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미국은 새로운 미국이 아니다. 오래 전 폐기되었던 미국이다.
낡은 미국이 무덤에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김남균 평택대 미국학과 교수

[평택시민신문] 지난 1월 20일 45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한 도널드 트럼프는 공약 사항들을 거침없이 추진하고 있다. 취임식 당일 오바마케어라 불리던 연방의료보험제도의 시행 중단을 지시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오바마케어는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핵심공약이자 주요업적이었다. 전임 대통령의 핵심정책을 뿌리 채 흔든 것이다.

트럼프는 이민 관련 조치들도 단행했다. 멕시코 국경에는 거대한 장벽을 설치하겠다면서 그 비용을 멕시코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멕시코에서 넘어오는 불법이민자들을 멕시코가 근절시키지 않으면 멕시코에 미군을 파견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테러의 잠재적 위험이 있다며 중동 이슬람 지역인의 입국을 거부하는 행정명령도 내렸다. 신앙을 이유로 입국을 거부하는 조치는 미국 역사상 초유의 사태였다. 신앙의 자유는 미국 헌법 수정조항 1조에 명문화되어 있다. 연방법원이 트럼프 입국거부 행정명령의 정지를 결정하기에 이르렀고, 미국 국내에서는 연일 반대 데모가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새로운 정책들은 우리에게도 충격적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소위 한미FTA)을 직설적으로 비판하며 재협상의 추진을 암시하고 있다.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도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압박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두 번 생각할 여유도 없이 즉각 투자 약속을 내놓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각 부처 장관 후보자들의 상원 인준절차도 모두 끝나지 않은 상태인데, 트럼프는 세계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대체 트럼프의 미국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트럼프의 미국은 새로운 미국이 아니다. 오래 전 폐기되었던 미국이다. 낡은 미국이 무덤에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177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미국은 유럽의 어떤 국가와도 동맹을 거부하는 고립주의 외교를 선택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임기를 마치면서 미국인들에게 미국의 미래를 위하여 고립주의 외교를 지속할 것을 신신당부하였다. 20 세기 전반까지 미국은 고립주의의 길을 걸었다.

대신 19세기 미국은 국내 발전에 심혈을 기울였다. 산업혁명을 이루어내며 놀라운 속도로 경제를 발전시켰다. 대륙횡단 철도를 건설하고 석유와 철강, 전기 등 새로운 산업을 탄생시켰다. 50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되던 서부 개척은 1세기 안에 끝났다. 20세기가 되자 미국은 세계 최강의 경제대국으로 떠올랐다. 세계 제조업의 25퍼센트를 생산했다.

19세기 미국은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하여 철저한 보호무역정책을 취했다. 20세기 초까지 미국은 산업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관세를 부과했다. 주변 남미 국가들에 대해서는 제국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영토 확장에도 힘을 쏟았다. 멕시코 전쟁으로 오늘날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일대의 거대한 영토를 획득하였을 뿐 아니라 미서전쟁을 통해서는 필리핀을 식민지로 삼았다. 이때 하와이도 복속시켰다. 그러나 미국은 유럽 지역 문제에 대해서 여전히 고립주의를 유지했다. 대서양과 태평양이 미국을 지켜 줄 것으로 믿었다. 1차 대전 때 잠깐 세계 문제에 관여하였으나 곧 고립주의로 돌아갔다. 미국이 고립주의를 탈피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기습공격이었다.

2차 대전 후 미국의 외교정책은 완전히 바뀌었다. 세계 문제에 적극 개입했다. 러시아(구소련)와 냉전을 겪으면서 미국은 천문학적인 수준의 국방비를 지출했다. 대외 원조에도 적극적이었다. 전후 독일이나 일본이 부흥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원조 덕분이었다. 6.25전쟁에 미국이 참전하였던 것도 이런 정책적 변화 때문이었다. 냉전 중 미국은 경제논리보다 이념을 중시했다. 냉전은 종식되었지만 미군은 여전히 우리 한반도에 주둔하며 지역 내 평화 유지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트럼프는 경제논리를 근거로 19세기 미국으로 유턴을 주장하고 있다. 국내 산업의 보호를 제일 목표로 내세웠다. 동맹국의 안보문제는 각 국가가 자체적으로 해결하든가 방위비를 더 부담하라는 입장이다. 멕시코 국경에는 현대판 만리장성을 쌓고 있다. 과연 미국은 19세기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지금 기업 활동에는 국적이 사실상 없어졌다. 단적으로 한국의 삼성이나 미국의 포드사가 전통적 자국 기업은 아니다. 경제는 글로벌 단위로 이루어지고 있다. 결국 역사의 회귀는 불가능하다는 것으로 판가름이 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결론을 얻기까지 트럼프의 막무가내 공약 추진은 계속되고 그 마찰도 이어질 것이다. 그 중 가장 염려되는 것은 경제논리를 근거로 한미동맹을 흔드는 무리한 요구이다. 현대사에서 우리와 미국은 비극을 공유했다. 1905년 태프트-카츠라 밀약은 을사늑약을 가져왔고 1949년 미군 철수는 북한의 남침을 불러왔다. 그러나 미국의 오판은 우리만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았다. 2차 대전과 6.25전쟁이 그것을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다. 북한의 핵문제를 풀어야 하는 한미양국에게 건강한 한미동맹관계가 지금보다 더 중요한 순간은 없었다. 트럼프 행정부도 이것을 깊이 인식하리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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