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평생 살아온 손현득 전 에바다학교 교장

 

건강하게 살면서 이웃을 배려하고 여유롭게 봉사하는 노후는 많은 사람의 소망이고 높은 가치로 여겨진다. 여기 사회적 정의까지 실천하는 삶이 있어 소개한다. 재능기부처라는 사회단체를 통해 남한에서 북한까지 재능기부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도움이 되고 싶다는 손현득선생님(70)을 만났다.

 

손현득 선생님의 일주일

손현득 선생님의 일주일은 이렇다. 월요일 오전9시에 합정동 평택남부장애인복지관 장애인부모교실에서 사군자를 가르치고 송탄으로 넘어와 오후에는 북부노인복지대학에서 2시간, 저녁에는 땡큐아동복지회에서 2시간 사군자를 가르친다. 화요일에는 송일초에서 방과후 무료 바둑교실을 열어 7-8의 아이들이 배우고 있다. 지난해까진 일주일에 유일하게 혼자 보내는 하루였으나 아이들을 가르쳐달라는 요청에 즐겁게 일하고 있다. 수요일은 북부장애인복지관에서 장애인 부모에게 탁구를 가르치고 오후엔 드림스타트에서 바둑을 지도한다. 드림스타트 바둑교실은 3년차로 17명이 배우고 있다.

북부장애인복지관에서 시작하는 목요일은 오전 10시부터 탁구를 가르친다. 성인 장애인 7-8명이 참여하는데 요즘 손선생님에게 가르치고 함께하는 재미를 가장 쏠쏠하게 느끼게 해주는 팀이다. 장애인들이 운동을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현실에서 배움과 친교의 기회를 귀하게 얻게 된 참여자들의 열의는 대단하다. 실력이 늘면 자신보다 잘 못치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 상대가 되어준다. 탁구가 재미있다 보니 손선생님이 대표로 있는 봉사단체인 재능기부처에서 기계 잘 다루는 재능으로 봉사하는 회원도 생겼다. 숟가락 들기가 어려웠던 장애인이 탁구라켓을 들게 되면서 숟가락을 쉽게 드는 것을 보는 것도 기쁜 일이다.

이제 금요일이다. 27년 전 개척교회 당시부터 나가고 있는 기쁜교회의 ‘축복학교’ 예배를 마치고 일주일 동안에 가장 맛있는 점심을 먹고 나면 65세 이상 바둑교실이 자연스럽게 열린다. 오후 5시가 되면 이충동 건영아파트 안에 있는 건영묵우회에서 회원들에게 수준별 진도별 채본을 해주다보면 7시가 훌쩍 넘는다. 묵우회는 올해로 18년차다.

 

토요일 오전에는 예솔교회 선교부에서 초등학생 바둑을 2년째 지도하고 있다. 오후에는 부락종합사회복지관으로 자리를 옮겨 바둑과 탁구를 가르친다. 복지관이 1시부터 6시까지 주민들에게 개방하는 탁구교실에서 허광열 회장(본지 859호 2017.4.19일자 소개)과 함께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2-3년 사이 회원이 58명으로 늘어나 복지관 지원으로 관장배 탁구대회를 열기도 했다. 살림살이가 넉넉하지 않아도 탁구를 같이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을 살피고 자신의 소박한 재능을 주위에 기부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행복하다. 한바탕 땀 흘리며 탁구를 치고 나서 회원들과 기울이는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은 또 얼마나한 행복인지.

 

장애인과 함께 한 인생

장애인을 빼고는 손 선생님의 일주일을 말할 수 없다. 장애인과 함께하는 손 선생님의 생활은 시작이 언제라고 딱히 말할 수 없는 그저 인생 자체다. 손 선생님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1996년 에바다사태 당시 에바다학교 교감이었다. 에바다사태는 배가 고프다고 농아원 밖에서 농성을 벌인 에바다농아원 원생들의 시위 문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축소 은폐하려는 재단과 재단의 영향력 아래 있던 교사, 학생측과 사과하고 개선해달라는 교사, 학생, 시민사회단체 사이 7년간에 걸친 긴 싸움이었다. 싸움은 시민사회쪽 승리로 막을 내렸다. 승리 뒤에는 든든하게 버팀목이 되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손 선생님도 그중 한 사람이다.

