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세문화공원 차근차근 준비 필요"

독립운동가의 딸이자 며느리이자 아내역에 만족해

민세 안재홍 선생의 며느리인 김순경 여사(94)가 살고 있는 두릉리 ‘민세 안재홍 선생 생가’를 찾아 네비게이션을 따라 달렸다. 익숙한 길을 지나 아스팔트가 고르게 깔린 새 길을 달리는데 네비게이션은 ‘좁은 길 주행에 주의하세요’라는 말을 반복하며 길을 읽어내지 못한다. 요즘 개발이 한창인 고덕면으로 들어온 것이다. ‘민세 안재홍 선생 생가’ 표지판을 확인하고 들어갔다. 주변은 어쩐지 길을 잘못 들었나 싶게 만드는 풍경이다. 가옥을 그대로 주저앉힌 쓰레기 더미가 이전에 생가 주변에 자리잡고 있던 집채 수 만큼 쌓여있어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도 주변을 한참 헤맨 후에야 선생의 생가를 찾을 수 있었다. 조성되고 있는 민세 공원의 현재 진행 모습이다.

민세 안재홍 선생은 일제 강점기 당시 시대일보 이사, 조선일보 사장 등을 지냈던 일제 강점기 내내 활발한 독립운동을 펼쳤던 민족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이다.

일제의 식민사관에 맞서 민족정신 고취를 위해 노력한 1930년대 조선학운동의 산실인 민세 선생의 생가는 경기도문화재(기념물 135호)이자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물로 지정되어 있다. 민세 선생이 아끼던 150년 된 향나무와 우물 등 민세 관련 흔적이 남아있는 생가에는 맏며느리인 김 순경 여사가 혼자 관리하며 살고 있다.

평양의 작은 섬마을에서 태어나 열네 살까지 평양에서 살았다는 김 순경 여사의 아버지는 의사이자 독립 운동가였다. 중국에서 독립군을 치료해주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김 여사는 1949년도에 정인보 선생이 시작한 국학 대학을 졸업하고 중앙정부 사회부에서 운영하는 정신지체 아이들의 보육시설인 각심학원에서 관리교사를 하며 아이들을 가르쳤고 피난 후에는 부친이 원장으로 재직한 한국보육원에서 전쟁고아를 돌보기도 했다. 이후 결핵을 심하게 앓아 고생이 많았던 김순경 여사는 27세 때 보육교사를 그만두고 29세가 되던 해에 지인의 중매로 민세의 장남인 정치운동가 안정용씨와 결혼했다. 남아 있던 재산은 남편의 중도파 혁신운동으로 다 소모하고 결혼 17년이 되던 해에 갑자기 뇌졸중으로 남편이 운명을 달리한 후 40년간을 홀로 자식들을 키우며 일생을 보냈다. 60대 초반, 중풍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집안의 경제활동을 책임져 왔으며 70세에 심근경색으로 심장수술 후 치료를 받고 2001년부터 민세 생가로 거처를 옮겨 지금까지 생가를 지켜오고 있다.

김순경 여사는 시아버지인 민세 선생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시아버지를 존경하고 숭상하는 마음은 10대 때부터 갖고 있었다. 여생을 시아버지의 생가를 지키기 위해 평택으로 내려온 것도 평생 청렴결백했던 시아버지를 존경하는 마음에서였다.

민세 안재홍 선생 생가 주변은 고덕지구 개발사업이 한참 진행 중이다.

김여사가 오기 전 생가는 김 여사의 동서가 관리를 했다. 동서가 몸이 좋지 않아 아들이 있는 서울로 올라간 이후 동네 주민들이 돌아가며 살폈으나 지속적인 관리를 하기에는 역부족이라 판단한 김 여사가 직접 평택으로 내려와 생가에 살며 관리를 하고 있다.

현재 생가는 민세 안재홍 선생이 결혼해 분가한 집이다. 민세 선생이 태어나 자란 곳은 길 하나를 건너 있다. 그 자리에 안재홍 선생 생가를 복원하고 기념관을 지을 예정이라고 한다.

“요즘 기력이 쇠약해져서 말을 하는 게 힘들다”는 김순경 여사는 “평택시민신문 창간 20주년 기념호에 여사님이 들려주시는 민세 선생님 이야기와 평택시민신문에 주시는 덕담을 싣고 싶다”고 인터뷰를 요청하자 흔쾌히 집으로 초대를 해주셨다.

“평택시민신문이 민세 사업을 위해서는 이미 잘하고 있으니까 항상 고맙지”라고 인사를 전하는 김순경 여사는 “김기수 씨를 민세사업회 이사하면서 알았어. 그러니까 벌써 16년 전이지. 그 때 지역신문 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김기수 이사가 신문사 해 오시느라 고생을 많이 했어요. 요즘 지역신문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시민신문이 중심이 되어 큰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어. 또 평택을 위해서 시민신문이 커졌으면 좋겠는데 평택에 돈 많은 사람들이 신문사를 많이 도와줘야 해요.” 라며 평택시민신문과의 깊은 인연을 회고하며 시민신문과 지역사회에 대한 바램을 보여줬다.

혼자 기거하시는데 불편한 게 뭐가 있겠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생활은 방문요양사가 매일 와서 도와주니까 괜찮고 생가는 시가 다 관리하고 보수해주니까 불편한 건 없어. 그래도 불편하다면 옆에 쌓여 있는 쓰레기 때문인지 아침에 나가면 안개가 낀 것처럼 앞이 잘 안 보이는 거 같애. 숨쉬는 것도 전처럼 편하지 않고. 특별한 건 아니고 나이가 들어가니 자연스런 거겠지? ”라며 편안하게 말하는 모습에서 94세에 민세 생가를 지켜내는 내공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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