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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지도자 안재홍 선생 무등산행 90주년 기념 기획취재 ③탑산공원에 올라 광주를 조망하다
평택시민신문 | 승인 2019.09.04 12:15

공원 안에 고려때 성거사지탑이 있어 탑산공원이라는 명칭 생겨
부끄러운 역사 잊지 않기 위해 일제때 신사 계단 그대로 남겨

[평택시민신문]

황우갑 시민전문기자

지금은 광주공원으로 불리는 광주 1호 공원이었던 탑산공원

안재홍은 무등산에 오르기 전에 탑산 공원(현 광주공원)을 둘러봤다. 지금은 5.18 공원이 광주의 대표적인 공원이지만 탑산공원은 광주천변에 있는 광주 1호 공원이다. 답사전 탑산공원에 대한 자료를 찾으려고 광주문화원, 광주문화재단 등에 탑산공원에 대해 물어보았는데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다행히 무등산 증심사 가는 길에 들렀던 무등산 지질공원에서 해설사로 활동하는 이정현 선생이 그 탑산 공원은 양림동 사직공원 너머에 있는 현 광주공원이라고 알려줬다. 이 선생은 광주 무등산과 광주 역사에 대해 지식이 풍부한 분이었다. 그는 광주 사람들은 광주공원이 과거 탑산공원으로 불렸던 것을 거의 모른다고 했다.

1929년 9월 안재홍이 답사한 탑산공원(현 광주공원). 당시 일본 신사가 있던 자리에 지금은 태극기와 현충탑이 우뚝 서 있다.
서북으로 있는 탑산공원(塔山公園)에 올라가 시가 형세를 대관하였다. 동으로 무등산의 웅건한 모습이 남쪽을 눌러 솟아오른바 있고 서쪽으로 맑은 물은 광주천으로 흘러내려 시가 밖으로 나가는 것이 무던이 좋던데 푸른 나무 그늘에 듬성듬성 솟은 높고 낮은 서양식 건물과 조선 기와집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한양조 5백년에 왕왕이 소위 명상들이 이 땅에 났었고 임진왜란때는 김천일, 김덕령, 정충신 등의 뛰어난 충신들을 배출하였다.

탑산공원의 이름은 성거사지탑에서 유래

광주공원 안에 있는 성거사지탑

민세는 답사기에서 이 공원내에 있는 퇴락한 석탑을 언급하고 있다. 이 탑은 광주 성거사지 오층석탑으로 보물 제109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광주공원은 원래 성거산이라 불리웠다. 산의 모양이 거북이처럼 생겨서 광주를 떠나지 못하게 등위치에는 성거사를 세우고 목부근에 오층석탑을 세웠다. 통일 신라의 2단 기단 양식에서 기단을 1단만 두는 고려시대로의 양식 변화를 보여준다. 안정감이 적고 기단의 폭이 좁아지는 것도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이다. 공원의 이름이 탑산공원인 것도 이 성거사지탑에서 유래한다

정원의 한옆으로 칠층석탑이 있어 꼭대기가 무너졌는데 규모가 증심사의 그것과 꼭 같고 연대도 동일할 것인데 그 내력를 깊이 알길은 없다.
 
광주공원내 일제 식민지 잔재인 광주신사 계단

일제가 만든 신사 계단 남겨, 치욕의 역사 기억

1929년 민세가 답사했을 당시 이 공원에는 신사가 세워져있었고 기모노 입은 여인의 동상도 서 있다. 매년 봄 일본 국화인 벚꽃을 즐기려는 일본인들로 가득찼다고 한다. 일제 식민지 잔재물 광주신사 계단. 광주신사는 현재 현충탑 자리에 세워졌다가 해방후 파괴됐다. 올해 8월 8일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이 신사가 일제 식민지 잔재라는 사실을 알리는 홍보안내판을 설치했다.

이런데서 안 보는 일 없는 일본인의 충혼비와 어떤 여자의 기모노 입은 동상이 있고 단풍든 사꾸라 나무가 몇 백 주인 것 같이 보인다. 들으니 춘 4월 사쿠라 철이면 벚꽃 보려는 기모노 입고 게다 끄는 일본인들이 강산도 적다고 이 곳에서 나댄다고 한다..
 
