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호 순<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언론보도로 입은 피해를 보상받는 장치 중의 하나로 반론권이 있다. 민법 제764조는 법원이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과 더불어 “명예회복에 적당한 처분”을 명령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정기간행물 등록법과 방송법은 반론보도청구권 조항을 두어, 언론에서 제기한 “사실적 주장”에 의하여 피해를 받은 경우 언론중재위원회에 반론보도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적 주장”이란 아직 진위여부가 가려지지 않은 사실보도를 말한다.
언론중재제도는 반론보도를 통해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를 신속하게 보완하기 위해 만든 법적 장치이다.
헌법재판소는 언론중재제도를 “개인의 명예와 사생활이 거대한 언론의 전파력과 언론기관의 배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리적인 언론기업의 막강한 위세와 편견에 의하여 부당히 침해되고 노출될 경우에는 개인의 권익을 신속·적절히 보호하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는 법적인 장치“라고 인정했다.
그래서 언론중재제도는 소송에 비해 절차가 매우 간편하다.
우선 반론보도 신청자는 언론보도가 오보라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언론사의 고의나 과실 등을 입증할 필요도 없다. 자신에게 피해를 입힌 언론보도가 있었다면 누구나 반론보도 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언론중재제도는 부끄러운 출생의 비밀을 갖고 있다.
5공 정권의 언론통제 조치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제도이기 때문이다.
물론 제5공화국 정권치하에서 언론중재제도는 적극적으로 활용되지 못했다.
언론중재위에 반론보도를 신청할 사유가 없어서가 아니라, 감히 언론을 상대로 불만을 제기하기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언론중재위원회 제소건수는 1980년말에 이르러서야 연 100건이상, 그리고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어서야 연 500-600건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이상 늘어나는 기미는 보이질 않고 있다.
이러한 추세는 크게 두 가지의 상반된 해석이 가능하다. 우선 반론권을 존중하는 관행이 언론계에 자리가 잡혀 반론보도 신청을 할만한 사유가 줄어들었을 수 있다.
또 하나는 언론중재제도에 만족하지 못하고 곧바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론보도를 받아내려면 언론중재위원회를 거친후 소송을 해야 하지만, 명예훼손은 곧바로 법원에 민형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도 언론중재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다.
현행 언론중재위원회 제도에 대한 문제점은 자주 지적되어 왔다. 우선 반론권 자체가 피해보상으로서의 성격이 약해, 무책임한 언론보도에 대한 적절한 대응수단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중재위원회의 결정에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언론사가 합의를 거부했을 경우 마땅히 대응할 수단이 없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언론중재위의 결정이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자보다는 언론사의 입장을 옹호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언론중재위원회가 1996년 중재신청인과 피신청인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중재신청인의 82.5%, 피신청인의 95.1%가 언론중재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응답했다.
이를 바탕으로 언론중재제도의 법적 기능을 강화하려는 입법안이 의회에 제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중재제도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나친 반론권 보장 요구는 언론의 편집권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도 반론권의 남용이 “현실적으로 정기간행물의 편집 내지 편성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됨은 물론 간접적으로 보도기관의 보도활동을 위축시키고 나아가 경영을 압박함으로써 보도의 자유에 대한 장애가 될 수도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아직은 반론권 청구가 명예훼손 소송처럼 언론자유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수억 원에 이르는 명예훼손 손해배상이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것은 누구도 쉽게 인정할 수 있지만 반론보도를 강제하는 것이 언론자유를 위축시킨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언론중재위원회의 결정에 강제력이 없어, 언론사가 반론보도를 거부하면 그만이다.
오히려 언론사의 입장에서는 명예훼손 소송으로 인한 많은 재정부담없이 사전단계에 효과적으로 피해자들의 불만을 처리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명예훼손 소송이 빈발하는 한국적 현실에서 언론중재제도는 개인과 언론 모두에게 이로운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언론중재제도의 운영의 묘를 살려, 편집권의 침해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당사자에게는 효과적인 반론 기회를 주어, 국민의 알권리 신장과 여론의 다양성 보장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언론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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