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의 여유

가을 햇살이 듬뿍 쏟아지는 눈부신 거리, 단풍잎은 단풍잎대로 은행잎은 은행잎대로 제 빛깔을 뽐내고 있다. 고운 나뭇잎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지금의 나는 무슨 빛깔일까 하는 생각에 잠시 발길을 멈춘다. 찰나의 순간 뜨겁고 붉은 빛이 나를 감싸 안는 것 같다. 세 아이의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만 했던 날들, 아카시아 꽃향기를 빙자하며 진한 눈물을 쏙 빼던 그 날도, 햇살이 눈부셔 눈물을 만들어 내던 많은 날들 속에서도 가만히 손 내밀어 주던 따뜻한 사람들의 온기가 전해 온다.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난 할 수 있다! 우리는 할 수 있어! 꼭 해 낼 거야 멋진 엄마 당당한 어머니로 웃어 보이리라는 그 말과 차 한 잔의 여유가 있는 날이 먼 날이 아닌 가까운 날이 되기를 기도 하던 시간들도 이제는 추억이 되어 가고 있다. 아이들은 다 학교로 떠나가고 분주했던 아침 창밖 새들의 여유가 보인다.
오늘도 하루치의 삶을 가방에 챙겨 넣고 집을 나선다. 어린 아이들을 잘 돌보기 위해 돈보다는 시간의 여유를 선택하며 근무를 시작한 것이 5년을 훌쩍 넘기고 10년의 경력을 쌓아가고 있다. 노란 국화와 자줏빛 국화가 있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창밖으로 흘러나온다. 깻잎 반찬을 나뭇잎 반찬이라며 표현하는 해맑은 순수함이 있는 곳, 오늘 같은 가을날 빙그르르 허공을 돌며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며 나뭇잎이 집으로 돌아간다던 꼬마들의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미소를 짓게 한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가을빛보다 고운 언어들을 떠올리자 가슴 따뜻한 얼굴들이 스크린처럼 지나간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만한 축복인지를 모르고 사는 것은 아닐까? 또한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행복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은 또 얼마만한 축복인가? 그러고 보면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정말 힘겨울 때 글쓰기를 시작했다. 생활이 넉넉해서 시간의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나의 생각과 고민을 글쓰기로 풀어냈다. 글쓰기는 힘든 나를 버티게 해주었고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었으므로 발아하지도 못한 채 가슴 한 구석에 숨어있던 꿈의 씨앗들이 쉰을 넘긴 지금에서야 꽃을 피워주는 것 같다. 이제는 가끔 나의 본모습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많은 시간들을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글을 쓰고 늦깎이 대학생이 된 지금은 아이들이 나의 멘토가 되어준다. 어제는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가족 카톡방이 바빠졌다. 공부하느라 바쁜 아이들이 자정을 넘기며 메시지를 보내온 것이다.
“걱정할까 봐 안부를 남깁니다. 잘 먹고 잘 살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어서 둘째도 셋째도 대화가 이어진다. 별들도 잠든 시간 가족 사랑이 가을밤을 물들이고 있었다. 이런 사소하고 작은 관심들이 삶의 버팀목이 되고 행복의 밑거름이 되어주고 있으니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꿈을 찾아가는 길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이다. 꿈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늘 가까이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빠른 직선으로 갈 수도 있고 조금 느리게 갈 수도 있고 돌아서 가는 길도 있겠지만 나처럼 40여년의 긴 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 것이다. 포기하지 않고 가다보면 언젠가는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꿈은 청춘의 전유물이 아니다. 조금 늦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아직 꿈꾸고 있다면 그쪽으로 한발만 내딛어 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 첫 발걸음이 꿈의 길을 만들어 줄 것이다. 나는 글 쓰는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고 음식을 만드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글과 음식은 사람을 키우고 만드는 공통점이 있다. 차 한 잔의 여유가 있는 오늘, 멋지게 자라 꿈을 찾아가며 나의 멘토가 되어주는 아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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