“그 때 우리 편이 얼마 없었어요. 우리 편이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죠. 교사와 학생들이 재단을 이긴 싸움은 당시에도 지금에도 없어요. 주위에서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했는데 계란으로 자꾸 치니까 흔적이 남더라고요.”라며 당시를 회상하던 손 선생님이 현재 민중당 평택지구당 후원회장을 기꺼이 맡고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

“우리가 아무리 농성을 해도 큰 정당들은 전화 한 통화가 없었어요. 작은 정당이죠. 민주노동당의 권영길 대표가 우리를 찾아왔어요. 고마웠습니다. 전교조와 민주노총이 함께해줬고 현재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의 변호를 맡고 있는 김칠준 변호사가 정말 많이 도와줬죠. 사위랑 주변 사람 여럿을 민중당 당원으로 가입하게 했어요.” 노무현 대통령 서거 당시에는 봉하마을에 에바다학교 전교생을 데려갔다. 노무현 대통령때 에바다사태가 정상화된 사실을 잊을 수가 없었다.

“싸움을 하다 보니 언론의 중요성을 알겠더라고요. 우리지역 언론 평택시민신문이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됐어요. 특히 이철형 기자가 에바다사태의 진실을 기록하여 알리는 일을 했는데 큰 힘이 됐습니다. 이 기자는 지금도 동생처럼 애틋하고 항상 약자 편에 서서 진실을 보려고 하는 평택시민신문에 대한 신뢰는 여전합니다.”

 

배움은 나누라고 있는 것

손 선생님의 이력에는 보기 드물게 일관성이 있다. 배운 것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19세 때인 1967년 고향 달성군(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면에서 재건중학교를 설립했다. “나는 집이 부자라 대학을 나왔는데 고향에는 중학교를 못 간 사람들이 많았어요. 못살아도 남자는 중학교까지는 보내주는데 여자들은 가르치질 않았어요. 동네 초등학교 1학년이 오전수업을 마치고 가면 그 교실을 빌려서 오후에 재건중학 수업을 했어요. 여학생들이 많았는데 어른이 되어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전화가 오기도 합니다.”

“대학 3학년에 특수교사 자격증을 땄어요. 특수교사가 많지 않았지만 자격증 취득이 어려운 시절이라 대구 영화학교에 금방 취직이 됐어요. 공부보다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대학을 야간으로 옮기고 낮에는 일을 했죠. 월급도 일반교사의 2/3 수준이고 행정실 직원이 따로 없어 행정실 서무와 교사를 같이 했는데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이후 달서고등학교와 청각장애특수학교 교무부장을 거쳐 하북 에바다학교 교감으로 오면서 평택과 인연을 맺었다. 에바다학교에서는 교감과 교장으로 18년을 일했다.

 

생활체육은 중요하다

손 선생님은 젊어서부터 생활체육을 강조해왔다. 특히 장애인들이 신체적 어려움과 사회의 부정적 인식으로 활동량이 적어 체력이 부실하고, 약한 체력이 사회적응력을 떨어지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에바다학교 교장시절 학생들에게 탁구를 가르치기 시작했고. 일반인에게도 생활체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손 선생님도 운동을 즐긴다. 부인 서태화씨와 부부동반으로 테니스와 골프를 자주 즐기고 50대까지 부부 테니스팀, 골프팀으로는 평택에서 대적할 팀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도 골프를 즐기는 부인 서태화씨는 60대임에도 평균 타수 79타로 아마추어 중에서 수준급이다.

어제 머리를 깎았다는 손 선생님의 얼굴이 여느 때보다 말끔하다. 두 번째로 좋은 옷을 입고 나왔다는 농담 섞인 인사도 신문 창간 21주년을 대접받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평소에 보여주는 무애한 듯한 성격에 이런 성실함이 더해져 40년 넘는 교직생활이 가능했을 것이다.

손현득 선생님은 현재 동방재활원 인권위원장, 아나율의집 인권위원장, 평택시북부장애인복지관 운영위원, 땡큐아동복지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많은 경력중에서 특히 기쁜교회 교회학교 교장 10년 경력과 현재도 맡고 있는 기쁜교회 권사 제직을 자랑스러워했다.

 

사진 박연우 사진작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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