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경<송탄여중 교사>

초등학교 3학년, 10살배기 아이의 말이다.
이 아이는 엄마에게서 “왜 공부를 해야 하나?”에 대해 장황하지만 비교적 설득력 있는 말을 듣고 있던 차였다.
지칠 대로 지친 듯 깊은 한숨을 몇 번 내몰고는, 체념이 배어난 표정 위로 흘려낸 그 말은 날 몹시 씁쓸하게 만들었다.
아이는 곤충학자가 되겠단다.
야무진 꿈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냥 곤충이 좋아서 그렇단다.
친구들과 뛰어놀기 좋아하는 그맘때의 여느 아이들과 다르지 않다.
엄마, 아빠의 기대도 그리 거창하지 않다.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 것뿐이고, 그러기 위해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을 뿐이다.
그래서 되도록 자유롭게 커가도록 하기 위해 다른 아이들처럼 여러 학원을 전전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엄마, 아빠에게는 조그만 욕심이 있다.
이왕이면 아이가 바라는 일에서 남보다 인정받는 위치에 설 수 있기를 바라는 욕심이다.
그래서 아이가 돋보이는 곤충학자가 될 수 있도록 몇 가지 공부를 때로는 강요하고 있다.
우선 영어다.
특히 엄마의 노력은 가상하다.
학원에 보내지 않는 대신 스스로 정보를 수집하고 연구하여 가르치고 이끈다.
물론 아이는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아빠도 이런 엄마 모습이 달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뾰족이 엄마의 뜻을 거스를 명분이 없어 오히려 힘들어하는 아들을 궁색하게 설득한다.
“너, 우리나라가 곤충 연구가 잘 안되어있는 것 알지?
그러니까 네가 곤충을 깊이 연구하려면 다른 나라 책을 읽어야 해.
그런데 그 책들이 어떤 글로 쓰여 있겠니? 영어지? 그리고 네가 뛰어난 곤충 학자가 되려면 네가 연구한 것을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알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어떤 글로 써야 하겠니? 영어지.”
다음은 글짓기이다.
자기 생각과 느낌을 다른 이들에게 정확히 전달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글을 논리적으로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엄마, 아빠는 생각한다.
더구나 아이가 학자가 되겠다고 하니 필요 불가결한 조건인 것이다.
그러니 때때로 지겨워하는 아이에게,
“너, 글은 평생 쓰는 거야. 그러니 글을 잘 써서 네 생각을 남에게 올바로 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겠니? 힘들어도 참아봐.”
그 외의 것들은 아이가 원하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이 정도면 아이의 엄마, 아빠는 극성스런 부모는 아니겠지? 그러나 아이는 이 정도도 힘들어한다.
그래서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너는 몇 군데 안 다니잖니? 친구들 봐라. 영어, 미술, 피아노, 태권도, 논술, 학습지……. 넌 몇 개 안 하잖아!”
과연 사교육의 가지수로 아이의 자유와 교육의 질을 저울질할 수 있을까?
이런 계산법이라면 한 가지를 시키나 열 가지를 시키나 매한가지 아닐까?
아이를 만들려는 부모의 의도가 작용하기는 마찬가지이니 말이다.
엄마, 아빠가 겉으로는 ‘곤충 학자’라는 아이 꿈을 인정하고 도와주는 역할에만 충실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좀 더 들여다 보면 아이를 ‘돋보이는’ 곤충 학자로 만들려는 엄마, 아빠의 욕심이 도사리고 있다.
즉 아이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주체가 되는 꿈이요, 삶이 되어버린 셈이다.
엄마, 아빠에 의해 다행이도 아이가 곤충 학자가 되었다고 하자. 아이는 과연 행복할까?
그 행복은 누구 것일까? 곤충 학자가 되기까지 맛볼 수 있는 순간순간의 행복은 다 어쩌고…….
사실 아이의 엄마, 아빠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지쳐 살다보니 불안한게지.
아빠가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얘야, 곤충 학자가 못될 수도 있단다.
열심히 했는데도 안되는 일이 있지않니?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학자가 못되었다고 곤충을 연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중요한 것은 네가 곤충을 좋아하고 곤충과 함께 할 때 즐겁다는 것이란다.
그러니 네가 학자가 되지못한다 해도 곤충과 함께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보면 되지 않겠니?
어쨌든 네가 지금은 곤충 학자가 되고 싶다고 하니, 우리 최선을 다해보자꾸나. 엄마, 아빠가 힘껏 도와줄께.
자, 무엇부터 도와줄까?”
이 아이는 안타깝게도 내 아들이다. 난 이 아이의 어리석은 아빠다.
<교단에서 온 편지>
평택시민신문
webmaster@pttime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