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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여성농업노동자 인권침해 ‘심각 수준’평택외국인복지센터 12번째 세계 여성의 날 기념행사 가져
원치은 기자 | 승인 2019.03.13 10:19

세계 여성의 날, 여성노동자 생존권과 참정권 요구 시위로 시작

1975년, UN이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

우리나라는 지난해 법정 공휴일로 ‘여성의 날’ 공식 지정

이 여성의 소원은 무엇일까? ‘사진과 함께 소원쓰기’ 행사에 참여한 미얀마 출신 이주여성노동자가 사진과 함께 소원을 적어 걸었다.

[평택시민신문] 세계 여성의 날 111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평택에서 열렸다. 평택외국인복지센터(대표 김우영)이 3월 10일 복지센터가 있는 평택동 명동골목에서 세계 여성의 날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기념식과 부스행사를 진행했다. 12회째인 이번 행사 참가자 대부분은 ‘세계 여성의 날’을 국가공휴일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는 아시아권 출신 노동자로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

세계여성의 날은 1908년 3월 8일 미국 뉴욕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생존권과 참정권을 의미하는 ‘빵과 장미’를 외치며 벌인 시위를 기념하는 날이지만 평택외국인복지센터는 외국인노동자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는 3월 10일 일요일에 행사를 가졌다.

“축하합니다. 여러분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잘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내를 괴롭히는 남편에게 오늘은 여자들이 몰려가서 같이 때리기도 해요.”

네팔노동자 러츠먼(남,27) 씨가 1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평택외국인복지센터 앞에서 여성들에게 축하와 감사를 전했다. 뒤이어 주변의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예쁜 장미꽃을 주며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세계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의 봉제공장 여성노동자들이 창문도 없는 곳에서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을 하면서 저임금에 시달리다가 3월 8일 작업장에서 화재로 사망한 동료들을 기리며 노동 조건의 개선과 참정권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 이후 많은 노력과 시간이 흐른 1975년이 되어서야 UN에 의해 공식적으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985년부터 이날을 기념하기 시작해 지난해에 한국 여성들의 인권 향상을 위해 법정기념일로서 ‘여성의 날’이 공식 지정됐다. 아시아권에서는 러시아연방,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라오스, 캄보디아, 몽골 등의 국가들이 세계 여성의 날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바로 옆 나라 중국도 ‘3·8 부녀절’이라는 이름으로 여성들에게만 휴가를 주고 있다.

 

평택외국인복지센터, 매년 기념행사

평택외국인복지센터는 해마다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행사를 해왔다. 기념식에 참석한 베트남 이주여성 딘레수안노옥(31)씨는 “베트남에서는 여성의 날에 아버지가 꽃과 선물을 주고 집안일도 대신해줬어요. 학교나 회사에서도 장미꽃을 받으며 하루를 즐겁게 지냈는데 한국에 와서는 여성의 날이 없어서 슬펐어요. 그런데 오늘 행사가 있으니까 무척 즐겁고 여자인 게 너무 좋아요. 그리고 나처럼 농사일을 하는 여자들 얘기도 있어서 더 좋아요.”라며 즐거워했다.

이번 기념식에서는 인종이나 성별, 나이에 상관없이 일할 권리와 인간답게 살 권리를 주장하며 외친 빵과 장미를 잊지 말자는 의미로 세계여성의 날에 대한 퀴즈 맞추기 등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천생리대도 선물로 나눠줘 참가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또한,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는 세계여성의 날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를 사진과 글로 전시해 다른 나라의 문화도 알 수 있었고 특히 이주여성농업노동자들의 실태에 대한 홍보문도 눈길을 끌었다.

 

1. 행사를 마치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 행사 시작을 기다리면서 참가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3. 참가자들이 박을 터트리며 즐거워하고 있다.

한국, 여성 저임금노동자 OECD 1위

2019년은 세계여성의 날이 111주년이 된 해이고 그동안 세상은 많이 변했다. 한국은 얼마나 변했을까? 과연 1908년의 빵과 장미를 완성했을까? 적어도 한국에서는 남녀 구분 없이 동등한 선거권을 가지고 있으니 그 당시 여성들의 외침이 헛되지는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생존권은 어떨까?

OECD에 따르면 2017년 한국의 여성 저임금노동자 비율은 35.3%이었다. OECD회원국 가운데 1위이다. 남성 저임금노동자 비율은 OECD 회원국 중 중위권 수준이었다.

