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중앙정부의 권력분립만으로 제대로 된 민주정치가 실현될 수 없다.

우리 정치도 중앙정부에 예속된 지방정부의 권한을 국민에게 돌려 줄 때가 되었다.

김남균 평택대 미국학과 교수

[평택시민신문] 며칠 후 제헌절을 맞는다. 이번 제헌절에는 헌법과 관련하여 정치권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궁금하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1년 내 개헌 완료를 약속해 놓았기 때문이다. 1948년 시작된 우리 헌법의 역사는 순탄하지 않았다. 초대 국회의장이었던 이승만은 대통령이 된 이후 자신이 주도하여 제정하였던 헌법을 여러 차례 개정하였다. 그 후 박정희 정부와 전두환 정부를 거치면서 우리 헌법은 마치 걸레처럼 구겨지고 찢겨졌다. 헌법에 의하여 나라가 통치된 것이 아니었다. 헌법은 통치자의 권력을 정당화시키는 수단에 불과했다. 법치가 무너졌던 시대의 어두운 자화상이다. 현재의 우리 헌법이 개정된 지 불과 30년이다. 그러나 시효가 지난 약처럼 용도 폐기의 대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새로 나올 헌법의 성공 조건은 무엇일까?

인류 역사에서 성문 헌법이 처음 등장한 곳은 미국이었다. 1787년 미국은 연방헌법을 제정하였다. 1776년 독립을 선언한 후 1787년까지 미국의 13개 주는 각기 독립된 국가였다. 13개의 독립국가가 존재하는 상태였다. 그런데 1787년 13개 주가 연합하여 중앙정부를 창건한 것이다. 주 사이 무역에 부과되던 관세의 철폐나 공동의 안보체제 구축과 같은 현안문제의 해결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독립전쟁으로 발생한 국채의 해결도 중요한 이유였다. 그런데 연방정부의 창건에는 이런 현안문제 보다 더 근본적 문제가 있었다.

문제의 핵심은 13개 주를 통합할 때 나타날 중앙집권적 연방권력이었다. 영국의 중앙 집권적 왕권에 대한 거부가 미국의 독립정신이었다. 새로운 중앙정부의 창건은 논리적 자기모순이었다. 결국 강력한 중앙정부를 창건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을 고안하여 문제를 해결했다. 해법은 권력분립이었다. 권력분립은 인류 역사상 처음 시도된 정치적 실험이었다. 그런데 권력은 본질적으로 집중을 원한다. 집중될 때 효율성이 높은 경우도 있다. 소위 집중적 통제를 의미하는 ‘컨트롤타워’가 상식처럼 이야기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권력분립에 기초한 미국 연방헌법은 현재까지 230년 동안 유지되고 있다.

그런데 미국 헌법의 권력분립을 이야기할 때 간과되는 부분이 있다. 주권(州權 -states’ rights)이다. 권력분립은 단순히 중앙정부를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로 나누어 놓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중앙정부를 3부로 나누어 놓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의 견제이다. 미국 헌법에 나타난 권력분립의 기본정신이다. 미국의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연방정부는 주정부에 대해 인사권을 포함하여 어떤 권한도 가지고 있지 않다. 주정부 내에도 입법부와 행정부 그리고 사법부가 모두 존재한다. 또한 주정부의 고위 책임자들은 모두 주민의 직접선거로 선출된다. 우리에게 노예문제가 원인으로 알려져 있는 남북전쟁도 사실은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권한 다툼이 핵심 원인이었다. 노예제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주의 고유한 권한이라는 것이 남부 주들의 주장이었다. 주권재민의 민주원칙이 실질적으로 실천될 수 있는 곳은 주민이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지방이다.

우리의 지방 정부는 어떤가? 자치가 가장 필요한 동이나 면은 상위 행정기관의 하부 조직에 불과하다. 시와 군이나 도 수준에서도 재정권과 인사권이 완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 거기다 지방의 사법권에 대한 권한은 개념조차 없다. 도 법원이나 시 법원은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개념일까? 미국에서는 50개 주 중 30개 이상의 주에서 주민이 주 법원의 판사를 직접 투표로 선출하고 있다. 사법부도 국민의 통제를 받을 때 주권재민의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사법권 독립은 국민적 통제의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최근 여당과 야당이 모두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정치권의 주장에 따르면 개헌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왕 개헌할 것이면 100년 이상 갈 수 있는 개헌안이 나오길 기대한다. 230년을 견딘 미국 헌법은 중앙과 지방의 권력분립이 민주정치의 또 다른 성공의 요체임을 증명하고 있다. 개헌안을 만들면서 반드시 주목할 부분이다. 단순히 중앙정부의 권력분립만으로 제대로 된 민주정치가 실현될 수 없다. 우리 정치도 중앙정부에 예속된 지방정부의 권한을 국민에게 돌려 줄 때가 되었다. 민주정치의 뿌리는 지방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고 그 권력의 행사는 지방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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