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성 경<송탄여중 교사>

개학을 했다.

사치스런 이야기이겠지만 방학은 가끔 내게 지루한 시간이기도 하다.

자율적이지 못한 난 얼마간의 제약이 없으면 허우적거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학이 기다려지기도 하고 개학이 다가오면 소풍 전날처럼 들뜨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개학은 사뭇 달랐다.

잔득 밀린 숙제로 개학이 두려운 아이처럼 마냥 싫었다.

‘정회장 자살’, ‘북핵’, ‘인공기 소각’, ‘U-대회’, ‘우익단체와 북한기자단’, ‘미인(?)응원단’, 게다가 ‘폴러첸’까지. 통일과 관련한 일들만 해도 머리는 복잡했다.

벌어진 일들 때문에 어지러웠던 것이 아니다.

그 일들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하다기보다는 난잡에 가까운 반응과 생각이 너무 힘겨웠다.

개학은 열 대여섯살 중학생들과 새로운 매듭을 만들어 가는 출발이다. 멋진 출발을 위해서는 잊었던 서로의 모습에 눈길을 주고 귀기울이며 서로 겹치는 부분을 찾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난 방학 중 겪었던 일들과 모두가 듣고 보았던 세상일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난 열 대여섯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

쉽게, 때로는 명료하게, 때로는 단순하게, 그러면서도 가치중립적으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교통정리하면서. 그러려면 나는 벌어진 세상일과 그것에 대한 사람들의 각기 다른 반응도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너무 어지러웠다.

내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들과 어떻게 이야기를 나눌 것인가.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물음에 어떻게 답을 해야하나?

필할 수도 없는, 피해서도 안될 일이기에 개학이 두려웠다.

더구나 난 국사를 가르치고 있지 않던가.

이 때 떠오른 단어가 있었다. ‘카오스’. 그래. 혼돈을 인정하자. 혼돈 없는 ‘거듭남’이 있겠는가. 아픈 만큼 성숙한다지? 맘이 편했다.

그래도 잠은 오지 않았다.

개학하고 열흘이 지났다.

괜한 걱정을 했나?

아이들은 묻지 않았다.

그런데 왜 내 맘은 더 어지러워지는 걸까?

그래, 아무래도 먼저 살아온 내가 입을 열어야겠다.

혼돈과의 공존을 위해.

<교단에서 온 편지>
저작권자 © 평택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