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서예글씨로 예술적 흥취 입힌 이정표

총 12개 코스 중 6.5개 코스에 이정표 설치 완료…나머지는 내년 작업 예정
지역주민 및 관광객 섶길 특이한 표식에 흥미 느껴

권관리 평택호 주변 폐선박

섶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곳은 다만 하나의 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평택의 둘레길을 ‘섶길’로 명명하여 불렀을 때 그 길은 비로소 평택의 의미 있는 길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섶길의 의미를 더하고 나아가 문화적인 공간으로, 예술적인 길로 만드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돌과 글씨를 이용한 이정표 작업이 그것이다.

지난 1일, 섶길에 특별한 이정표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장순범 연세기획 대표, 권윤철 국제대학교 교수, 김윤희 산들공방 대표와 함께 원효길을 걸으며 그들의 작업을 지켜봤다.

섶길 이정표 작업 과정

그들은 섶길에 이정표 하나하나를 글씨로 살려내려고 하고 있었다. 먼저 권윤철 교수와 김윤희 대표가 섶길 곳곳에 세워둔 강돌에 먹을 묻힌 붓으로 ‘섶길’과 ‘원효길’, 그리고 방향을 썼다. 김 대표가 글씨의 구도를 맞추면, 권 교수는 시원스럽고 대담한 붓 터치로 글씨를 써 내려갔다.

먹물로 야외에 있는 돌 위에 글씨를 새기는 것이기 때문에 쉽게 지워질 수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장순범 대표는 “그러한 이유 때문에 투명 스프레이를 글씨 위에 뿌린다. 일종의 코팅 작업이다”라며 작업을 진행했다.

돌에만 작업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길을 걸으며 이정표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기존 주변 지형물을 이용하기도 했다. 그 지형물은 오래된 전봇대가 되기도 했고, 빛이 바래 원래 무엇이 써져 있었는지 모를 표지판이 되기도 했고, 건물벽면이 되기도 했고, 시멘트 바닥이 되기도 했다.하나의 이정표를 만드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정표의 양이 많고, 일일이 해당 지역으로 이동해 작업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총 작업 시간은 상당히 소요됐다.

현재 이들의 작업으로 이정표가 완성된 곳은 대추리길, 노을길, 비단길, 명상길, 원효길, 소금뱃길이고, 과수원길 절반에도 이정표가 세워졌다. 장 대표는 “올해에는 여기까지만 작업을 하고, 다른 코스(신포길, 황지길, 뿌리길, 숲길, 원균길, 과수원길 나머지)는 내년에 다시 작업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섶길 이정표의 의미

돌과 지형지물, 그리고 글씨를 통해 이정표를 만드는 작업을 하는 이유는 첫 번째로 섶길을 알리기 위함이다. 지금까지 리본끈을 이용해 알리긴 했지만, 리본끈이 눈에 띠지 않아 사람들이 길을 헤매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택시 문화원은 섶길의 위치를 표시하는 이정표를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해당 작업을 총괄하는 장순범 대표는 섶길을 단순한 이정표로 알리고 싶지 않았다. “여러 지역에서 방향을 표시하는 이정표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는 효과적이지만, 그 공간의 느낌과는 괴리되는 측면이 있었다”며 “해당 지역주민들도 그 지역의 느낌을 해치는 이정표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전했다.

섶길의 공간적 의미를 살리고,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고심 끝에 생각한 아이디어가 바로 돌과 글씨였다. 장 대표는 “자연적으로 잘 깎인 돌 하나를 길옆에 세워 두는 것만으로도 지역의 문화적 느낌이 바뀐다. 여기에 글씨라는 예술작업을 덧입힘으로써 섶길에 문화·예술적 가치를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삭막하고, 단조로운 풍경 속에 돌과 글씨가 주변 공간에 활력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평택 전역을 아우르는 섶길 전체에 이러한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평택 전역에 공공예술이 들어선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평택의 문화적 가치를 높인다고 말할 수 있다”고 전했다.

