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제

추석 날 아침부터 시누크헬기가
도두리 들녘을 굉음(宏音)으로
잡아 누르며 날아 다녔다


계양 초입의 삼거리를 지나
캠프험프리에서 쏟아져 나오는
기름진 노린내의 페수로(廢水路)에 닿으면
누구나 헬기소리를 들어야 했다
흑인 병사의 얼굴보다 검은 철조망이
헬기의 프로펠러에 달달거리며
쓸쓸한 귀향객의 폐부(肺腑)를 쿡쿡 찔러댔다


흙먼지 날리는 군용트럭 꽁무니를
감자 같은 얼굴들이 쫓아 다녔던 신작로
던져주는 쵸코렛에 손인사를 남발하고
낄낄거리는 병사의 비웃음에는
강자의 비겁한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것이 비극의 시작임을 아무도 몰랐다
콜라의 부글거리는 느낌으로
쵸코렛의 두 가지 맛으로
그렇게 서서히 잠식해 온 워카의 발자국들


쓰린 속 다스리며 내 논배미에서
들어야 하는 이국의 헬기소리
거센 바람에 잘 여문 나락이 고갤 숙이고
거센 소음에 허수아비마저 침묵하였다
푸른 눈빛의 병사들이 군가를 부르며
농고지 들길을 도도히 지나갔다


UH-1H헬기가 신대리 들판을
날아 다니는 추석 날 아침,
이제 평택은 평야가 아니다
머지 않아 아버지의 묘를 이장(移葬)하고
소작농의 간기가 밴 논을 밀어서 만든
활주로의 유도등이 부채살처럼 넘어가면
C3수송기, U2기, T-10기, 스텔즈가
참새대신 캠프험프리를 날아 오르리라


이제 평택은 평야가 아니지
영영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쓸쓸한 귀향의 하루가
평택 평야에서 서해의 끄트머리로
목젖에 차오르도록 달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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