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균
평택대 미국학 교수

[평택시민신문] 1882년 5월 22일, 우리나라는 조미수호통상조약(한미조약)을 체결했다. 서양국가와 맺은 첫 조약이었다. 이듬해 미국 공사 푸트(Lucius Foote)가 부인을 대동하고 부임해 왔다. 1883년 5월이었다. 한미조약이 체결되자 영국을 비롯한 서양 열강들이 줄지어 조선정부에 조약 체결을 요청했다. 푸트공사가 부임한 답례로 조선은 민영익과 홍영식을 포함한 견미사절단을 미국에 파견했다. 미국을 본 홍영식은 근대화의 열망으로 마음이 급했다. 1884년 갑신정변은 급한 마음에서 나온 정치적 패착이었다.

그러나 근대화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1887년 경복궁에 전기불이 켜졌다. 에디슨(Thomas Edison)이 전기를 발명한 지 5년 만이었다. 동문학과 육영공원을 차례로 설립하며 정부가 앞장서 영어 교육을 실시했다. 미국 선교사들은 교회를 세우고 학교를 개설했다. 미국 자본가들도 들어왔다. 철도를 부설하고 광산을 개발했다. 미국 자본가들에게는 돈벌이가 목적이었지만 우리에게는 신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1902년 12월 미국으로 가는 첫 이민선이 인천항을 떠났다. 1905년까지 7천 명에 가까운 이민자들이 미국을 삶의 새로운 터전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은 우리의 자주적 근대화의 기회를 뿌리 뽑아버렸다.

1905년부터 한미관계는 긴 공백 기간을 보냈다.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한미 양국은 새로운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6.25전쟁으로 두 나라는 동맹국이 되었다. 그 후 70년 가까이 지나면서 동맹관계도 변화하고 발전했다. 우리는 현재 미군 주둔비의 거의 절반을 부담하고 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원조를 받던 국가가 동맹의 대등한 파트너가 된 것이다.

한미동맹관계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평택은 동맹의 심장이다. 주한미군의 핵심 시설이 모두 이곳 평택에 있다. 기지의 규모 자체도 여의도의 수 배에 달한다. 미군기지 관계자들을 모두 합치면 수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많은 미국인들이 평택시민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러나 평택시민과 미군은 서로 이방인이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도 다르다. 물리적으로 평택시민은 기지 안으로 들어 갈 수도 없다. 평택시민에게 미군기지는 외국일 뿐이다.

미군들의 사정은 다르다. 미군들은 언제든지 기지 밖으로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미군들은 기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기지 안에 주거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생필품도 부대 면세점에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기지 밖으로 나올 이유가 없다. 미군이 평택에 의존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다만 땅만 빌려 쓸 뿐이다. 미군들은 1년 정도 평택에 살지만 평택을 거의 모르고 떠난다. 그렇다면 평택은 무엇인가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지 안의 미군이나 기지 밖의 우리들이나 각 개인은 거의 비슷한 삶을 산다. 모두 가족들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가족들의 평범한 일상이 유지될 수 있도록 힘껏 노력한다. 언어와 문화는 다르지만 봄꽃을 좋아하고 아름다운 것을 즐긴다. 개인적 취향은 다를 수 있지만 본성은 모두 같다. 즐겁고 아름다운 일로 우리는 국적을 초월해 정겨운 이웃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평택에 사는 동안 미군과 그 가족들이 평택시민과 이웃이라는 느낌을 가질 때, 기지 밖으로 자주 나올 마음이 더 커지지 않을까?

관광이 산업이 된 시대이다. 이미 옆에 와 있는 외국인은 우리의 소중한 관광 자산이다. 자연이 선물한 아름다운 5월에 평택시민과 평택에 거주하는 미군가족들이 서로 만나는 문화행사가 있으면 우리의 관광 자산은 더 커지게 될 것이다. 특히 5월 22일은 한미조약을 체결한 날이다. 이날을 기념하여 미군과 그 가족들이 평택시민들과 함께 걷고, 음악을 듣고, 음식을 맛보는 축제를 함께 즐긴다면 우리는 서로 가까운 ‘글로벌 사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인들이 살고 싶은 도시는 주민에게도 좋은 도시이다. 5월 22일을 평택시가 선도적으로 ‘한미조약의 날(Korea-US Treaty Day)’로 지정하여 기념하고, 축제도 주관할 것을 제안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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