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 희 <송탄여중 교사>

그런데 사람들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그런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눈치입니다.
진지하게 이야기하면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을 지겨워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살면서 우리는 평상시에는 자기 속에 있는 말을 털어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무너지지 않도록 꿋꿋한 방어벽을 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꼭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아니 꼭 해야만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들, 그러나 직접 할 수 없는 그 많은 이야기들, 그래서 난 연극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무대라는 공간을 빌어서 아이들의 입을 통해서 사실은 내가 하고 싶었던 많은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내가 아이들과 연극을 하게 된 이유였습니다.
이번 연극에서 난 왕따라는 주제를 내걸었습니다. 이 사회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답답했습니다.
무리 중에 섞이지 못하는 소수를 내치려고만 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들을 보듬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정말 사람 냄새나는 사람으로 우리 아이들을 그렇게 키울 수는 없을까. 어른들은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지 않는 법을 가르칩니다. 능력대로 줄 세우고 능력이 되지 않으면 도퇴 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가르칩니다.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쓰임새가 있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무조건 우두머리가 되어야하고 무조건 강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내가 조금 물러서더라도 모든 사람이 한 발자국 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법은 다 잊었습니다.
갈 수 있다면 혼자서 열 발자국을 나가라고 가르칩니다.
함께 가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너 혼자 가라고 합니다.
못 가는 놈들은 다 놔두고 가도 된다고 합니다. 조금만 이해한다면 혼자 눈물 흘리는 아이들은 없을텐데... 길을 잃고 아파하는 아이들.
쓰러진 아이들의 손을 잡아준다면, 나 혼자 걸어가지 않고 잠깐만 멈추어 뒤돌아본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예수가 있었습니다.
그 옛날 유대인들은 그를 배척하고 십자가에 매달았습니다.
세상의 가장 작은 자들 편에 서고자 했던 죄로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세상의 가장 작은 자, 세상의 가장 약한 자에게 네가 하는 그 행동이 바로 나에게 하는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강한 사람들의 편에 서서 세상을 사는 것은 아주 편안하고 감미롭지요.
세상 가장 낮은 자와 함께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아픔을 모른척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가르쳐야합니다. 결코 그들을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보듬어 안아야합니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던 그 연극의 마지막 대사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마음으로 한 번 읽어보세요.
어린 왕자 : 내가 나의 별을 떠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장미 때문이었어요. 자꾸만 날 귀찮게 하는 그 장미로부터 난 도망가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이제 알겠어요. 내가 나의 장미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 단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가 서로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
가희 : 우리는 공장에서 찍혀져 나온 제품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다르죠.
민주 :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 자주 잊어버립니다.
수진 : 세상의 모든 동물이 사자여야만 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연정 : 모든 새가 비둘기가 아니여도 괜찮은 것처럼
승혜 ;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모범생이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송희 ; 주위를 둘러보세요. 옆에 앉은 친구들, 그리고 우리 아이들.
효진 :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은 친구는 없나요?
수진 : 모두 똑같아지기를 강요하지는 않았나요?
지연 : 아주 사소한 이유로 그들의 영혼을 다치게 하지는 않았나요?
고운 :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윤지 :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 주세요.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세요.
나래이션 : 그래서 어린 왕자가 어떻게 되었냐구요? 장미가 기다리는 별로 되돌아갔냐구요?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여러분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중요한 건 어린 왕자가 언제나 우리들 속에 있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아닐까요?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
나와 다른 사람이라도 단지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것.
그것이 방금 우리 곁에 왔었던 어린 왕자의 교훈입니다.
<교단에서 온 편지>
평택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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