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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이즈 번(시)에서 메이지유신의 그늘을 보다최인규 (단국대학교 경영대학원 해외통상 출강)
평택시민신문 | 승인 2019.02.13 15:40
막부의 마지막 쇼군인 도구카와 요시노부.
그는 미토 번 번주 도쿠카와 나리아키의 7남으로 태어나 15대 쇼군에 오른다.
대정봉환을 통해 천황에게 모든 권한을 반납한다.

[평택시민신문] 2018년 10월 23일, 일본 아베수상은 메이지유신 150주년을 맞이하여 가고시마와 야마구치 주민들에게 제 2의 메이지유신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호소하였다. 이 소식에 현 후쿠시마의 아이즈 시 주민들은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아이즈 시는 메이지 150주년을 기념하지 않았다. 그들은 무진전쟁 150주년을 추모하면서 메이지 신군부의 잔인한 학살을 잊지 않고 있었다.

1854년 흑선함대를 끌고 온 페리제독에 의해 미일 화친조약이 강제적으로 체결되고 1863년 사쓰마(가고시마 현)번과 영국간의 전투인 사쓰에이 전투, 1864년 미-영-불-네덜란드 연합군과 조슈(야마구치 현)번의 전투인 시모노세키 전투의 연이은 패배로 일본은 혼돈에 빠졌다. 번 중심의 흩어진 국력으로는 외세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국민 모두 뼈저리게 느꼈다.

혁명을 추진하는 웅번, 즉, 사쓰마와 조슈가 중심이 된 젊은 세력은 천황중심의 강력한 국가만이 밀려오는 서양세력을 이길 것이라고 확신했다.

막부와의 다툼이 시작되었다. 당시 막부도 웅번도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막부는 온건노선을, 웅번은 급진노선을 지향했다.

삿초도히(사쓰마 번, 조슈 번, 도사(고치 현) 번, 히젠(사가 현) 번)의 급진적인 웅번의 도전에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결단을 한다.

 

1868년 무진전쟁 와중에 10대 소년 20명으로 구성된 백호대는 아이즈 성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함락으로 판단, 자결을 선택한다. 한명이 살아남아 비참한 역사를 증언했다. 19기의 비석은 메이지유신의 그늘을 보여주는 참혹한 상징물이다.

‘대정봉환(大政奉還)’

권력을 내려놓았다. 모든 권한을 천황에게 되돌려 주고 영주로 여생을 마무리하고자 했다. 그러나 사이고 다카모리 등 유신삼걸은 막부의 씨를 말리고자 시도한다. 마지막 자존심까지 밟으려고 하는 메이지 세력에 대항해서 1868년 도바 후시미 전투로부터 무진전쟁이 시작되었다.

쇼군 요시노부는 미토 번으로 철수하고 쇼군의 핏줄인 아이즈 번의 번 주이자 교토 수호직인 마쓰다이라 가타모리는 닌자 집단인 신선조의 도움을 받아 아이즈에서 결사항전을 외친다.

1868년 6월, 10대 20명으로 구성된 백호대는 아이즈 번의 이이모리 산에 진지를 구축하였지만 아이즈 성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고 함락한 것으로 착각하여 치욕으로 사느니 스스로 자결을 선택, 할복으로 생을 마감한다. 이와 함께 아이즈 성의 막부군은 결사항전을 하는데 사망자만 아녀자 포함 2,000명이 넘었다.

유신 삼걸중 하나인 조슈 번의 기도 다카요시는 시신을 거두지 못하게 하고 까치밥이 되도록 방치시킨다.

2007년 아베는 아이즈 번 백호대 행사에 참석해 ‘과거 선배의 잘못이 있었습니다 이제 용서를 빕니다‘ 라며 조슈와 아이즈의 자매결연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한다.