광주공원내 있는 친일파 홍난유, 이근호, 윤응렬의 쓰러진 공적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친일파 공적비를 쓰러뜨리다

광주공원에서는 올해 8월 8일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공원 안에 있던 친일파 홍난유, 이근호, 윤응렬의 공적비를 쓰러뜨려 그 죄상을 알리고 있다. 광주군수를 지낸 홍난유(1856∼1913)는 일제 한국 강제병합에 기여한 공로로 1912년 총독부로부터 한국병합 기념장을 받았다. 이근호(1861∼1923)는 전남 관찰사와 전남재판소 판사를 지냈다. 1911년 조선총독부로부터 은사공채 2만5천원(현재 약 9억원 정도)와 한국병합기념장을 받았다. 충남 아산 출신의 윤응렬(1940∼1911)은 1896년 초대 전남관찰사. 한국병합에 기여한 공로로 남작 작위를 받았다. 역시 2만 5천원(현재 약 9억원 정도) 은사금을 받았다. 그 아들이 윤치호이다. 그 역시 작위를 받았다. 올해 8월 8일 광주광역시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비를 쓰러뜨리는 행사를 개최해 그 죄상을 알리고 있다.

안재홍이 흥학관을 방문하기 2주전 열린 조선청년총동맹 전남지부 정기대회 (1929. 9. 10)

신간회와 근우회 지회가 있던 흥학관

안재홍은 탑산 공원에서 내려와 신간회관을 방문했으나 문이 잠겼고 청년연맹, 근우회관도 회원들이 모두 퇴근한 때라 사람들을 만나지는 못했다. 안재홍이 방문했던 신간회 광주지회 회관은 지금은 사라진 흥학관으로 추정된다. 이 곳은 광주지역 항일운동의 산실이었던 곳이다. 흥학관은 구시청 사거리로 불리는 광주광역시 광산동 일대(동구 광산동 100번지)에 자리했다. 1921년 신축을 해서 200명을 수용하는 강당과 여러개의 온돌방으로 만들어졌다. 신간회와 근우회 광주지회가 이 곳에서 활동했고 광주학생운동을 이끈 광주청년회(현 광주YMCA)와 성진회를 비롯해 노동공제회, 전남노동연맹, 광주청년학원 등이 이 곳을 무대로 활동했다. 다른 날 안재홍도 이 곳에 내려와 강연을 했다.

광주 항일운동을 이끈 지도자 한국 한센병의 아버지 오방 최흥종 목사

신간회 광주지회장을 지낸 한센병의 아버지 오방 최흥종 목사

안재홍은 1927년 2월 15일 창립한 국내 최대 항일민족운동단체 신간회 창립의 핵심인물이다. 신간회 광주지회장으로 활동한 오방 최흥종 목사는 독립운동과 농촌계몽운동, 빈민운동에 힘썼다. 1911년 자신이 소유한 땅 천평을 기증해 한국 최초 나환자 수용시설인 광주나병원을 설립했다. 1919년 3.1운동에 참여 1년 4개월 옥고를 치르고 1920년 광주YMCA를 만들고 1932년 나환자근절협회를 창립했다. 최흥종 목사는 안재홍과도 인연이 깊다. 안재홍은 최흥종이 주도한 조선나환자구제연구회에도 적극 참여했다. 1928년 최흥종의 노력으로 규합된 동지 38명은 취지문을 채택, 공포하고 조선나병근절대책연구회를 발족시켰다. 당시 조선일보 주필이었던 안재홍은 취지문을 기초했다. 1931년 9월 24일 종로기독교청년회관에서 조선나환자구제연구회가 정식 창립되었다. 항일운동가이자 한국나병환자의 아버지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 그 뜻을 기려 2019년 9월 최흥종 기념관이 남구 양림동 역사지구에 건립된다. 오방과 함께 한센병 구제에 힘쓴 안재홍 선생도 기뻐하실 소식이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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