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균 평택대 미국학과 교수

[평택시민신문]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이란 단어가 요즘과 같이 많이 사용된 시기는 드물 것이다. 언론 보도는 물론이고 수백 만 명 국민들이 수 주일째 외치고 있는 말이 대통령이다. 우리에게 대통령이란 단어는 삼권분립의 원칙 아래 존재하는 행정부의 수반이라는 의미보다 훨씬 큰 정치적 존재를 지칭하는 말로 인식된다. 법치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은 형사상 소추조차 되지 않는 거의 초법적 존재이다. 이런 예외적 권력을 상징하는 대통령이란 단어는 미국의 ‘프레지던트(president)’와 같은 말로 이해된다. 그러나 과연 프레지던트와 대통령은 같은 의미의 말일까?

대통령이란 직책은 1919년 상해 임시정부 때 처음 도입되었다. 그러나 초기 몇 년을 제외하고 임시정부는 대통령 대신 국무령 혹은 주석이란 직책을 채택하면서 대통령이란 말은 폐기되었다. 대통령이란 단어가 다시 우리 제도에 등장한 것은 1948년이었다. 제헌헌법이 대통령제를 채택한 것이다. 이 후 대통령이란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권력과 권위의 상징어가 되었다. 권위주의 시절 대통령이란 단어는 함부로 호칭할 수 없는 말이었다. 대통령이란 단어 뒤에는 꼭 ‘각하’라는 존칭을 붙여야했다. 지금은 사정이 변하였다고 하지만, 여전히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공무를 집행하는 공무원 중의 한 사람이 아니라 통치권을 행사하는 초법적 통치권자라는 의미가 강하다.

어원적으로 대통령은 미국의 ‘프레지던트’를 의역한 번역어이다. 번역어인 대통령이 처음 사용된 곳은 일본이었다. 19세기 중반 미국과 국교를 수립한 일본인들이 프레지던트를 자신들이 이해하기 쉽게 ‘대통령(大統領)’으로 의역하여 사용한 것이다. 이 말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1880년대 초였다. 비슷한 시기 우리에게는 다른 번역어도 소개되었다. 1882년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 조선정부는 프레지던트를 ‘백리이천덕(伯理爾天德)’으로 표현하고 있다. ‘백리이천덕’은 ‘프레지던트’를 중국어 발음으로 표현한 말이었다(현재 중국은 미국의 프레지던트를 ‘총통’으로 표현한다). 개화기 일본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대통령’이 우리 언어문화에 자리를 잡은 것이다. 일본이 해석해 준 미국 문화를 수용한 셈이다.

그렇다면 프레지던트의 일본식 번역어인 ‘대통령’은 정확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선 주목할 것은 미국에서 프레지던트라는 말은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에게만 사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프레지던트’가 사용되는 경우는 수 없이 많다. 대학 총장, 학생회장, 사회단체장 등 크고 작은 많은 모임과 조직의 대표에게 프레지던트를 사용한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대통령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단체나 조직은 거의 없다(필자의 경험으로는 전무하다). 뿐만 아니다. 미국 대통령의 호칭도 단순하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 이래 ‘미스터 프레지던트(Mr. President)’라고 간단하게 부른다. 전하, 각하, 혹은 폐하라고 번역할 수 있는 존칭은 전혀 사용되지 않았다. 법적 측면을 떠나 문화적으로 ‘대통령’이 곧 ‘프레지던트’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의견이 많다. 특히 대통령의 권한 범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주장이 많다. 그러나 대통령제의 문제가 한두 가지 제도 보완으로 해결될지 의문이다. 대통령이란 명칭은 우리의 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단어는 그 내용을 규정하는 힘이 있다. 대통령이란 명칭을 유지하면서 그 내용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이왕 대통령제를 보완한다면 이 기회에 차라리 ‘대통령’이란 단어 자체를 폐기하고 다른 말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이유는 명백하다. 제국주의 시대 일본인들이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의역한 말이 대통령이었다. 이 말을 우리는 별다른 생각 없이 오늘까지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대통령제를 둘러싸고 계속 갈등을 겪는 이유도 ‘대통령’이라는 단어 속에 녹아 있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정치의식과 현대 민주주의 시민의식이 충돌하는 현상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대통령이란 단어 대신 행정원장, 혹은 행정부장이란 명칭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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