주민들의 반응

섶길 지역 주민들은 돌을 이용한 이정표작업에 큰 관심을 보였다. 길을 가다가 멈춰 서서 작업을 지켜보는 사람도 있었고, 적극적으로 이러한 작업을 왜 진행하고 있는지 묻는 이도 있었다.

장 대표는 “어떤 지역에서는 ‘자기 집 앞에도 돌 하나가 갖다놓고, 섶길을 표시해 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또한 섶길을 걸었던 타지역 사람들의 반응도 좋았다”면서 이 작업이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를 얻고 있다고 전했다.

평택호 관광단지를 찾은 사람들이 이정표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도 목격됐다. 섶길 주변에 가족 및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봄소풍 나온 사람들이 글씨가 새겨진 돌 앞에서 무슨 글귀가 써져 있는지 살펴보고 있었다. 그 중 한 시민은 “이런 이정표는 재미있다. 새롭다”는 소감을 전했고, 다른 시민은 “이 돌들을 따라 섶길을 한 번 걸어보고 싶다”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

한편, 평택섶길추진위원회는 오는 22일, ‘배꽃 만나러 가자’라는 제목으로 과수원길 정기걷기 행사를 개최한다. 시청광장 앞에서 출발해 배다리공원, 죽백동 일원 등 총 7km를 걷는 이번 걷기 행사에 함께하고 싶은 사람은 섶길추진위(010-2221-5250)로 문의하면 된다.

 

미니인터뷰 권윤철·김윤희 부부

“지금의 예술작업은 나중에 평택의 문화가 될 것”

3월부터 섶길 이정표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권윤철 국제대학교 교수와 김윤희 산들공방 대표 부부를 만났다. 주중에 권 교수는 국제대학교와 서예학원에서, 김 대표는 공방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고, 주말에 섶길을 다니며 이정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섶길 이정표 작업으로 하루도 쉬지 못하고 있는데,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권 교수는 “주중에는 타이트한 일정에 맞춰 강의를 하고, 주말에는 섶길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15~20km 정도 걸어야 한다. 이 때문에 몸은 피곤하지만, 내가 섶길을 걷는 주체라고 생각하며 기쁘게 일하고 있다”고 전했다.

섶길 이정표 작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권윤철 교수는 “섶길의 이정표 작업은 평택의 예술적 가치를 높이고, 평택만의 문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 참여하게 되었다. 실제로 돌과 글씨를 통해 섶길을 표현하면서 공간의 느낌이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전했고, 김윤희 대표는 “둘레길이 조성된 곳은 많지만, 이렇게 독특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이정표를 세우는 곳은 없었다. 지금은 돌에 글씨를 새기는 것이 예술이지만, 나중에는 평택의 문화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돌을 이용한 이정표 작업은 이들 부부에게 도전적인 일이었다. 권 교수는 “돌에 글씨를 새기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고, 그렇기에 처음 해 보는 작업이었다”며 “처음에는 페인트를 이용해 글씨를 쓰려고 했지만, 페인트로는 글씨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려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후에 먹으로 글씨를 쓰게 되었고, 먹이 지워질 수 있다는 단점은 스프레이를 이용한 코팅작업으로 보완했다”고 전했다. 이들의 독특한 작업에 지역 주민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김윤희 대표는 “작업을 하다보면 많은 주민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본다. 어떤 이들은 커피를 갖다 주시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기 집 앞에도 돌 하나 놓고 이정표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섶길을 직접 걸으며 작업을 하는 이들 부부에게 개선점도 전해 들었다. 권 교수는 “섶길 곳곳에 쓰레기가 많다는 것을 매번 발견한다. 외부인들이 섶길을 찾게끔 만들기 위해서는 쾌적한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시에서는 섶길지역의 쓰레기를 관리해 섶길이 외부인들도 걷고 싶은 향내나는 길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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