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문 석<전국언론노조 정책전문위원>

▲ 양문석<전국언론노조정책전문위원>
지난 2월9일 <시민의신문> 사설 ‘낙천낙선운동은 유권자 혁명 결정판’은 과거의 경험과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한 채 시민사회의 머리 위를 떠도는 ‘미신’을 확산시키는데 나름대로 기여를 했다.

“선거는 유권자의 거의 유일한 정치행위이다.

주인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직접 정치를 할 수 없어 머슴을 뽑아 대리케 하는 일종의 위임인 것이다.…쓸만한 이들은 남겨두고 뜻을 거스른 머슴을 솎아 낸 뒤…”라는 선거와 인적 청산에 대한 의미에 대해서는 충분히 동의한다.

하지만 “총선연대나 물갈이연대의 ‘낙천 낙선 당선 캠페인’은 유권자 운동의 결정판”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을 뿐더러 ‘미신조장’이라고 규정한다.

이 사설의 주장처럼 ‘지난 총선 때 낙선대상자 중 68%가 ’쓴 맛‘“을 보았다.


지난 총선의 68% 낙선결과가 ‘서울구치소당’ 창당?

한데 이번 16대 국회의 실상은 어떠한가.

역대 국회 중 가장 많은 국회의원들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었다.

시중에서는 요즘 새로 생긴 정당이 있는데 그 이름하여 ‘서구당’이라는 말이 떠돈다.

서구당? ‘서울구치소당’이라고 해서 벌써 12명이 ‘입당’했고,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가 마무리되고, 각종 비리관련 인사들이 ‘입당’하게 되면 20명이 넘어 ‘원내교섭단체’ 구성도 가능하다며 비리국회를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그 중 ‘깨끗한 정치’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사제’도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시민의신문>은 주목해야 한다.

구속자의 수가 많아진 것은 그 동안 ‘정치관행’으로 덮어주던 온갖 썩은 ‘곰팡이’를 검찰이 철저하게 소독하고 있어 그렇다는 일각의 주장을 받아들인다해도, 16대 국회의 의정활동이 이전 국회와 비교해 과연 달라졌는지는 의문이다.

그렇다면 낙천대상자가 겨우 32% 살아남은 이번 국회에서 구속된 의원이 역대 최다를 기록하고, 새로운 정치에 대한 그 어떤 희망도 보여주지 못한 것에 동의한다면, 이 사설이 마지막 대목에서도 언급한 “주인이 머슴을 바꾸는 것”이 “딱 하나 남은 길”이 아님은 분명해 진다.

<시민의신문>이 국회의 인적 청산이 가지는 의미를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벌어진 실수다.

왜냐하면 대표선수가 되지 말아야 할 ‘머슴’을 가려서 솎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머슴이 열심히 주인만 섬길 수 있도록, ‘맹독성정치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을 수 있도록 ‘백신’을 마련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마다 백신은 있어야 한다. 최근에 쟁점이 되었던 두 가지만 보자.


노동자의 주인노릇 금지법안

먼저, 최근 국회정개특위 정치자금소위가 기업이나 단체를 불문하고 일절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고 합의함으로써, 또 한번 국민배신을 시도한다.

“외국인, 국내·외 법인·단체는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단 노동계의 반발이다.

그 동안 정당정치의 발전 중 노동계가 매우 의미 있는 진보라고 평가하는 노동조합의 정치참여 및 정치자금 기부행위를 막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머슴’을 국회에 진입시켜 진정한 주인으로서 거듭나고자 십시일반 피땀 묻은 1천원짜리 만원 짜리 지폐를 모아 정당에 기부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6-7년 전이다.

그것도 눈물겨운 투쟁의 성과물이었다.

한데 이를 금하겠다는 것은 노동자들의 정치참여를 봉쇄하는 것과 마찬가지. 부자의 100억과 불쌍한 과부의 돈 만원이 같은 수 없음은 예수도 언급하고 있는 바, 그마저 노동자와 주주의 눈을 속여 떼먹은 ‘장물’ 중 일부를 정치인들에게 갖다 바친 삼성그룹의 200억원처럼, 기업 전체가 제공한 약 1,500원의 불법 대선자금과 노동자의 십시일반이 같은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노동자의 주인노릇 금지법안이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건전한 정치자금의 통로를 봉쇄하는 것은 또 다른 독성바이러스에 감염될 수 개연성을 열어 두는 것이기도 하다.

특정 정치인 몇몇에게만 집중적으로 ‘검은 돈’이 흘러갈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기 때문이다.

결국 빈대 잡는 체 하면서 초가삼간을 빈대의 천국으로 만드는 음모가 진행 중에 있다.

이 음모를 감시·견제하는 것도 유권자운동의 중요한 대목이다.

<시민의신문>이 주장하는 ‘국민을 속이는 일이 없는 지 감시하는 바른 유권자상’은 솎아 내기 위해서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솎아낼 때 솎아내더라도 그 자리에 있는 이상 주인을 속이지 못하게 하는 것도 ‘바른 유권자상’이기 때문이다.


비례대표 수 증원 반대여론은 없어

둘째, 비례대표 수를 대폭 증원하는 것도 백신이다.

한국정당이 정책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각계 전문가들의 국회진입을 용이하게 할 수 있는 비례대표제는 국회를 정책생산의 전진기지로 바꿀 수 있다.

한데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국회에 무임승차하려는 기도로 매도하는 의원이 있는가하면, 실체도 없는 ‘여론’운운하며 국회의원 정수 증원을 논의조차 않고 있다.

지역구 의원 수 증원을 반대한다는 여론은 있지만, 비례대표제 증원을 반대하는 여론은 들어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누굴 떨어뜨릴 것인가’만 고려하면 <시민의신문>처럼 ‘낙천캠페인’이 유권자 혁명의 결정판일 수 있다.

하지만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조건을 어떻게 만들어 줄 것인가’를 생각하면 오히려 정상적인 정치자금 조달 금지와 비례대표제 축소 등의 개악을 시도하고 있는 정치개혁특위의 활동과정을 소상하게 감시하고 또 다시 부패천국 무능국회를 고착화시키려는 맹독성정치바이러스들의 준동을 소독하는 것도 유권자 운동 중 또다른 결정판을 만들 수도 있다.

유권자 운동의 방향을 시급히 제도개혁 쪽으로 틀어야 하는 이유다.

<시민의신문> 2월16일자 기고문


<이 기사는 <시민의 신문>과 본사가 소속되어 있는 ‘바른지역언론연대’와의 기사교류협약에 의해 싣습니다>


필자인 양문석 박사는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에서 저널리즘 비평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국언론노조 정책전문위원을 맡고 있으며 동국대와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강사로 출강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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