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서도 탄핵추진, 결정 전에 사임하고 사면,
용기와 책임 등 멋진 정치 과정도 있었다

김남균 평택대 미국학과 교수

[평택시민신문] 2017년 3월 10일, 박근혜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의하여 파면되었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탄핵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 전에 사임을 선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사임하였더라도 개인의 형사 책임은 남았겠지만, 적어도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여당의 분당은 막았을 가능성이 높다. 아울러 추후 사면에 대한 명분도 더 컸을 것이다. 또한 촛불을 든 국민의 마음에 남은 상처도 적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미국역사 속에서도 있었다.

1974년 닉슨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탄핵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원래 워터게이트 스캔들은 묻힐 뻔한 사건이었다. 1972년 대선 중 수도 워싱턴에 소재하는 워터게이트 호텔의 민주당 선거사무실에 절도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현장에서 체포되었고 ‘단순 절도’ 사건으로 마무리 되는 듯 했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기자의 집요한 취재로 단순 절도 이상의 사건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건 배후에 백악관이 있었다.

닉슨은 처음부터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백악관이 관여했다는 증거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단순 절도사건은 미국 사회를 흔드는 정치스캔들이 되었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백악관 참모들이 줄줄이 연행되었다. 의혹의 핵심은 대통령 닉슨의 관련 여부였다. 의회 청문회가 진행되고 스모킹 건으로 지목되던 백악관의 녹음테이프까지 공개되었다. 그러나 닉슨이 직접 관여했다는 결정적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는 상태였다. 한편 당시 미국은 외교 안보적으로 곤경에 처해 있었다. 베트남전쟁에서 미국의 패배가 확실시되고 있었다.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국 하원은 대통령 닉슨에 대하여 탄핵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탄핵제도는 하원에서 기소하고 상원에서 심판한다. 야당인 민주당이 하원 탄핵 가결에 필요한 과반수를 확보하고 있었다. 상원의 탄핵심판 결정에는 상원의원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했다. 민주당은 상원 의석 60석을 확보하고 있었고 여론도 닉슨에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정적 물증도 없는 상황에서 상원의원 3분의 2가 대통령 탄핵에 찬성할지 확실하지 않았다. 당시까지 미국 역사에서 대통령이 탄핵으로 파면된 사건은 한 번도 없었다. 1868년 앤드류 존슨 대통령이 유일하게 하원에서 탄핵된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상원 탄핵재판에서 존슨에 대한 탄핵안이 부결되었다.

1974년 워터게이트 스캔들 때도 닉슨이 끝까지 버텼으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상원에서 공화당 이탈표를 단속할 수 있으면 탄핵을 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닉슨은 의회에서 탄핵문제로 다투는 대신에 사임을 선택했다. 하원에서 탄핵안이 구체적으로 마련되기도 전에 닉슨은 백악관을 떠났다.

물론 닉슨에게는 형사 책임이 남아 있었다. 그의 참모들은 나중에 실형을 선고받았다. 닉슨도 기소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대통령으로 새로 취임한 제럴드 포드는 닉슨의 모든 형사상 책임에 대한 사면을 단행했다. 국가적 상처를 치료하자는 것이 사면 이유였다. 포드의 사면 조치는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포드 대통령은 하원 청문회에 소환되어 의원들의 심문을 받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른 후 포드의 사면조치는 재평가를 받았다. 2001년 민주당 상원의원 에드워드 케네디는 퇴임한 전직 대통령 포드에게 케네디 기념 재단의 이름으로 용기 있는 정치인상을 수여했다. 포드의 사면조치는 미국의 국익을 위하여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늦게나마 긍정적인 평가를 해 준 것이다. 닉슨 역시 말년에는 원로 정치인의 대접을 받으며 여생을 누렸다.

탄핵정국에 대한 박근혜의 대처 방식은 닉슨과 달랐다. 여당의원들까지 탈당을 불사하며 탄핵에 동참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사임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여당은 분열되었고 대통령 자신은 탄핵되었다. 공멸의 길을 선택한 셈이다. 보스와 조직이 함께 죽는 순장의 구도가 되었다. 사임을 선택하지 않은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나 보스가 결정하면 무조건 따르는 우리 정치문화가 본질적 원인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는 공익이 우선되어야 하는 민주공화국이다. 탄핵이후 우리 정치에 보스의 사익보다 공익이 우선되는 새로운 정치문화가 꽃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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