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도예가 행천 임 남 재 씨가 사는 법
월곡동 백운산 한 자락에 터를 잡고 흙을 빚는 한 사람. 도예가 행천 임남재.
평택출신인 그가 20년만에 고향에 돌아와 4년전부터 백운산 행천 도예원에서 살고 있다. 원래 그는 유화를 그리는 화가였다. 22세때 경기도 초대작가가 될 정도로 유명했다. 그런 그가 유화를 멀리하고 20여년전에 도예가의 길을 선택했다. 사각캠퍼스에 자신을 맡기기엔 그 폭이 너무 적어 답답해서이다. 행천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전부를 맡길 수 있는 것이 '흙'이라고 생각했다. 도예를 선택했다. 전통자기가 제대로 정립되어 있지 못한 현실도 선택에 포함된다.
"5천년의 역사를 가졌음에도 우리의 문화는 250년 된 미국문화에 밀리고 있습니다. 우리 것을 소중히 보존하지 않고 천하게 만드는 것이죠. 외국의 것이면 무조건 비판이나 검증없이 그대로 빨리빨리 받아들인 것이 문제지요. 우리문화는 힘이고 유산입니다. 문화는 새로 만들어지고 돈이 들 것도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잘못된 예·체능계의 학교교육을 비판하고 우선적으로 우리의 것에 대한 정립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피력한다.
자신이 먼저 실천에 옮겨야 했다. 4년전부터 이곳에서 도자기를 빚으며 평택지역에 순수전통자기문화를 뿌리내리고 싶어한다. 흙을 찾는 것부터 도자기 빚기, 그림, 글씨, 유약만들기, 굽기 등 행천은 도자기를 만드는 전 과정을 혼자서 해낸다. 어머니가 정한수를 떠놓고 비는 마음으로 작업에 임한다. 마음에 맞는 흙 찾는 방법을 깨닫기 위해 3년동안 380곳의 도요지를 찾아 다닐 정도다. 독학으로 도예를 배운 그는 이론이나 말보다 중요한 배움은 자연속에서 동화되어 얻어지는 깨달음이라 한다.
"사람들은 자기 것(물질)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고 베풀줄을 모릅니다. 남에게 베풀며 사는 정신이 중요하지요.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문화뿐입니다. 평택지역에서 더 이상 줄 문화가 없거나 가르칠 것이 없다고 생각할 때 다른 곳에서 또다시 작업을 하기 위해 떠날 것"이라고 말하는 그는 자신의 집은 백운산이 아니라고 말하며 그의 호 행천(물처럼 살아라)처럼 살길 원한다.
그는 제자들에게 만드는 기능을 중요시하지 않는다. 당위성과 자세를 먼저 가르친다. 그것도 도자기를 만드는 근본은 자연과 우주, 인간이 합일체가 되는 상태에서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유명해지는 것에 연연하지 않는다.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유명해지면 괜찮은 것이고 그렇지 못해도 그만이다.
행천은 16년전 도자기로 유명한 여주, 이천 등지에서 분청사기 1호로 꼽혔다. 전국적으로 분청사기를 제일 먼저 시작한 그는 현재 2001년 도자기 엑스포 이사로 있다. 10명의 제자를 키워내 10개의 도예작업장을 만들어 평택에 전통도예문화를 정착시키고 세계도예작가 미술관을 세우는 것이 그의 꿈이다. 또한 10년전부터 대학교재로 쓸 도자기 전반에 대한 책을 집필중이기도 하다.
모든 사물을 긍정적으로 보고 자신을 가장 중요시하는 자세속에서 '정중동'의 삶이 최고의 삶이라는 행천의 여운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은 바람속으로 어우려져 동화됨이 전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