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과 고르바초프 회담을 되돌아보며

레이건과 고르바초프 정상회담의 성공은 당사자 간의 신뢰였다

남북 그리고 북미 간의 정상회담도 당사국 정상들 신뢰가 우선

김남균 평택대 미국학과 교수

[평택시민신문] 극한 대결로 치닫던 한반도 정세가 변화를 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남한 특사단을 맞은 북한이 남한의 남북정상회담 제안을 전격 수용했다. 평창 동계 올림픽으로 시작된 북한의 평화 공세가 진정성 있는 후속대화로 이어지는 형국이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남북뿐 아니라 미국 대통령도 정상회담에 합의한 점이다. 이제 관심은 정상회담의 성과이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인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1985년 레이건-고르바초프 회담 때와 같은 극적 변화의 첫 단추가 꿰어질 수 없는 것일까?

1985년 11월 19일,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과 소련(현재 러시아)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미카엘 고르바초프가 정상회담을 가졌다. 장소는 스위스 제네바였다. 제네바 회담 직전까지 미소 양국은 극도의 군사적 긴장관계에 있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소련에 대한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1981년 취임 후 레이건은 미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수준의 군비증강정책을 추진했다. 레이건 행정부가 추진한 핵심 국방정책은 ‘전략방위계획(SDI- Strategic Defense Initiative)’으로 불리는 새로운 개념의 군비증강이었다. 소련도 국방비를 확대하며 미국에 맞섰다.

레이건은 소련을 ‘악의 제국(Evil Empire)’이라고 비판하며 강도 높은 여론전도 펼쳤다. 오랜 냉전기간 동안 소련을 악의 제국으로 비판한 미국 대통령은 레이건이 처음이었다. 미소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던 1983년 8월 대한항공(KAL)의 여객기가 소련 공군에 의하여 격추되는 참사도 발생했다. 수십 명의 미국인을 포함하여 탑승객 전원이 사망했다. 미국이 앞장 서 소련을 비인도적 국가로 낙인찍었다. 소련은 1984년 로스엔젤레스에서 개최된 하계 올림픽 참가도 거부했다.

그런데 고르바초프가 레이건 대통령의 정상회담 제안을 전격 수락함으로써 제네바에서 회담이 열렸던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1931년 출생하여 공산주의 사회에서 철저한 공산주의자로 교육받은 인물이었다. 반대로 1911년에 출생한 레이건은 젊은 시절부터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레이건은 공산국가에 대한 확실한 대외정책은 군비증강뿐이라고 믿고 있었다. 나이 차이가 20년이나 되는 두 사람의 경력도 상이했다. 레이건은 50세가 넘도록 배우 생활을 하다 정치인이 되었고, 고르바초프는 공산당 관료 출신이었다. 닮은 부분이 거의 없었다.

1985년 11월 19일 회담 장소에 레이건이 먼저 도착해 고르바초프를 기다렸다. 고르바초프가 도착하자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누었다. 첫 악수를 나누면서 예상 외로 레이건은 고르바초프에게 별다른 적대감을 느낄 수 없었다고 회고록에 적었다. 그러나 두 정상 사이의 회담은 난항을 겪었다. 공식 회담에서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서로 거침없이 비판했다. 서로 상대방이 군비증강을 촉발시켰다고 주장했다. 고르바초프는 SDI의 중단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레이건은 SDI는 방어용임을 강조했다. 결국 제네바 회담에서 미국과 소련 사이에 타결된 회담 내용은 매우 빈약했다.

그러나 제네바 회담은 냉전이 종식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가 서로 상대방에게서 신뢰 가능성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 제네바 회담을 의미 있게 만든 배경에는 레이건의 노력이 있었다. 미국 관계자들은 공식 회담이 열리는 장소에서 산책 거리에 있는 호숫가 별장을 빌려 놓았다. 별장은 회담 중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가 통역사만 대동한 채 대화를 나눈 장소로 이용되었다. 비공식 장소에서 이루어진 두 지도자의 격의 없는 접촉은 신뢰구축의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회담의 성패는 당사자의 신뢰에 달려 있다. 남북 그리고 북미 사이에 예정된 정상회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남한과 북한 그리고 북한과 미국 사이에는 극도의 불신감과 적대감이 쌓여 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로 일촉즉발의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이런 위기를 타개할 극적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 변화는 당사국 정상들의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다. 정상회담에서 서로 상대방에게서 신뢰할 수 있는 보편적 인간성을 발견한다면 한반도의 평화정착도 가능하지 않을까? 당사국 정상들은 레이건과 고르바초프의 회담을 거울삼아 상생의 묘수를 찾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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