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잡은 정치인이 자신에 맞춰 제도 수정 해 온 불행한 역사 기억해야
정치문화 바뀌지 않으면 개헌 후에도 한국 정치 별 차이 없을 것

김남균 평택대 미국학과 교수

[평택시민신문] 2월 셋째 월요일은 미국에서 ‘대통령의 날(Presidents’ Day)’이다. 대통령의 날은 단순한 기념일이 아니라 연방 정부에서 제정한 법정 공휴일이다. 우체국을 제외한 모든 관공서는 업무를 보지 않는다. 다른 공휴일과 마찬가지로 판매업계에서는 공휴일 특수를 즐긴다. 미국사회의 정치문화를 잘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이다.

그렇다면 미국 대통령제는 완벽한 제도인가? 1960년대 말 베트남 전쟁을 경험하면서대통령 권한남용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생겼다.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였던 아더 술래진저(Arthur M. Schlesinger, Jr.)는 1973년에 출간한 <제왕적 대통령제(Imperial Presidency)>라는 저서에서 20세기 미국 대통령의 권한 행사가 헌법에 규정된 범위를 넘어섰다고 비판했다. 지금도 ‘제왕적 대통령제’ 라는 말은 대통령제의 병폐를 지적하는 표현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사실 미국 대통령 중에 수준 이하로 평가되는 대통령도 여러 명 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로 사임까지 했다. 그러나 대통령에 관한 헌법 조문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지만 대통령제 자체에 대한 비판은 거의 없다. 대통령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견고한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통령제를 바꾸자는 주장이 많다. ‘제왕적’ 대통령제 때문에 우리 정치가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안으로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하는 목소리도 있다. 불행한 우리의 정치사를 생각하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자는 주장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권형 대통령제를 채택하면 우리 정치문화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 정치 발전의 핵심 주체는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다. 무엇보다 정치인들이 만들어 가는 정치권의 정치문화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우리 정치사는 권력을 잡은 정치인이 자신에게 맞추어 제도를 수정한 역사이다. 국민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정치인을 위한 제도를 만들어 온 셈이다. 해방 후 거의 70년 동안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으나 대통령제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부족한 이유이다.

여기서 미국은 어떻게 소위 ‘제왕적’ 대통령을 기념하는 ‘대통령의 날’까지 제정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원래 대통령의 날은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생일을 기념하여 19세기 후반에 시작되었다. 워싱턴의 생일은 2월 22일이다. 명칭도 대통령의 날이 아니라 ‘워싱턴 생일(Washington’s Birthday)’이었다. 그런데 1971년부터 워싱턴뿐 아니라 2월 12일이 생일인 링컨 대통령도 함께 기념하자는 취지에서 2월 셋째 월요일이 대통령의 날로 지정되었다. 그 후 전직과 현직 모든 대통령뿐 아니라 대통령직 자체를 기념하는 날로 대통령의 날의 의미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미국이 대통령의 날을 제정한 배경에는 워싱턴 대통령의 공헌이 절대적이었다. 워싱턴은 헌법에 중임제한 규정이 없었지만 2번의 임기를 마치자 퇴임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후대 정치인들을 위한 고별사(farewell address)를 남겼다. 1796년에 신문에 발표되었던 그의 고별사는 지금도 상원 본회의에서 매년 낭독하는 행사를 하고 있다. 낭독에 1시간 정도 걸리는 200여 년 전 전직 대통령의 고별사를 상원의원들이 매년 반복하여 경청하는 것이다. 고별사에서 워싱턴은 두 가지를 강조했다. 대외적으로 군사동맹을 맺지 말고, 대내적으로 파벌(정당)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물론 두 가지 충고는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공익을 앞세웠던 워싱턴의 애국심은 미국 정치인이면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정치인의 기본 규범으로 살아 있는 것이다(사실 워싱턴 대통령에 대한 미국인들의 존경은 거의 신앙적 수준이다).

개헌 논의가 한창인 우리 정치권에 진정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이미 여러 번 개헌을 경험했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들이 불행한 순간을 맞이하는 일은 반복되고 있다. 그 불행이 모두 제도 탓일까? 우리 정치사의 불행을 되풀이하고 있는 정치문화가 바뀌지 않는다면 개헌 후에도 우리 정치는 별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개헌논의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정치문화가 바뀌는 일이 아닐까? 새 부대와 함께 새 포도주도 기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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