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은 정치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산물이다

[평택시민신문]

김남균 교수
평택대 미국학

우리 정치에서 상생은 불가능한가? 패스트트랙 법안의 상정으로 시작된 여야의 극한 대결은 법무장관의 임명을 둘러싸고 진영 싸움으로 변했다. 서울 도심에서는 대규모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어느 쪽도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견 차이의 표출은 자연스런 현상이고, 불거진 이견을 해결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다수결이다. 그러나 다수결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수 측의 생존권이나 핵심 가치가 달린 문제이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답을 찾아야 할 것인가?

1854년 미국 의회는 캔자스-네브래스카 법(Kansas-Nebraska Act)을 통과시켰다. 새 법은 캔자스와 네브래스카를 연방의 주로 편입시키기 위한 새로운 방식을 담고 있었다. 미국은 건국 초에는 13개 주가 전부였으나 영토가 확대되며 연방에 편입되는 주들이 계속 늘어났다. 그런데 편입과 관련하여 난제가 있었다. 노예제였다. 남부는 노예제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북부는 건국 초 노예제를 폐지했다. 노예제는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미국 독립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제도였다.

1820년 남부와 북부는 신생주의 연방 편입과 관련하여 타협안에 합의했다. 소위 ‘미주리 타협안(Missouri Compromise)’이다. 북위 36도 33분선 이북 지역의 신생 주는 자유주로 그리고 그 이남 지역의 신생 주는 노예주로 연방에 편입시키는데 합의했다. 노예를 둘러 싼 두 지역의 타협안은 1850년까지 별 문제 없이 유지되었다. 그런데 1848년에 종식된 멕시코와의 전쟁에서 새 영토를 할양받으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새 영토는 모두 북위 36도 33분선 이남에 위치하고 있었다. 현재의 캘리포니아 주, 애리조나 주, 유타 주, 뉴멕시코 주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전쟁을 주도한 세력은 북쪽인데, 남쪽만 전쟁의 수혜지역이 될 상황이었다. 북쪽이 미주리 타협안을 파기하고 캘리포니아는 자유주로 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우여곡절 끝에 새로운 타협안이 만들어지고 캘리포니아는 자유주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미주리 타협안은 휴지가 되고 남부는 상처를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이 새로 제안된 것이다. 당시 유력한 대권 후보였던 일리노이 상원의원 스티븐 더글러스(Stephen Douglas)가 핵심 제안자였다. 새 법안은 노예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민주주의 방식을 제안했다. 신생주가 연방에 편입되는 경우 해당 지역의 주민들이 노예문제를 투표로 결정하는 방식이었다.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으로 보였다. 1854년 법안은 별 문제 없이 의회를 통과했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캔자스의 노예제를 결정하기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할 단계가 되자 찬반으로 진영이 나뉘었다. 투표는 양 진영에게 놓칠 수 없는 단 한 번의 기회였다. 유리한 결과를 위해 양 진영은 각각 총력을 기우렸다. 이웃 주의 주민들도 합세했다. 캔자스 동쪽에 노예주인 미주리 주가 있었고 북쪽에는 자유주인 일리노이 주가 있었다. 양쪽 주의 주민들이 캔자스 지역으로 대거 이주하기 시작했다. 결국 캔자스 사태는 양 진영이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며 총기까지 사용하는 단계로 악화되었다. 사상자가 발생하며 캔자스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커졌다. 민주적 방식으로 난제를 해결하겠다고 제정된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이 오히려 ‘피 흘리는 캔자스(bleeding Kansas)’를 만들어 냈다. 캔자스 사태는 60만 명이 죽는 남북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은 다수결의 민주방식이 만능의 해결책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 물론 지금 우리의 현실을 과거 캔자스 상황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정치현안을 풀 수 있는 해답을 찾는 일도 쉬워 보이지 않는다. 서로 양보할 수 없는 명분과 실리가 충돌하고 있다. 거기다 집회를 통한 지지층의 숫자 대결로까지 번졌다. 이런 상황에서 해결책이 나올 것인가? 해답을 찾는 방법은 대화이다. 그리고 그 해답은 타협뿐이다. 타협은 정치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산물이다. 진영 싸움으로 이 땅을 ‘피 흘리는 캔자스’로 만들 것인가? 양 진영은 상생의 타협안을 찾아내 나라를 속히 안정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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