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최 미 자

▲ 최미자<상록수 교사>
창 밖으로 부락산의 산그늘이 내리는 시간이다. 물이 담긴 돌 화분에 노을 빛이 내려 불꺼진 방안에서 물은 분홍빛을 띠고 있다.

나는 한가로이 노을을 보고 있는데 하늘에선 달과 별이 제 할 일을 하기 위해 쉼 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에 한순간 놀랐다.

우리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 잠을 자는 것도 멈춤이 아니라 쉼 없이 가는 도중이라는 것이 확실한 것처럼 세상 모든 것은 흐르고 그리고 살아있으며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문득 나는 이런 시간에 벽시계에 시선을 멈추고 어느새 열 돌을 맞은 상록수 한글학교의 봉사 첫날을 회억(回憶)한다.

일상이 새장 안에 갇힌 새처럼 그것이 앞으로 삶의 연속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무엇인가 찾고 있던 중에 한글학교 교장선생님의 봉사권유를 받았다.

수업 첫날, 서로를 잘 몰라 서먹하고 어색한 분위기가 돌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배우고 싶다는 아니 배워야 한다는 열망하나로 금새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는 교육자와 피교육자의 관계를 넘어선 하나의 가족이 되어가고 있었다.

남편보다 더 이재(理材)에 밝은데도 글을 모른다는 이유로 무시당할 때의 모멸감, 아이들 모두 장성해 떠나버린 빈자리를 멀리 고향의 벗에게 편지로 마음을 전하려해도 글을 몰라 불편했다는 어머니, 무심히 낙서라도 해 마음을 달래려해도 온전한 마음표현을 할 수 없어 답답했다는 또래.

그것뿐만이 아니다.

아들이 훌륭한 학교에 입학을 하는데 민원서류 한 통을 당신 손으로 신청 할 수 없어서 서글펐다는 모성.

어느 순간 이들과의 사이에서 나는 지독한 나의 이기심을 알아냈고 그러므로 이기적인 나를 덜어내고 다른 사람을 조금씩 섞어 채워야 함을 알았다.

삶에는 언제나 풀리지 않는 일들이 있게 마련, 그래도 살아가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잦아질 때 나는 나와 함께 공부하는 우리 반의 어머니 친구들을 생각한다.

모두들 얼마나 치열한 삶을 살아 내는지 상록수 한글학교에서는 살아가는 냄새를 흠뻑 맡을 수 있어서 참 생기가 난다.

내가 비록 가르치는 선생이긴 해도 그들에게 그보다 더 진한 ‘경험’이라는 최고 학부를 배운다.

또한 이쯤의 나이에도 내가 필요한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러니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도 한다.

처음 어색했던 수업의 흔적은 어느새 가을을 두 번이나 보냈다.

그 속에서 햇살처럼 투명했던 유년의 동심도 소풍을 통해 볼 수 있었고 한해를 마무리하며 열심히 공부했던 상징으로 모두 한자리에 모여 상을 받아 기뻐하기도 했다.

십 년. 흔히 그 세월이면 강산도 변한다고들 한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을 보내면서 배운 것을 나눌 줄 아는, 절실하게 하고 싶던 일을 충실히 해내는 상록수 한글학교의 가족들을 생각한다.

오늘, 구름의 푸른 속살을 가르고 떠오른 햇살이 눈부신 아침이다.

간밤에 내린 이슬에 흠뻑 적신 잎들이 이제 햇살로 제 몸을 말리고 있다.

하늘은 맑은 물로 날마다 씻어 내는 듯 해맑은 푸르름으로 지향없이 높아만 가고 있다.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참 좋은 오늘이다.

그래 이 아침, 내 가슴에 차 오르는 희열을 소롯이 담아 돋보기를 끼고 연필로 한 자 한자를 또박또박 써 내려가는 초등 3반 친구들에게 전하려 한다.

오늘은 두 번 다시 오지 않고 세월은 사람을 절대로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인내와 노력,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을.

인내야말로 환희에 이를 수 있는 문이라고.

틀림없이 희망은 사람을 성공으로 인도하는 신앙이다.

까치는 기쁜 소식을 알리는 새다.

나도 좋은 소식과 새로운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다.

가끔은 분주한 생활이지만, 열린 마음으로 진정한 나를 잃지 않으려는 열망을 가지고 내가 나누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모두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친절은 친절을 낳고, 사랑은 사랑을 낳는다’ 라는 말을 되새기며 내가 받는 기쁨을 열 사람 아니,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리라.

함께하는 삶은 언제 어디서나 아름다운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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