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행복지수와 높은 자살률 연관

김유헌 수석교사(평택고)

[평택시민신문] 우리는 소통과 공감의 시대에서 살고 있다. 소통은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다. 소통하기 전에 상대의 말을 경청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고, 상대와의 원만한 관계를 맺을 수도 있게 한다. 소통과 공감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학교에서 상대와 어려움 없이 소통과 공감이 이루어져야 학생과 교사가 행복할 수 있다. 진정한 교육은 소통과 공감에 달려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대화를 할 때 내용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많을수록 감정이 상하지 않게 되며 효과적인 전달을 할 수 있게 된다. 2017년도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세계 56위라고 한다. 또한, 우리나라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대화에서 부정적인 부분이 강조되는, 진정한 소통과 공감의 부재라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약점을 찌르는 부정적인 대화는 상대방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힌다. 이제 상대방을 배려하는 소통과 공감의 문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소통과 공감을 이야기할 때 우리나라 최고의 MC 유재석을 예로 든다.   유재석은 철저히 “1:2:3의 법칙”을 준수한다. 여기서 1은 자신이 말하는 비율이고, 2는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비율이다. 그리고 3은 맞장구치기, 강력한 리액션하기, 상대방을 마주 보며 함께 추임새와 칭찬하기 등 공감의 비율이다.

가족이 오랜만에 외식하게 되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음식을 주문하고 난 뒤 음식이 나오기까지 아이들은 바로 휴대전화기를 꺼내 연신 휴대전화기만 만지작거린다. “핸드폰 그만하고 오랜만의 외식이니 얘기 좀 하자”는 나의 말에 “다 듣고 있으니 말해.”
이러한 상황이 필자의 경험만은 아닐 것이다. “대화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냐” 그렇다. 대화는 눈빛, 몸동작으로 맞장구치며 공감을 하는 것이 진정한 대화일 것이다. 그러면 가장 먼저 소통과 공감이 이루어져야 할 출발점은 바로 가정이라고 볼 수 있다. 가정이 행복해지고 학교에서 평화가 깃드는 소통법이 무엇일까?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첫째는 칭찬이다. 칭찬은 우리가 매일 먹어야 살 수 있는 밥과 같다. 칭찬 대신 매일 책망과 잔소리만 듣고 산다면 마음의 병에 걸리고 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칭찬하는 것에 인색하고 어려워한다. 칭찬하기가 쉽고 아주 간단한 것 같지만, 사람의 뇌는 문명이 시작하기 전부터 생존을 위해 자기방어적으로 위험요소를 먼저 찾아내는 뇌의 구조로 발전했다. 따라서 칭찬보다는 상대방이 나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을까 하는 단점을 먼저 찾게 되는 것이다.

둘째는 경청이다. 일방적인 대화는 갈등을 불러오기 쉽다. 대부분의 사람은 말 잘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좋아한다. 상대방은 나와 대화 속에서 어찌 보면 자기 얘기를 들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나에게 조언을 듣고, 그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속 얘기를 털어놓는 것에서 이미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이야기를 경청하며 “너 정말 힘들겠구나”라는 소통과 공감을 의미하는 이 말이면 충분하다. 다음은 안도현 시인의 <양철지붕에 대하여>의 전문이다.

양철지붕이 그렁거린다, 라고 쓰면 / 그저 바람이 불어서겠지, 라고 / 그저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 삶이란, / 버선처럼 뒤집어 볼수록 실밥이 많은 것 // 나는 수없이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빗방울이었으나 / 실은, 두드렸으나 스며들지 못하고 사라진 / 빗소리였으나 / 보이지 않기 때문에 / 더 절실한 사랑이 나에게도 있었다. // 양철 지붕을 이해하려면 / 오랜 빗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 맨 처음 양철지붕을 얹을 때 / 날아가지 않으려고 / 몸에 가장 많이 못 자국을 두른 양철이 / 그놈이 가장 많이 상처 입고 가장 많이 녹슬어 그렁거린다는 것을 / 너는 눈치채야 한다. //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말은 증발하기 쉬우므로 / 쉽게 꺼내지 말 것 / 너를 위해 나도 녹슬어 가고 싶다, 라든지 / 비 온 뒤 // 생각해봐 / 한쪽 면이 뜨거워지면 / 그 뒷면도 함께 뜨거워지는 게 양철지붕이란다.

  위의 시 중에서 “양철지붕이 그렁거린다, 라고 쓰면 / 그저 바람이 불어서겠지, 라고 / 그저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은 상대방과 진정한 소통을 하려면 상대방의 정서와 속성, 아픔까지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또한 “양철 지붕을 이해하려면 / 오랜 빗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를 주목해보면, 상대방인 누군가를 올곧게 소통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지속해서 귀 기울여 경청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시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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