그런데 한국에는 한국 여성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에서 살고 있는 여성이며, 타국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이기도 하며, 농업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여성 농업노동자들이 있다. 2018년 12월 31일 현재 한국의 등록외국인은 1,246,626명이고, 여성은 530,101명이다. 등록외국인여성 중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비전문 취업비자(E-9)로 체류 중인 이주여성노동자는 23,431명이며, 그 중 50%에 가까운 10,554명의 이주여성노동자들이 농업분야에 종사 중이다.(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등록외국인 지역별 세부체류자격별 현황”)

 

이주여성농업노동자 주거지 안정 ‘최악’

이주여성농업노동자는 겨울에는 일자리가 없어서, 더운 여름에는 숨 막히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장시간 노동을 하느라 힘들어한다. 또, 농업분야의 특성 때문에 제조업과는 다르게 근무시간이 계절마다 다르고 휴일도 월 2회가 대부분이며, 임금도 제일 낮은 편이다.

캄보디아 여성노동자 ㅊ씨는 “여름에 비닐하우스 안은 너무 더워요. 숨을 쉬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사장님한테 오전, 오후에 조금씩이라도 쉬게 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런데 사장님이 너희는 더운 나라에서 왔으니까 괜찮다고 했어요.”라며 일하다가 쓰러질 뻔 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이런 노동 시간이나 임금 등 취약한 노동 조건보다 이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기숙사, 즉 주거지의 안전성이다. 사업장을 변경하기 위해 구직활동을 하고 있는 캄보디아 여성노동자 ㅎ씨는 “방이 밭에 있었어요. 옆에 다른 집은 하나도 없고 다 밭만 있어요. 화장실도 밖에 있어서 밤에 무서웠어요. 어느 날은 밤에 창문으로 어떤 사람이 안을 보고 있었어요. 무서워서 잠을 못 잤어요. 그래도 다른 캄보디아 사람하고 있어서 일을 했는데 친구가 다른 회사로 갔어요. 혼자서 너무 무서웠어요. 사장님은 좋은 사람이었지만 회사 바꿔달라고 했어요.” 라며 이번에는 회사의 기숙사를 꼭 볼 거라는 이야기를 한다. 실제로 이주여성농업노동자들의 기숙사는 컨테이너나 비닐하우스 아니면 창고의 한 쪽을 개조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시설과 안전이 매우 취약한 편이다.

 

이주여성농업노동자 12,4%... 성피해 경험

게다가 성희롱이나 성폭력 문제도 많이 발생한다. 2016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서 실시한 <이주여성농업노동자 성폭력 실태조사>를 보면 이주여성농업노동자의 12.4% (202명 중 25명)가 성희롱·성폭력의 피해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발생 장소도 대부분 농장이나 그 주변(80.0%, 근로 및 휴식시간 등)과 본인 숙소(8.0%, 휴식시간)로 사업장과 주거지 어느 곳도 안전하지 못한 장소다.

또 다른 이주여성농업노동자는 친구에게 있었던 일을 전했다. “일을 하고 있으면 사장님이 와서 자꾸 만졌대요. 계속 피하다가 너무 무서워서 결국은 회사를 바꿨대요. 그런데 같이 일하는 다른 나라 남자가 만지려고 한대요. 새 회사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대요. 그 친구는 너무 복이 없어요.” 20대 초, 중반이 대부분인 이주여성농업노동자들은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당했을 때 어떤 방법으로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 누구에게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모르고, 오로지 자신의 운 탓으로 돌리고 만다. 거기에 어쩌면 한국에서 출국 당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과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훗날 모국으로 귀국을 했을 때 쏟아질지도 모르는 눈초리들을 생각하며 혼자 속으로 삭히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11년 전, 여성들 외침...한국은 ‘진행형’

2018년 한국은 각계각층에서 벌어진 미투 선언으로 뜨거운 한 해였다. 그러나 이주여성들, 그 중에서도 가장 약자라고 생각되는 이주여성농업노동자들은 이러한 이유로 여기에 동참할 수도 없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세계여성의 날은 1908년 뉴욕에서 ‘빵과 장미’를 외치며 벌인 1만5천여 명의 봉제공장 여성노동자들의 시위를 기념하는 날이다. 그러나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당시 봉제공장 여성노동자들의 대부분이 미국으로 돈 벌러 온 유럽 출신의 나이 어린 10대 이주여성들이었다는 것이다.

111년 전 이주 여성들의 “10시간 노동 보장하고 작업 환경을 개선하라.”, “임금을 인상하라.”라는 외침이 2019년 한국에서도 여전히 들리는 듯하다.

원치은 기자  webmaster@pt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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