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균 평택대 미국학과 교수

[평택시민신문] 어제는 72 주년 광복절이었다. 1945년 8월 15일은 식민 통치로부터 민족이 해방된 날이면서 동시에 세계사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날이다. 2차 대전은 인류가 겪은 최악의 전쟁이었다. 전사자가 5000만 명이 넘었다. 대전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배타적 인종주의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 1939년 2차 대전 발발의 장본인이었던 아돌프 히틀러는 게르만 민족이 가장 우수한 인종이라고 믿었다. 우수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지배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게르만 민족의 번영을 위해서 넓은 러시아 대륙의 정복에 나섰다. 그의 최종 목표는 러시아를 독일인의 생활터전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유태인뿐 아니라 러시아인들도 모두 말살의 대상이었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유럽의 히틀러보다 먼저 침략전쟁을 일삼고 있었다. 1941년 진주만 기습으로 전쟁이 확대되기 훨씬 전 일본은 이미 청일전쟁을 시작으로 쉼 없이 침략전쟁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타이완은 1895년에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고 우리도 1910년에 합병되고 말았다. 일본식민주의자들도 히틀러와 같은 인종주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일본의 번영을 위하여 한반도와 아시아 대륙을 정복하길 원했다. 일본은 백인우월주의에 대항하여 대동아공영(大東亞共榮)을 외쳤지만, 위계에 지나지 않았다. 탈아입구(脫亞入歐)를 꿈꾸던 일본은 같은 아시아인을 식민지 노예로 만들었다. 2차 대전은 인종주의자와 그에 대항하는 인류의 저항전쟁이었다.

72년 전 2차 대전의 총성이 멈추자, 인종주의는 급락했다. 패전국의 지도자들은 전범재판을 받았고, 식민지는 모두 잃었다. 승전국이던 프랑스와 영국도 점차 식민지들을 포기했다. 승전을 이끈 미국조차 변화를 비켜가지 못했다. 식민지 문제 대신 미국은 국내 인종문제를 안고 있었다. 남북전쟁으로 노예제는 폐지되었지만, 미국은 흑인과 백인이 철저하게 분리된 인종차별사회였다. 흑인과 백인은 학교나 식당을 비롯해 모든 공공시설에서 분리되었다. 2차 대전 중에 흑인과 백인은 같은 부대에 소속될 수도 없었다. 2차 대전이 끝나자 미국의 인종차별정책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었다. 6.25전쟁 참전 때부터 백인과 흑인은 같은 소대에 배치되었고, 1954년 브라운 판결과 1964년 민권법의 제정으로 인종차별은 법적으로 사라졌다. 오히려 소수자인 흑인에 대한 우대정책이 실시되고 있다. 물론 인종문제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2차 대전 후 미국의 인종정책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은 것이다.

우리사회는 어떤가? 우리에게는 단군신화가 있다. 같은 조상의 후예들이라는 신화 덕분에 우리에게는 인종적 갈등은 거의 없었다. 대신 혈연의 뿌리를 증명하는 족보는 생명만큼 중요했고 가족, 문중, 민족은 최고의 가치를 담고 있었다. 국가가 사라진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투쟁을 하면서 민족의 사회적 의미가 더욱 강해졌다. 민족이 정의의 기준이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광복을 맞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72년 동안 우리 민족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하나였던 민족은 두 동강이 났고, 남북한의 삶의 방식도 달라졌다. 극도의 폐쇄사회인 북한과 달리 남한은 단일민족사회에서 다인종사회로 바뀌고 있다. 매년 수만 명의 외국인들이 결혼 이민을 선택하고 있으며 국내 거주 외국인과 순수 귀화인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우리민족’ 혹은 ‘단군의 후예’란 단어로 포용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 급격히 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우리’의 새로운 구성원들에게 광복절은 어떤 의미일까? 다문화 시대에는 ‘우리민족’이란 단어 자체가 배타성의 상징이 되어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닐까? 광복절과 같은 국가 기념일은 ‘민족’ 대신 인류의 보편적 ‘가치’가 강조될 때 새로운 공동체의 존립 기반이 강화되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지금의 광복절은 일제로부터 ‘민족’이 해방된 기념일임을 넘어서서 인종주의를 신봉하던 식민세력이 멸망하고 만민평등의 보편적 ‘가치’가 회복된 날로 재인식하자는 것이다. ‘민족’보다 ‘가치’를 중시할 때 독립운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위한 투쟁이 된다. 뿐만 아니라 관습적으로 간직해 온 이질적 요소에 대한 차별적 편견을 극복하고 다문화 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도 찾을 수 있다. 우리사회는 여러 민족이 함께 사는 다문화 사회를 지향하고 있다. 광복절도 사회 구성원 모두의 기념일로 될 수 있어야 한다. ‘피’보다 ‘가치’가 중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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