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넘어 시작한 간호사의 길…75세인 지금도 ‘현역’

“나의 일이 곧 자아실현…인생의 마지막까지 일하고 싶다”

[평택시민신문]“일을 통해서 사회에 기여하고 돈도 버니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이광미 전 동방아동재활센터장이 처음 간호업무를 시작한 것은 39년 전이다. 간호사에는 정년

이 없다고 한다. 75세가 된 지금도 그는 현직 간호사로 일하고 있다. 간호사의 길을 택한 이후 줄곧 자신의 직업에 보람을 느끼고 만족했지만 원래는 간호사가 아닌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려고 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가지 못하고 초중고 전부 검정고시를 치러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검정고시 시험장서 친절한 아가씨를 만났어요. 자기는 자격증 없이 아는 원장님을 통해 병원서 일하는데 간호사가 되고 싶어서 시험을 본다는 거예요. 그때 그 말이 하나님이 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같았습니다.”

그의 인생은 신앙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서른이 돼서야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사우디아라비아로 일하러 간 남편과 떨어져 아이를 돌보며 혼자 지내던 시기였다.

“꽃을 봐도 예쁘지 않고 아름다운 풍경을 봐도 감흥이 없었어요. 모든 일에 시큰둥해서 집에 혼자 누워만 있었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우울증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 이웃의 아이들이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자 그는 자녀를 데리고 교회에 가봤다. 이후 교회가 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집이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봉사 음식을 장만하는 등 남을 돕는 일을 하면서 우울증에서 벗어났다. 삶에 대한 태도와 시각도 완전히 달라졌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그때 했다.

“나이가 많은 탓에 대학 진학이 쉽지 않았어요. 교사와 간호사를 목표로 대학에 응시했고 두 분야 모두 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원주 간호전문대서 먼저 합격 연락이 와 간호사의 길을 걷게 됐습니다.”

대학 진학까지 단숨에 달려온 그였지만 공부라는 것은 결코 호락호락한 일이 아니었다. 체계적으로 나이에 맞게 과정을 밟아나가도 힘든 게 공부인데, 만학도에게는 더욱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대학에 가니 영어로 된 전문용어로 수업을 하더라구요. 필기를 해야 하는데 듣기와 필기를 동시에 하기가 어려웠어요. 현재는 수기에 가깝게 필기를 하지만 그때는 포기해야 하나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교수가 원서를 갖다 놓고 강의를 하는 걸 보고 똑같은 책을 샀어요. 해석이 안 돼 3~4줄 보는데 밤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몇 달을 예·복습을 하다 보니 실력이 늘었어요. 이루 말할 수 없이 노력했고 정말 한없이 공부했습니다.”

직업이나 돈을 위해서만 공부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이 그에게 그러한 열정을 불어넣었다. 나중에 그는 평택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해서 공부한 다음, 평택대학원 사회복지과를 석사로 졸업했다. 졸업하려면 영어시험을 치러야했는데, 영어공부를 열심히 해둔 덕분에 젊은 사람들이 영어시험으로 걱정할 때 그는 아주 여유로웠다고 한다.

병원에서 처음 근무를 시작한 해는 1979년이었다. 그 당시에는 의사가 부족했기 때문에 정부는 간호사를 교육시켜 의사 대체 인력으로 지역 곳곳에 파견했다. 이 전 센터장도 충북에 있는 보건진료소에서 지역주민들을 돌보는 일을 하게 됐다. 그는 그곳에서 주민들의 신뢰를 받아 아주 인기가 좋았다고 한다.

“6년간 그곳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병원들이 곳곳에 생기기 시작했는데, 지역주민들이 병원보다는 저를 찾자 난처한 상황에 처할 정도가 됐어요. 그래서 그만두고 남편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났습니다.”

말도 안 통하는 이국 사우디아라비아서도 그는 일을 찾았다. 그곳 현지 병원에서 약 1년간 근무한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의 호황이 끝나가자 약 3년 만에 남편과 함께 귀국했다. 귀국 후 새로운 일을 찾을 때 그의 나이는 48세였다. 지금이야 이미 은퇴를 바라보는 나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전 센터장에게는 달랐다. 일자리를 찾던 중 평택의 동방사회복지회서 동방아동재활센터의 간호사를 구하는 것을 보고 평택으로 내려왔다. 센터에서 그는 처음 1년간은 간호사로 근무했으나 그의 경력을 인정한 복지회가 에스더의 집 원장, 동방아동재활센터장 등을 맡기면서 총 18년을 동방평택복지타운에서 일했다. 원래 서울 사람이던 그는 센터장에서 정년퇴임 후 지금까지 간호사로 일하며 남편과 함께 평택에서 산다. 이제 그만 쉴 법도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는다. 간호사 일은 힘들다는데 그렇지 않은 것일까 궁금해 물어본다.

“간호 일은 힘들죠. 일을 하다보면 마음에 맞지 않는 동료가 있기도 하구요. 하지만 낮 동안 쌓였던 것을 저녁이면 다 털어냅니다. 내일 다시 신나게 일을 하기 위해서요”

직장생활하며 힘든 일이 있으면 사람들은 대개 일을 그만둔다. 자신이 맡은 일보다 자기에게 닥친 시련 자체에 더 마음을 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전 센터장은 그 반대인 것처럼 보였다. 인터뷰 약속이 있던 당일은 그가 이틀간의 주간근무, 삼일간의 야간근무를 마치고 하루 휴식을 취하는 날이었다. 카페에서 그는 커피를 마시고 싶다면서도 다른 차를 선택해 마셨다.

“커피를 마시면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아 다음 날 일하는데 지장이 있어요. 내 나이와 한계를 생각해서 과로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생활하려고 노력해요. 내 몸을 위한 의무를 지키는 거죠. 건강해야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생활은 일을 잘 할 수 있는 데 도움이 되도록 짜여져있다. 규칙적인 수면과 음식 섭취는 물론이고 체력을 위해 사람을 만나는 일도 조절해야 한다.

“일을 하지 못하면 그때 인생이 끝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하루하루 알차고 보람있게 보내며 건강하게 내 인생의 마지막 달까지 일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답니다.”

인터뷰 내내 이 전 센터장은 건강해 보이고 활기가 넘쳤다. 일과 자아실현의 일치. 그것이 그가 행복한 삶을 사는 원동력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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