도쿠카와 요시노부는 친한파였다. 에도 막부는 조선과 250년간 평화를 유지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 조선과 평화를 원했던 막부정권의 마지막 저항은 이렇게 아이즈 번에서 화려하게 불타올랐던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노선을 따르는 사쓰마 조슈의 건달들이 권력을 찬탈하면서 한반도, 나아가 동북아는 쑥대밭으로 변했다. 메이지 유신은 일본에겐 ‘탈아입구’ 서양을 넘어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지만 군국주의로 치닫게 되어 일본국민에게 그 이상으로 피를 보게 한 사건이었다. 아베 역시 정한론의 본 고장 조슈 출신이다.

아이즈 와카마츠 성. 쓰루가 성(鶴城. 두루미)으로 불린다. 필자의 눈에는 일본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이다.

1928년 다이쇼천황은 아이즈 번 주 마쓰다이라 가타모리의 손녀를 둘째 며느리로 받아들이며 화해를 시도한다.

이 여자는 이방자여사의 이종사촌 동생이다.

일본의 3대 정원 중 하나인 가이라쿠엔. 코분테이(好文亭)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미토시의 정경이 아름답다. 마지막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부친 도쿠가와 나리아키가 세운 정원이다.
아이즈 시 부근에 위치한, 일본의 100명산 중 하나인 반다이산. 등산 시작점에서 왕복 6시간이면 정상에 다녀올 수 있다. 2019년 9월 평택시민신문은 독자와 함께 등정을 계획 중이다.

천년 이상의 역사를 간직한,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아이즈 시 와카마쓰 성(城)은 자연 환경이 빼어난 반다이산 국립공원이 근처에 있어 사계절 내내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아이즈 시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쓰루가 성은 모습이 마치 날아오르는 학과 같아 참 아름답다. 무진전쟁 때 메이지군의 잔인한 공격에 성이 불타 1965년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하였는데 1000그루의 벚꽃과 거대한 돌담으로 둘러싸인 성위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천하의 절경이다. 만발한 벚꽃과 가을 단풍의 화려함은 일본 어디에도 뒤지지 않아 도호쿠 지방의 숨겨진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 뒤에 아이즈 시민은 150년 전의 아픔을 오늘도 잊지 않고 무진전쟁을 기억하고 있다. 한반도와의 친선도 잊지 않고 있다.

 

메이지 150주년을 무시하고, 메이지 정부군과 싸운 무진전쟁 150주년을 기념하고 있는 아이즈 시.

한반도만큼 일본 군국주의에 대해 혐오를 하는 지역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말씀하셨다.

‘친일은 중요하다. 문제는 반민족적 친일이 문제지 일본을 알고 친한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요즈음 극우로 치닫는 아베정권과 문재인 정권이 부딪히는 파열음 소리가 너무 크다

한국도 일본도 서로를 알려고 안한다. 배울려고도 안한다. 아니, 양국정부는 국민이 서로를 외면하게끔 만들고 있는 중이다.

몇 일전 일본 와카야마 현 고야산 곤고부지 승려가 ‘한국인 세 명이 모이면 쓰레기가 된다’고 헛소리를 했다.

아베정부의 혐한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우리도 일본을 욕한다. 정답을 찾고자 하지 않고 문제만 제기한다.

파열음의 피해는 국민 몫이다. 특히 소상인이나 영세사업자이다. 극일을 위해서는 우리도 일본처럼 가면을 써야 할 필요가 있다. 발톱을 감추고 정답을 찾을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

성급하면 매번 일본의 덫에 빠진다. 준비되어 있지 않은 반일, 탈미의 미래는 불필요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역사는 준비되어 있는 외교가 때로는 총칼보다 위력적이며 또한 외교 없이는 국가도 없다는 뼈아픈 현실을 말해 주기에 대한민국은 탁월한 외교력으로 승부를 내야 한다.

150년 전의 메이지 유신을 보면서, 아이즈 시를 다녀오면서, 양국의 역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간단하다. 내키지 않더라도 과거 속에 살지 말고 아베를 당장 만나 그에게 따져라.

그는 명분이 부족하다.

눈 내리는 한 겨울에 메이지 유신의 잔인함을 바라보며, 아베의 일본을 생각한다.

아이즈 와카마쓰 성(城)에서

최인규 (단국대학교 경영대학원 해외통상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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