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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창언 방송대 문화교양학과 교수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 자문위원 |
진정한 의미의 평화개념
인류의 가장 오래된 꿈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평화’ 일 것이다. 그리고 평화란 말처럼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말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도 ‘평화수호’, ‘국익수호’라는 미명아래 크고 작은 전쟁과 분쟁이 끊임없이 발생되고 또한 정당화 되고 있다.
평화(平和)는 사회 모든 영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형태의 폭력(무력에 의한 지배)에 반대하는 개념(Betty Reardon)이다. 평화는 전쟁, 무력갈등, 군사적 점령, 외세개입과 같은 폭력을 방지하고 강제력의 역할과 위협을 감소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사회․경제적 정의, 평등, 완전한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향유하는 것이다.
전쟁은 무엇인가 ?
전쟁은 한마디로 비합리적 상황이다. 그것은 全인류적인 기본가치가 완전히 무의미 하게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전쟁은 불신과 두려움의 어둠 뿐 아니라 ‘살육’과 ‘파괴’를 정당화 하고 약탈, 적의 여성에 대한 강간 등 범죄에 대한 죄의식을 무감각하게 만든다. 전쟁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옳고 그름의 경계를 허물며 정의로운 어떠한 판단도 내릴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학살과 불의가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은 전쟁과 분쟁에서는 ‘세상’을 나와 적이라는 이분법의 논리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통용된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야 하는 상황’, 즉 홉스가 말하는 만인을 위한 만인의 투쟁의 법칙이 존재하는 정글이 바로 전쟁인 것이다.
또한 비합리성을 강요하는 전쟁은 더 이상 국가가 시민의 합의하에 시민복리를 증진시키는 사회기구라는 형식적 탈을 벗는 것조차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전쟁전후 과정은 폭력적 규율과 위계화된 권위에 바탕을 둔 국가주의, 군사주의가 가장 극단적으로 힘을 얻는 상황을 만든다. 즉, 전쟁을 통해 적국이든 아국이든 독재자의 강력한 리더십은 정당화되고 강화된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반미규율사회, 남한의 반공규율사회의 형성이 그 단적인 예이다. 물론 현재 석유와 패권을 위한 전쟁을 지지하는 일부 미국인의 비정상적 사고, IS를 위해 자살특공대로 자원하는 일부 이슬람인의 모습에서 우리는 전쟁의 또 다른 그늘을 보게 된다.
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여성과 어린이
전쟁의 가장 커다란 피해자들은 누가 뭐래도 여성과 아이들이다.
전쟁으로 인한 폭력은 국가 간의 무력분쟁으로 나타나지만 본질적으로는 지배집단이 여성과 소수자들에 대해 가하는 억압적인 힘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전쟁에서 난민의 80% 이상은 여성과 어린이었고, 여성을 전쟁의 약탈물로 만들어왔으며, 전시에 여성에게 행해지는 강간과 구타와 학대는 전쟁이 성폭력의 가장 극단적인 상황임을 보여주었다.
순결을 잃은 여성들은 그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영원히 매춘의 세계로 내던져 지기도 한다. 그리고 전쟁 중에 여성들은 젠더역할(돌봄)을 강요받는데, 피난민으로서 가족부양의 책임까지도 짊어지게 된다.
여성의 시각에서 본 평화
그런데 과연 여성과 노동자가 전쟁에 책임이 전혀 없다고 단정 지을 수 있을까?
물론 전쟁은 자본과 남성이 주도한 역사이기에 여성과 노동자들은 군사적 안보와 관련된 결정에 어떤 발언권과 책임을 가지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전쟁 만들기는 노동자와 여성의 참여에 의존하기도 한다. 노동자들은 근대이후 여전히 군수산업에 종사하고 있고, 애국주의에 경도되어 전쟁과 파시즘을 지지한 노동운동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여성도 예외는 아니다.
여성은 ‘근본적으로 평화주의적’이라는 여성주의적 입장이 있다. 여성의 평화지향성은 여성이 근본적으로 친밀성에 기초하여 돌봄이나 보살핌을 지향하는 본성을 지니고 있는 점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반론도 제기된다. 김귀옥은 여성에게 돌봄의 가치를 강조하는 담론은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전쟁에 협조하는 보수적인 논리에 이용당할 수도 있고, 사회운동이나 노동운동에서 여성과 남성을 분리하는 논리로 이용될 수도 있고, 전통적으로 지지되어온 성별분업의 논리를 강화할 수도 있다고 비판한다.
여성평화학자 정현백은 “여성이 평화반대자 혹은 전쟁 반대자로 정형화 되어 있지만 여성들 역시 전투에 참여하기도 하고, 군대 내에서 동등한 지위를 누리려고 한다”고 말한다. 실례로 걸프전쟁, 르완다에서의 대량학살, 보스니아의 인종청소에도 여성들은 참여했다. 여성들은 방위산업이나, 무기 공장에서 일하며 간접적으로 전쟁을 지원하기도 했고, 군대 내의 하급 직종을 맡으면서 군대에서 필요로 하는 여성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고 말한다.
여성의 군사적 직업에의 참여나 그를 둘러싼 이익을 공유하는 것을 찬성하는 일부 여성 지도자들은 군대에의 참여를 시민권 개념과 연결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군내에서 여성의 정치적인 고위직 진출을 위한 지원활동을 강조하기도 한다. 일부 우익성향 개신교 여성 지도자들과 여성신도들은 그들의 종교지도자를 따라서 북한과 이슬람에 대한 비평화적, 대결적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
가부장적 위계와 질서, 군사주의를 반대해야할 여성들이 오히려 남성의 모습을 답습하는 경우는 우리 사회에서 많이 확인되고 있다. 필자는 단순히 ‘성 역할’과 ‘젠더 특성’ 즉, ‘여성이 남성보다 평화적인 본성을 갖고 있다’라는 명제의 이론적 확인과 강조를 넘어서 평화에 대한 여성들의 새로운 인식과 태도, 실천을 강조하고자 한다.
여성은 삶과 저항주체로서 전쟁과 평화에 대한 시각을 정립해야 한다. 이러한 첫 시도는 ‘여성’의 시각에서 평화를 바라보는 시각의 정립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동시에 일상의 삶에서 어떻게 평화를 만들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노력이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한다. 그것은 ‘모든 억압과 폭력에 반대’하는 기본전제에서 출발하여 ‘적(敵)은 곧 악(惡)’이라는 이분법을 끊임없이 재생산 하는 ‘국가주의’, ‘애국주의’ 담론에서 탈피하여 ‘보편적 인간해방에 대한 지향’ 속에서 세계주의적, 보편주의적 시각을 견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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