재순 이사장

기본적인 이념과 사상은 신협 같은 사회적 경제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40년 넘게 협동사회 운동을 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협동사회나 사회적 경제가 실질적으로 구현되기엔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활동을 하면서 협동사회가 실제적으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그 기반으로 쓰일 수 있는 소위 마중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마침 인연이 있는 신협과 교회, 협동사회네트워크,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 네 곳의 단체가 팔순잔치를 기념해 마중물처럼 쓰일 수 있는 사회적 가치 기금을 만들어보자는 뜻에 동참해 줬습니다. 저의 아내 역시 우리도 가만있을 수 없다면서 1000만 원정도 성금을 내놓자고 제안했고, 그걸 계기로 시작하게 됐어요.

콩 한쪽도 나눠먹는다는 말이 있듯이 옛날에는 경사가 있으면 잔치를 벌여서 다 같이 나눴고, 상을 당하거나 슬픈 일 이 있을 때면 마을 사람들끼리 협력해서 도왔어요. 이런 것들이 제 기본적인 정서에 깔려 있다 보니 사람의 가치가 돈으로 전환되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70세, 80세 먹은 사람들의 생애를 되돌아보면 안 입고, 안 쓰고, 모으기만 했어요. 나는 고생하지만 우리 자식들은 고생 안 시키겠다는 마음으로 돈을 모아서 물려주고, 재산을 물려줌으로써 노후를 보장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재산을 물려주니 자식들 끼리 싸우고 죽이는 게 현실입니다. 자식 고생 안 시키려고 했던 것들이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노후도 보장 받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버렸어요.

지역에서 누구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만든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자본주의 무한경쟁에서도 손을 잡고 함께 협동해 나간다면 모두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를 내 놨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뜻을 함께 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일에 참여하신 분들이 그 뜻에 동의했다는 것에 가치를 두고, 그렇게 하나의 뜻이 모아져 만들어진 것이 바로 사회적 가치 기금입니다.

평택협동사회네트워크 사회적 협동조합은 어떤 단체인가

‘협동사회네트워크 사회적 협동조합’이라는 말 그대로 경제적인 분야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분야에 있어 협동을 기초로 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것이 취지이고, 이 뜻에 동참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입니다.

개인적으로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을 자주하는데, 실제로 이 지역의 민주 단체들을 보면, 99%는 같은데 1%가 달라서 갈등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평택협동사회네트워크 사회적 협동조합은 서로 다른 1%를 양보해 함께 목표를 향해 가자는 것이 기본적인 방침입니다. 틀린 게 아니고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소통해가면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가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협동사회네트워크의 기본 방향이죠.

네트워크라는 말답게 여러 단체가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협동하면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게 저희의 생각입니다.

이사장으로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잘 소통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이어주는 메신저가 되려고 합니다. 취지에 맞게 나아가기 위해 단체와 단체, 사람과 사람 간에 의견을 전달해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이 단체가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합니다.

추진하는 다른 사회적 활동이 있다면

작년 7월쯤 국토부로부터 ‘이웃사촌’이라고 하는 생활공동체 사회적 협동조합을 만들었는데, 최근에는 10년 넘게 이어온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웃사촌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뜻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협동적으로 살아가는 생활공동체를 뜻하는데요.

요즘 나이 드신 분들이 제일 많이 가는 곳 중 하나가 요양원입니다. 요양원은 복지시설이 아니라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영리사업 기관입니다. 저는 과연 이런 곳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는지 의문을 가집니다. 실제로 지켜지지 못한 사례도 많이 봤고요. 이러한 사회적 문제가 생활공동체 이웃사촌을 만들게 된 동기가 됐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실버타운처럼 노인들만 모이는 곳은 아닙니다. 뜻이 같다면 누구든지 같이 살 수 있는 곳이에요. 실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사람도 많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미 협동조합이 만들어졌고, 이 공동체를 실현하기 위해 10월쯤 사업설명회도 진행하려고 합니다. 후보지도 안중 가까운 곳으로 봐두었고, 고덕지구 등에 마련된 LH 사회적 주택 등을 활용한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봅니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구체적인 사업으로 만들어가는 중이에요.

다만 한 가지 염려스러운 점은 관과의 협치 문제입니다. 현재 지자체의 복지정책과 사업들이 공무원 주관으로 이뤄지다보니 알게 모르게 상하관계가 조성됩니다. 복지 예산 역시 시민들의 세금이 쓰이는 데 눈 먼 돈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아요. 가장 큰 문제는 실질적인 성과에 치중하지도 않고, 결과에 대해서 누구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때문에 민간이 주체적으로 움직일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민간에서 자생적으로 틀을 갖추고 필요한 부분을 관에서 지원받는 체제가 필요합니다. 민간이 중심에 서야 협치가 이뤄지고 좀 더 생산적인 복지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활공동체는 스스로 주체가 돼서 만들어가고 필요한 부분만 관의 도움을 받는 방향으로 설계하려고 합니다.

지역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크게 바라는 것은 없습니다. 다만 사회적 가치 기금이 정말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쓰이길 바랍니다. 여러 단체의 생각이 모여서 정말 효율적으로 쓰일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것은 없겠죠. 정확히는 모르지만 현재 3000만 원정도 모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기금이 지역사회의 올바른 방향을 위해 마중물처럼 쓰였으면 합니다.

또 하나 당부하고 싶은 것은 지금처럼 갈등의 골이 깊어진 사회에서 상대가 틀린 것이 아니고 다른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소통하며 살아갔으면 합니다. 우리라는 단어에는 누구하나 저해되는 사람이 없습니다. 바다가 작은 물방울 하나하나 모여 만들어진 것처럼 이 사회도 마찬가지에요. 개개인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이 사회입니다. 나 하나라는 존재가 귀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아름다운 세상을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나가는데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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