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룡 수석교사(청옥중)

문구룡 수석교사(청옥중)

[평택시민신문] 나는 비가 오던 눈이 오던 매일 아침 8시 30에서 40분 사이 학교 정문으로 나간다. 그리고 등교하는 아이들에게 인사를 하기 시작한다. ‘사랑합니다.’로 시작하여 ‘오늘은 평상시보다 일찍 오는구나’, ‘어, 늘 같이 오던 친구는?’, ‘방학 동안 살을 많이 뺐구나’ 등등의 말들과 함께 인사를 한다. 길어봐야 20분에서 30분이다. 하지만 이 짧은 시간들은 나와 아이들이 행복한 하루를 만드는 충전 매체로서 충분한 역할을 한다.

내가 학생부장을 하던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복장 불량, 두발, 지각, 월담, 무단횡단 등 아이들을 단속하고 지도하는 식의 아침 맏이였다. 그러나 교사들은 강압적인 방법이 아이들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연수나 세미나 등을 통해 공감하는 등 사회적 분위기는 바뀌었다. 아이들과의 소통을 위해 아침 맏이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물론, 변화된 문화의 가장 큰 원인을 꼽는다면 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이며 그 영향으로 이러한 문화는 더욱더 빨리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다.

허그를 하고 하이파이브를 하며 에너지를 나누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나와 눈을 마주치며 인사하는 것만은 아니다. 어떤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나의 존재를 개의치 않고 간다. 어떤 아이는 분명히 눈을 똑바로 마주쳤는데도 화가 난 모습으로 머리를 뻣뻣이 세우고 간다. 어떤 아이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체 건성건성 형식적으로 끄덕하고 가기도 한다.

처음엔 매우 당황스러웠다. 권위는 땅에 곤두박질치고 자존심이 상해 얼굴빛이 울그락불그락 한 날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아이들은 변하고 있었다. 그들은 나의 존재를 당연히 인사하는 존재로 인식하였고 아침에 인사를 하지 않던 아이들도 복도나 다른 장소에서 만나면 인사를 하였다. 내가 수업을 들어가지 않는 학년, 반의 아이들도 나를 마주치면 습관처럼 인사를 하였다. 나의 상한 자존심, 자괴감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내 입가에는 미소가 뗘지기 시작했다.

우리의 삶이 늘 한결같지 않듯이 아이들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인데 가르쳐야한다는 포장된 권위를 핑계 삼아 빠른 교육효과만을 기대하며 조급해 했던 것이다. 그리고 교육효과가 없는 아이들에 대해서는 왜곡된 판단을 하는 매우 옹졸하고 거만한 나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가르쳐서 변한 것이 아니고 인사하는 나의 모습이 좋아 보여 스스로가 물든 것이다. 그것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연스럽게 물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효율적인 교육방법은 필요한 사람 스스로가 원해서 학습하고 행동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인성교육은 일반 교과교육의 교수법과는 분명 달리 해야 한다. 이론적 접근보다는 실천위주의 교육적 접근이 보다 효과적이라 할 수 있겠다. 다양한 교육적 프로그램들을 개발하여 적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의 거울이 되어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성인에 비해 인지력이 떨어지겠지만 그들도 스스로 상황과 분위기를 파악하여 행동한다. 어른들의 행동을 보고 닮고 싶을지 아니면 눈살을 찌푸릴지는 그들도 분명하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나만의 기준으로 그들을 판단하고 교육하려 한다면 그들보다는 내가 더 마음이 불편해질 것이다. 그리고 지속된다면 이승의 지옥을 경험하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권위를 살짝 내려놓고 그들의 거울이 되어주자. 거울은 권위가 필요 없다.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이다. 권위를 내려놓으면 모든 것을 잃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분명 내려놓은 그 자리에는 미소가 뗘지는 행복이 대신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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