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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평택성폭력·가정폭력상담소장“성폭력 없는 평화로운 세상 만들기는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첫걸음입니다.”
김상미 기자 | 승인 2019.04.10 14:20

성폭력·가정폭력 피해자들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김정숙 소장이 말하는 건강한 사회를 위한 과제

 

[평택시민신문]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성범죄가 발생하면 당사자는 물론 주변에서까지 그 사실을 감추고 드러내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게 왜 짧은 치마를 입나, 왜 늦은 시간에 집 밖에 돌아다니다 험한 일을 당하나’ 하는 피해자를 향한 책임 전가도 뒤따랐다. 성범죄는 늘 쉬쉬해야 하고 여자는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우리 사회의 밑바닥에 두텁게 깔려있었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조용한 변화가 나타났다. 성범죄 피해 여성들이 자신의 아픔을 알리기 시작하고 주변에서는 이들의 용기를 지지하는 미투·위드유 운동이 그것이다. 평택지역 내에서도 그런 작은 변화들이 감지되고 있다. 성폭력과 가정폭력의 피해자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삶을 회복할 수 있도록 최일선에서 돕는 김정숙 평택성폭력·가정폭력상담소장을 만나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길을 물었다.

 

20년동안 피해자들 도와 온 김 소장

“여성 인권이 낮은 사회에서 드러나는 특징 중 하나는 성범죄의 발생이 높다는 점입니다. 한국 역시 오랜 기간 남성을 중심으로 유지·발전한 나라이고 가부장적인 문화가 뿌리 깊게 남아있어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지 않고, 약한 존재로 치부하는 그릇된 인식이 만연해 있죠. 그렇다 보니 성범죄나 가정폭력 등 상대적인 사회적 약자를 향한 범죄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1998년 9월 개소 이래 그동안 2만여 건의 상담과 피해자 상처 치유를 도와 온 평택성폭력상담소. 이곳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성폭력과 가정폭력에 있어 피해자가 고통 속에 머물지 않고 하루빨리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김정숙 소장은 그런 평택성폭력·가정폭력상담소를 20년째 맡아 운영 중이다. 그 사이 우리 사회는 얼마나 변화했을까.

“최근 버닝썬 게이트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범죄 의혹, 한 연예인의 불법 촬영물 유출 등 충격적인 사건들로 뉴스가 시끄럽죠. 하지만 이런 유명 인사의 사건·사고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는 언제나 크고 작은 성범죄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평택도 마찬가지고요. 다만 지금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이 있다면 지난해 미투·위드유 캠페인 이후 피해자들이 혼자서 감추거나 힘들어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건 매우 의미 있고 중요한 변화입니다. 사회에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양지로 드러내고 공론화해야만 사람들이 함께 고민하고 이해하면서 이를 풀어나갈 수 있기 때문이죠.”

지난해 전세계로 퍼져나간 미투·위드유 운동에는 평택성폭력·가정폭력상담소도 전국 성폭력상담소협의회와 손을 맞잡고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연대 활동을 펼쳤다. 덕분에 평택시 안에서도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으로 혼자서 힘들어하던 피해자들이 상담소를 찾는 등 사례가 늘어나 지난 한 해에만 940여건의 상담이 이뤄졌다.

 

2017년 디지털성범죄 예방을 위한 캠페인에 나선 평생성폭력·가정폭력상담소.

변하는 사회, 성 인식은 아직 더디다

지금까지 평택시 안에서 상담을 진행하면서 바로 곁에서 피해자들을 지켜봤던 김 소장에게도 모든 사건이 경중을 따질 수 없이 안타깝고 충격적이다. 아직까지도 아버지나 남자 형제 등 친족간 성폭력이 근절되지 않고 있고, 학교나 회사 안에서 크고 작은 성폭력이 지속되고 있다. 미디어 환경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것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전에는 신체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성폭력이 많았다면 지금은 불법 영상물 촬영이나 유포 등 영상 기기의 발달로 인한 성범죄도 급증하는 추세입니다. 이런 범죄는 나이를 따지지도 않죠. 누구나 손에 들린 휴대폰으로 언제라도 촬영이 가능하고, 손쉽게 이를 타인에게 공유하기 때문에 별로 죄의식을 느끼지도 않아요. 하지만 이로 인해 피해자는 평생을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게 됩니다. 데이트 폭력이나 리벤지 포르노로 피해를 당한 여성은 때로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등 극단적인 상황에 치닫게 될 때도 있고요. 사회는 빠르게 변화하는 데 성에 대한 인식이 이 속도를 맞추지 못해 생겨나는 안타까운 사회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폭력과 관계된 범죄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데 실제 가해자들에게 내려지는 처벌은 피해자 입장에서는 솜방망이에 불과하다는 것도 김 소장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성폭력과 가정폭력의 사안에 있어서 초범이거나 술을 마셨거나 가해자가 반성의 기미를 보인다고 하면 실제로 판결에서는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등의 사례가 많습니다. 성범죄에 대한 심각성과 피해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현재의 낮은 양형기준을 높여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만 사회적인 풍토도 성범죄를 조심하고 예방하는 차원으로 흘러갈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해 3월에는 평택역 앞에서 미투·위드유 운동을 전개했다.

타인에 대한 존중이 무엇보다 중요

긴 시간 지역 내 폭력 피해자들을 꾸준히 지원한 결과 평택성폭력·가정폭력상담소는 지난해 말 사단법인 원선복지회로 소속되어 보다 전문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 사단법인 원선복지회는 여성과 아동의 권익증진은 물론 젠더폭력을 예방하고, 양성평등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관련 사업, 노인·아동·장애인·북한이탈주민·결혼이주여성 등 사회적 약자와 가족을 지원하는 사업 등을 하는 법인이다.

모든 범죄는 발생 후 관리보다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알려진 만큼, 성범죄와 가정폭력 등에 있어서도 인권을 소중히 여기고,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는 자세를 올바르게 가르침으로써 약자를 상대로 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김 소장은 강조한다.

“남성과 여성이 공동체로서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양성평등을 향해 나아가는 오늘날의 과도기적 상황에서 극단적인 시각으로 서로를 혐오하지 않고 성별 간의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성인지감수성을 갖춰야 합니다. 하지만 성에 관해 인식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니죠. 그렇기에 청소년 시기부터 적절한 교육을 통해 이를 바르게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현실은 커다란 강당에 전교생이 모여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된다거나 방송 수업 등으로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대부분인 것이 안타깝습니다. 소통과 공감이 없는 교육은 죽은 교육이나 다름없어요. 반별이나 소규모로 청소년들과 전문 교사가 교감할 수 있는 밀도 있는 교육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합니다.”

 

양성평등 주간을 맞아 거리에서 성인식에 대한 일반 시민의 생각을 들어보기도 했다.

성폭력이나 가정폭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실 모두의 마음은 불편해진다. 하지만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감수해야 할 부분 중 하나다. 장애물이 있다고 해서 목적지로 나아가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김정숙 소장은 평택시와 시민들에게 현실 사회에 공공연하게 나타나고 있는 성 문제에 대해 어떻게 이를 바라보며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출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다음호부터 본지를 통해 3회에 걸쳐 글을 실을 예정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진정으로 평화롭게 공생하기 위해서는 이 불편한 과제를 직면하고 함께 풀어나가야 할 때다.

김상미 기자  webmaster@pt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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